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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씰처럼 일하라. 민첩하고 유연한 IT 조직의 비밀

by 이서


현대 IT조직은 민첩하고 유연한 소규모 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오래된 상식이 되었다. 덩치만 큰 IT조직은 도태되거나, 썩어버린 줄도 모르고 관료화되어 느리게 망해간다.


최근 IT 기업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인당 매출'이다. 인력의 규모로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기업의 복잡한 보고 체계와 느린 의사결정 속에서 각 팀원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필연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목적을 중심으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제품 별로 뭉치지 못한 조직은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단순히 '빨리' 움직이는 것을 넘어, '정확하고 치명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 구성과 일하는 방식의 본질을 바꿔야 한다. 나는 그 해답이 바로 미 해군 특수부대, 델타포스(Delta Force)혹은 네이비씰(Navy SEALs)의 조직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 많이 이야기했었지만, 나는 현대 IT조직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는 특수부대와 흡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의 마음가짐부터 조직 운영의 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원팀 스피릿까지,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전 글이 궁금하신 분은 한 번 읽어보시길, https://brunch.co.kr/@dontgiveup/237, 'IT조직은 팀플레이로 돌아가지 않는다')




최근 접한 한 소설에서, 미군 내 태스크포스(TF) 운영 방식을 꼬집는 유쾌한 우스갯소리를 읽었다.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각 부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자.


수뇌부는 일단 가장 만만하고 인력이 많은 해병대에게 문제 해결을 넘긴다. 해병대는 우렁차게 대답을 올리고, 바로 해결에 착수한다. 일단 벙커부터 보강한다. 부대원을 소집하고 수비 모드로 들어간다. 공격보다는 방어, 새로운 시도보다는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데 집중한다. 일에 진척은 더디고, 시간만 흘러간다. 대기업 모드다.


수뇌부는 해병대의 방식이 믿음직스럽지 않다. 뭔가 하는 것 같긴 한데, 보고서도 올라오긴 하는데, 주간업무에도 이것저것 쓰여있긴 한데, 뾰족한 뭔가가 없다. 지지부진하다. 그래서 일을 넘긴다. 믿을 수 있는 부대에게, 어디? 바로바로 네이비 씰이다.


우리?


드디어, 태스크가 네이비씰에게 넘어온다.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정리해 보자.


- 계획 : 부대원들은 계급을 떠나 모두 모여 토론한다. 작전의 핵심 목표를 명확히 하고, 비상 탈출구, 보급, 진입로 등 모든 변수를 꼼꼼히 파악한다.

- 팀 구성 : 3명이나 4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Team of Teams)을 사방에 배치할 공격 루트와 계획을 세운다.

- 훈련 : 실전과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십, 수백 번 훈련한다. 이 과정에서 아군의 움직임과 호흡이 완벽하게 맞춰진다.

- 실행 : 작전을 수행하고, 임무를 완수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군 사상자도 생기는 뼈아픈 교전도 벌어지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다.

- 검토 : 작전 뒤에는 '사후 검토(AAR: After Action Review)'를 통해 무엇이 잘되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철저하게 분석한다.


해병대를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은 명백히 네이비씰 쪽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수평적인 토론과 분권형 지휘'이다. 네이비씰은 작전을 시작하면 리더가 모든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 현장의 말단 대원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그들이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권한을 위임한다. IT서비스 운영에 비추어 보자면, 이는 개발자와 운영자가 현장에서 발생하는 장애나 사용자의 피드백에 대해 상부의 결재를 기다리지 않고 즉각 대응하는 것과 같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으로 이미 '원팀'의 규칙과 목표가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결재와 승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모두 믿고 위임되어 있다.



또한, '목적 조직'이 태스크의 완수에 중요한 요소다. IT 조직은 '목적 조직'이어야 한다. 모두 일 해봐서 알 거다. 기획/개발이 서로 다른 조직에 있을 경우, 그 협업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지 말이다. 결국 감정싸움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외주 개발처럼 기획과 개발을 칼로 자르듯 별개의 조직으로 분리해 놓고 긴밀한 협업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평가와 고과는 팀 단위로 이루어지지.) 네이비씰은 '임무 완수'라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 제품아래 기획, 개발, 운영이 하나의 팀으로 뭉쳐야만 비로소 빠르고 정확한 '임무 완수'가 가능해진다.



결국, 리더십이 전부다.


이 모든 것의 방점은 결국 리더십에 찍힌다. 수평적인 토론과 의사소통, 목적 조직 기반의 팀 구성, 권한 위임을 통한 주인 의식, 이 모든 것들의 뿌리에는 올바른 리더십이 존재해야 한다. 분대원들이 스스로 따라오게 하고, 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것은 몇 푼 안 되는 인센티브나 잠깐의 진급 유혹이 아니다. 그것은 '극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팀을 이끄는 리더십에서 나온다.


리더가 목표와 위험을 명확히 설정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팀원들을 신뢰하고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할 때, 비로소 팀원들은 스스로 오너십을 갖고 두려움 없이 행동한다. 네이비씰의 성공 방정식처럼, IT 조직에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업무 효율화를 꾀하고, 관리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미명하에 대기업 관료 마인드로 IT조직을 운영하겠다는 고위직들이 많이 존재한다. 개발자들을 ‘툴'로 취급하며 이 제품, 저 제품 유지보수하게 만드는 기상천외한 '기능 조직'들이 많다. 기획자들을 에이전시로 여기며 지시한 기획서만 작성해서 개발팀에 던지라고 하는 끔찍한 IT서비스 공장들의 컨베이어벨트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


생존을 결정짓는 키워드는 명확하다.
바로, ‘문화'다.


나는 AI가 불러올 혁명의 바람을 흥미 있게 지켜보고 있다. 국내 대기업과 유명 IT서비스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꾸준히 살펴볼 생각이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국면인가. 어떤 기업이 살아남고, 어떤 기업이 몰락할 것인가. 살아남기 위한 ‘문화'를 이미 갖춘 곳은 어디이며, 여전히 개발자를 도구 취급하는 조직은 어디인가.


당신의 조직은 ‘네이비씰'처럼 일하고 있는가?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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