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 맘 때면 찾아오는 내 오래된 친구. 바로, '알레르기성 비염'
지금부터 20년 전쯤, 나는 매년 초겨울 코감기로 이비인후과를 들락날락했다. 시청 앞에서 근무할 때라 단골(?) 병원이 있었다. 내가 5년 정도 그 병원을 찾았을 때였을까,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매년 오시는데, 이거 알레르기인 건 아시죠?" 응?? 나는 당연히 코감기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게 알레르기였단다. 어쩐지 감기랑은 좀 다르더라.
이게. 원인이 찬바람일 수도, 꽃가루일 수도 있고, 아무튼 다양하다고 한다. 1년에 한 번만 비염에 대응하다 보니, 나는 제대로 된 프로토콜을 마련하지 못했다. 텀이 기니까 잊는 거다. 안 되겠다. 기록을 남긴다. 목적은 비염 발생 시 행해야 하는 행동 수칙을 기록. 내 아들이 혹시나 나이가 들어 나처럼 알레르기성 비염을 만났을 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다. 내 유전자를 절반 가지고 있으니, 내 대응책이 어느 정도 맞춤으로 작동하겠지.
미래의 아들, 널 위해 쓴 글이야.
(안 그러길 바라지만) 혹시 겨울만 되면 코를 훌쩍거리니?
아빠는 이렇게 하고 있단다.
몸이 과잉방어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알레르겐'이라는 평범한 물질에 대해 너무 과하게 방어하기 때문에 생긴다. 알레르겐은 꽃가루, 집먼지 진드기, 강아지나 고양이의 털(비듬), 곰팡이 등 보통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다가 코 점막이 알레르겐을 만나면, 우리 몸은 '위험해!'라고 착각하고 IgE 항체라는 무기를 만든다. 이 무기들이 코 점막에 있는 비만세포라는 경보 장치에 달라붙는다.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다음에 똑같은 알레르겐이 들어오면, 이 경보 장치가 팡! 터지면서 히스타민이라는 화학 물질을 마구 뿜어낸다. 이 히스타민이 코를 자극해서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나게 하며, 코 점막을 붓게 해 코가 막히는 거다.
주요 증상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재채기, 물처럼 주르륵 흐르는 맑은 콧물, 숨쉬기 힘든 코 막힘, 가래로 인한 기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찬 공기를 쐴 때 증상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진짜 ‘코감기’와 비슷한데, 다른 점은 열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 막힘은 밤에 더 심해져서 입으로 숨을 쉬게 만들고, 입으로 숨을 쉬니 목이 건조해지거나 아플 수 있다. 이 외에도 코 안과 눈이 심하게 가려운 증상이 흔하고, 눈이 빨갛게 되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함께 오기도 한다. 이런 증상들 때문에 업무 시간에 집중하기 어렵고, 계속 코를 훌쩍거리거나 풀게 되어 일상생활에도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내 개인적인 증상은 이렇다. 일단 2,3일간 목이 칼칼하다. 이때, 어? 이거 감기인가? 싶지만 감기가 아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맑은 콧물이 나온다. 심할 땐 줄줄 흐른다. 코가 막혀 숨쉬기가 힘들다. 밤에 더 심해져서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입으로 숨을 쉬니 아침엔 목이 건조해져 더 불편하다. 호흡이 정상적이지 않으니 두통이 온다. 두통은 아침에 가장 심하다. 이때부터 가래가 생겨 기침도 나온다.
항히스타민제 (알레르기 약)이 가장 흔하게 쓰인다. 히스타민의 작용(과잉방어)을 막아서 재채기, 콧물을 빠르게 줄여준다. 원래 이 약 먹으면 졸리고 무기력했는데, 요즘 나오는 2세대 약들은 졸음이 덜 와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적다고 한다.
비강 내 스테로이드 스프레이 (코에 뿌리는 염증약)도 있다. 비염 치료에 있어 가장 효과가 좋은 약인데, 코 점막에 생긴 염증을 강력하게 진정시켜서 코 막힘을 포함한 모든 증상을 장기적으로 조절해 준다. 매일 꾸준히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약(흔히 코 뚫리는 약이라 불리는)은 중독성 혹은 반동효과가 있다고 알고 있어서 좋아하진 않는다. 나중엔 스프레이의 노예가 될 수도 있으니. 게다가 아무리 국소제이며 저용량이라고 해도 스테로이드는 어쩐지 마음에 안 든다.
약을 바로 먹자.
히스타민 반응 초기에,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약을 빠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을 초기에 잡아야 염증 확장을 줄이고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가을이 끝나가 찬바람이 불고, 목이 칼칼하다? 우물쭈물 대지 말고 즉시 알레르기 약을 먹자. 하지만, 내 경우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무기력감, 두통이 더 심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하루 1알씩 복용이니, 그래서 자기 전에 먹는 게 좋다. 반 잘라서 아침저녁으로 먹는 테스트도 해봐야겠다. 자신에게 맞는 복용 패턴을 찾는 게 중요하다.
코 세척을 하자.
생리식염수를 이용해 코 안을 씻어준다. 내 기준 가장 효과가 좋더라. 코 점막에 붙어있는 알레르겐과 콧물을 씻어내어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생리식염수 코세척은 현재 가장 효과적이고, 가성비도 좋으며, 미국 FDA에서도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권고하고 있다. 증상이 발현된다 싶으면, 즉시 아침저녁으로 코 세척을 해야 한다. 귀찮겠지만, 가장 쉽고 간단하며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코 세척 후에는 그냥 두지 말고, 비강에 차 있는 식염수를 고개를 좌우위아래로 돌리며 코를 풀어 끝까지 빼내야 한다.(그래야 청소가 되는 거니까) 코를 충분히 풀었다면, 남아있는 코는 마셔버리는 게 좋다. 콧구멍을 잡아 벌리면 훨씬 쉽게 들이마실 수 있다. 진행 과정이 전체적으로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니, 가급적 화장실에서 혼자 세척하는 걸 추천한다.(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첨부한다.)
물을 많이 마시자.
물은 콧물과 가래를 묽게 해 주고, 점액 배출에 도움을 준다. 따뜻한 물을 마시면 몸속의 수분 공급이 원활해진다. 이렇게 되면 콧물이나 목 뒤로 넘어가는 가래가 묽어져서 더 쉽게 배출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코 막힘이 완화되는 데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비염 환자는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는 경우가 많아 목이 쉽게 건조해지는데, 따뜻한 물은 목과 코 점막을 촉촉하게 유지시켜 건조함으로 인한 자극이나 통증을 줄여주고, 기침 증상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따뜻하게 있자.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는 사람들은 찬 공기나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코 점막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쌀쌀해지면 증상이 튀어나오는 이유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따뜻한 실내에 있다가 갑자기 추운 밖으로 나갈 때 코가 줄줄 흐르거나 재채기가 연달아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면 이런 식의 '온도 변화로 인한 자극'을 줄일 수 있어서 비염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비염은 결국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과 관련된 증상이기 때문에,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서 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하고 따뜻한 몸은 알레르겐에 대한 과민 반응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 특히 늦가을, 초겨울에 옷을 따뜻하게 입자.
결국, 따뜻하게 옷을 입고(특히 목을 따뜻하게 하는 게 중요) 따뜻한 곳에서 지내는 것은 비염 증상을 직접 치료하는 약은 아니지만,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예방하고 몸의 방어 능력을 높이는 아주 중요한 생활 습관이다.
반신욕도 좋다.
무엇보다 염증이 찬 콧물과 가래 등을 배출하는 게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뜨거운 욕조물에 반신욕을 하면 코가 좀 뚫리는 기분이었다. 콧물과 가래도 녹아 어느 정도 사라지는 느낌이다.
푹 쉬자.
말해 무엇하랴. 가장 중요하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앞뒤 가릴 거 없이 누워서 푹 쉬자. 몸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게 도움을 주자.
아들, 이 잔소리(?) 같은 글 끝까지 읽느라 고생했다. 다행히 지금 네 코는 아주아주 튼튼하지만,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잠재적인 코 막힘의 위험'에 대비해 미리 이 '비염 탈출 매뉴얼'을 준비했다. (쓸모없는 매뉴얼이 되길 빈다.)
이 정보들은 혹시 모를 미래의 네 코가 비상벨을 울릴 때를 위한 보험 같은 거다. 당연히 네 코는 평생 건강하겠지만, 만약 언젠가 찬바람이나 꽃가루, 혹은 집먼지 때문에 콧물이 흐르면, '혹시 아빠가 말한 비염?'이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펼쳐보자. 그리고 씩씩하게 대처하자.
우리 인생의 진정한 재미와 묘미는 바로 문제들을 피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씩씩하게 해결해 나가는 데 있지 않겠니. 만약 코가 훌쩍인다면, '레벨 업'을 위한 새로운 미션이라고 생각하자!(퀘스트를 해결하고, 경험치를 쌓아야 레벨이 올라가잖아ㅋㅋ) 비염이든, 시험 문제든, 인생의 어떤 문제든 유쾌하게 극복하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숙제 다 하면 피씨방 같이 가자. 엄마한텐 비밀로 할게. 아빠가 라면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