아들과 함께 리베라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몇 달 전부터 얘기했었다. 아들 학원을 빼기가 힘들어서 못 가고 있다가,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미루면 영원히 못 간다. 행복을 이연하면 안 된다.
이럴 땐, ‘그냥' 가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 말고.
그래서 먼 길을 찾아갔다. 고기 먹으러.
그만큼 리베라 스테이크는 아들과 나에게 신나는 모험이었다.
맛집 찾아 (학원도 빠지고) 떠나는 먼 길. (지금까지 내 ‘맛따라멋따라’ 글에 소개된 음식점 중에서 가장 먼 곳이다)
도쿄의 오래된 맛집 중 하나인 리베라 스테이크를 드디어 방문했다.
여기 교통이 꽤 불편하더라. 지하철로도 버스로도 애매한 주택가.
그래서 우리는 한참을 걸어갔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서로 떠들고 낄낄대며, 해질녘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를 신나게 걸어갔다.
도착.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런지, 우리 앞에 대기는 2팀뿐이었다.
아들과 나는 메뉴판을 번역기로 돌려보며 뭘 먹을지 조잘조잘 떠들었다.
드디어 입장했다.
스테이크 연기가 조금 뿌옇다. 괜찮다. 이게 또 낭만이지.
도쿄 리베라 스테이크는 오랜 세월 동안 일본 프로레슬링과 격투기 선수들의 성지로 알려져 왔다. 특히 전설적인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이곳을 찾아 힘찬(?)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가게의 벽면은 그들이 남긴 사진과 사인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덕분에 식당은 단순한 스테이크집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한 특별한 분위기를 풍긴다. 흡사 박물관 같기도.
앉자마자 바로 소스를 내어준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특제 소스.
마늘과 간장 뭐 그런 게 들어간 듯한데, 짭짤한 중독성 있는 맛이다.
난 이 소스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주방은 오픈되어 있다.
사장님이 끊임없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리베라 스테이크는 원래도 인기가 있었지만, 최근 방송인 추성훈의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더욱 큰 화제를 모았다. (나도 덕분에 알게 되었지.) 방송 이후, 일반 방문객들에게도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인기가 급증하면서 주말이나 식사 시간대에는 긴 대기 줄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스포츠 스타들의 숨겨진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맛집)가 되었다.
이 가게 스테이크의 가장 큰 특징은 두툼하게 썰어낸 고기 두께와 투박하지만 확실한 풍미이다. 이런저런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화려한 가니시나 복잡한 조리법 대신, 고기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고기 그 자체를 즐기기 좋다.
스테이크는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져 나오는데, 고소한 육즙과 함께 테이블로 서빙된다. 여기에 리베라 특유의 진하고 짭짤한 갈색 소스(아까 위 사진에서 소개한 바로 그것)를 넉넉히 뿌려 먹는 것이 이 가게의 정석이다. 소스가 고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밥과 함께 먹기에도 아주 좋은 중독성 있는 맛을 완성한다.
아들과 나는 각자 1파운드씩 주문했다. 1/2파운드짜리 메뉴도 있었지만, 모자랄 수도 있었기에 과감히 둘 다 1파운드로 주문했다. 아들은 “남자라면 1파운드 먹어야지”라며 스스로 테토남임을 거듭 강조했다. (ㅋ.. ㅋㅋㅋ)
자 드디어, 나왔다.
주물 철판에 치익치익 지글지글 구워지며 나온다.
커다란 고기 위에 버터 한 조각 툭, 사이드에는 옥수수 툭.
그나저나, 이거 너무 큰데, 다 못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 흰쌀밥 한 접시가 나온다. 고기랑 세트다.
레어에 가까운 굽기다.
처음엔 '좀 덜 익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먹다 보면 뜨거운 팬 위에서 적절하게 구워진다.
근접해서 보면 핏물이 보일 지경인데, 괜찮다.
이 정도로 구워진 게 딱 알맞다.
칼로 잘라보면, '엇, 잘 안 잘리는데? 질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하며 한 조각 집어 들었다.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웬걸. 그냥 샤르르 녹는다. 샤베트 같다.
육즙이 터진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특제 양념을 얹어서 먹으면,
'이것이 바로 이 가게에 온 목적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반드시 양념과 함께 먹어야 한다.
고기 한 입 먹고, 흰 쌀 밥 한 숟가락 먹으면 김치가 필요 없는 조합이 완성된다.
부드럽다.
밥 위에 올려서, 양념 얹어서, 또 한입.
계속 들어간다.
살살 녹는다.
고기의 두께는 이 정도.
막 엄청 두껍진 않다.
1파운드가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순전한 기우였다.
고기가 부드럽고, 양념이 느끼한 맛을 잡아주니 질리지 않는다.
다 먹었다.
(중학생 아들도 혼자 다 먹었다. 1파운드 많지 않다. 걱정 마시길.)
이 집, 처음엔 좀 미심쩍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든 단순한 유행이 아닐까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는 진짜다. 맛집 맞다. 굳이 가서 먹어볼 가치가 있더라.
아들과 함께한 리베라 스테이크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를 넘어선 특별한 경험이었다. 맛있는 거 먹으러 아들과 떠나는 길이, 품었던 설렘이, 걸었던 거리가, 그곳의 온도와 습도가, 줄 서 기다리던 순간 하나하나가 모두 좋은 추억이 되었다.
부디 아들에게도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