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동네 근처에 핫한 음식점이 생겼다는 소문이 들었다. 곰탕집이라던데, 근처 어머님들 사이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한가 보더라. (아내가 나에게 말해줬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빨리 입소문을 타는 거지.
신종 바이럴인가?
궁금하면 가봐야지.
상호가 어마어마하다. 이름하야 '거대곰탕'
부산 해운대의 유명 한우 전문점인 '거대갈비'에서 런칭한 곰탕 전문 브랜드라고 한다. '거대'시리즈인가. 이미 고급 한우 취급으로 명성을 쌓은 '거대갈비'라는 외식 기업의 노하우와 자본력이 투입된 결과물로 보인다. 보통 잘하는 해장국집이나 곰탕집은 자체 축산 사업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류인 듯.
비슷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캠핑용품으로 유명한 헬리녹스는 원래 알루미늄 회사로 명성을 쌓았고, 로로피아나 같은 명품 의류 브랜드는 원래 원단 회사로 명성을 쌓았다. '근본'이 탄탄하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한 것이 세상의 이치. 인간도 마찬가지다. '근본'이 갖춰졌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인정받을 수 있다. 나는 그 '근본'이 바로 인성이고 태도라고 본다.
아무튼, '거대갈비'의 명성에 걸맞게 좋은 한우를 사용하여 곰탕을 끓여낸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른바 프리미엄 한식 보양식의 이미지다. 비싸지만 질 좋은 한우를 썼다는 홍보, 이는 일반적인 곰탕/설렁탕집과는 차별화된 고급화된 곰탕을 표방한다. 이쯤 해서 슬슬 가격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도착했다.
웨이팅이 있다.
입장.
묘하다. 곰탕집 홀에서 '플라이 미 투더문'이 흘러나온다.
슬슬 컨셉이 뭔지 알 것 같다.
나왔다.
이 집의 시그니처, ‘고기곰탕(뽀얀곰탕)’
요새 나의 맛따라멋따라 메이트, 아들과 함께 왔는데.
아들은 조금 더 비싼 거 시켜줬다.
‘(시그니처)농후하고 더 진한 뽀얀곰탕‘
이게 4,000원 더 비싸다. 순전히 궁금해서 호기심에 시켜봤다.
‘(시그니처)농후하고 더 진한 뽀얀곰탕‘은 더 비싼 거라 명란젓도 주네.
김치가 잘 익었다. 적당히 붉은 게 때깔이 곱다.
자, 이제 그 유명한 국물을 먹어보자.
와, 진하다.
이건 곰탕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다. 오히려 크림스프에 가깝다.
고기는 과연 부드럽고 쫄깃하다.
질 좋은 고기를 썼다더니, 사실이었다.
살살 녹는다.
국물이 진하다 못해, 조금 두면 표면에 기름막이 생긴다.
뭐 열심히 먹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리 봐도 어떻게 이런 색이 나올까 싶다.
고기와 뼈를 오래 고아서 이런 색의 국물이 나온다고?
같이 나온 특제 소스에 고기를 찍어먹어도 맛있다.
소스 맛은, 그 왜 수육에 같이 나오는 간장베이스의 매콤한 소스. 그거다.
밥도 국물에 말아먹기 좋게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졌다.
밥에 말아먹으니, 무슨 우유에 밥 말아먹는 느낌이다.
직접 제면 한다고 해서, 면 사리를 추가해 봤다. 궁금하면 맛을 봐야지.
면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곰탕 국물까지 같이 나온다.
칼국수면에 가깝고, 면을 씹히는 맛이 있을 정도로 적당히 쫄깃한 강도가 있다.
마냥 부들부들한 면은 아니다.
밥을 말아서 면과 함께, 고기, 김치를 올려서 먹는다.
완료.
결론부터 말하자면(이미 글의 끝이긴 하지만 ㅋㅋ)
다시 찾진 않을 것 같다.
순전히 호기심에 방문하긴 했지만, 두 번 올 맛은 아니다.
기대했던 국물의 진함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농도가 내 예상의 선을 넘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안과 코끝을 스치는 묘한 풍미(비린내라고 하면 좀 억지일까)가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국물이 너무 깊어서 오히려 닭 육수와 비슷한 질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 강렬함 때문에 쉽게 물렸다. 함께 간 아들은 결국 반 정도 남겼다. 진한 맛이 조금 버거웠나 보다. 나는 더 권하지 않고 멈추게 했다. 맛을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
우리는 나와서 얼른 탄산음료수를 찾았다.
다음엔 '신선설농탕'에나 가자.라고 서로 농담했다.
이러면서 아들의 취향과 호오가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비싼 게 최고'라는 단순한 판단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나가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삶이란 영원한 개인화, 커스터마이징의 길이다. 아빠가 도와줄게 아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