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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

by 이서


starbucks-newpolicy.jpg 영화 '인턴'


요 며칠, 나는 아침 일찍 스타벅스에 온다. 일어나면 씻고, 가방에 노트북과 이어폰, 읽을 책들을 툭 챙겨 넣고 나온다. 날씨가 어쩌고, 피곤하고, 귀찮고 등등 이런저런 고민은 애초에 안 한다. 지난 글(https://brunch.co.kr/@dontgiveup/498)에 이야기한 것처럼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루틴처럼.


아침 일찍 나오면 매장 안, 내가 좋아하는 그 구석진 창가 자리가 늘 비어있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요새는 모닝세트가 있어서 커피와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창가에 자리를 잡으니,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표정도 가지각색. 걸음걸이도 다양하고, 옷차림새도 개성 있다. 한참을 내다본다.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고민을 갖고 아침을 시작한다. 모두 자기 몫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스타벅스에 아침에 앉아있으면, '적당한' 기분이 든다. 그 오묘한 '적당함'이 좋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앉아 있으니 무언가의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도 가지면서, 완벽한 타인으로서 존재하니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그야말로 '적당한 거리감'이다. 이로서 너무 외롭지도, 너무 사람에 치이지도 않는 부침용 두부처럼 말랑말랑한 안정감이 만들어진다.


다른 많은 카페를 도전해 봤지만, 역시 스타벅스 밖에 없다. 물론 요새 스타벅스가 이상해지긴 했다. 난데없이 굿즈 장사를 하질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타벅스만한 곳을 찾진 못했다. 브랜드마다 고유의 바이브가 있는데, 역시 나에게는 아직 스타벅스의 익숙한 따뜻함이 좋다. 매장 가운데에 큰 나무테이블이 배치된 구성이 좋다.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그 특유의 마인드가 여전히 마음에 든다. 아마 큰 이변이 없는 한 계속 그럴 것 같다.


어느 정도 재미있게 사람구경을 하고, 글을 쓴다. 주제는 다양하다. 최근에 거의 매일 글을 발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생활 때문이었다. 역시 글쓰기도 노동에 가깝다. 일처럼 해야 결과물이 꾸준히 나온다. 그걸 이번에 느꼈다. 루틴의 힘이다. (지금 이 글도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다. 내 앞 창 밖으로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우리의 모습은 반복해서 행동한 일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위업은 행위가 아닌 습관에 의해 완수할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글을 발행하면 책을 읽는다. 아, 글을 쓰다가 막히면 책을 읽기도 한다. 번갈아 한다. 정해진 순서는 없다. 소설도 읽고 자기계발서도 읽고, 고전도 읽는다. 요샌 닥치는 대로 장르 가리지 않고 많이 읽는다. 종이의 감촉과 텍스트가 주는 편안함이 좋다. 그래서 나는 전자책 같은 것과는 역시 친해질 수 없다.


점심시간으로 사람이 많아지기 전에, 나온다. 이게 내 오전 일과다.




왜 이렇게 하고 있냐면.


은퇴 후의 생활을 고민하고 있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 할 일 없으면 정말 무료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궁금했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읽을 책이 많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데. 왜 무료하다는 거지. 정말 무료한 지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똑같은 루틴을 짜서 카페에 나오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생각을 했다. (아직 회사를 관둔 건 아닙니다 ㅋㅋㅋ)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생활이다. 뭐 물론 몇 달, 몇 년을 이렇게 하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들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인간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몇 가지 테스트를 더 해볼 생각이다. 이러면 어느 정도 은퇴 후에 필요한 자산 규모도 산출이 가능하겠지. 나는 카페에서 매일 커피 한잔 할 돈 정도면 좋은 것 같다. (물론 물가 상승률은 논외로 하고)


나에게도 언젠가 이 노동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시간이 올 것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하지만 나는 그 시점만은 자의로 결정하고 싶다. 어떤 무대에서든지 스스로 하는 퇴장이 가장 멋진 법이니까.


여러분도 혹시 이런 고민해 보신 적 있으신지.


언제 은퇴하실 예정이신가요?

은퇴하면 뭐 하실 건가요?




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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