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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보다

by 이서


띵.

갑자기 문자가 하나 왔다. 확인했다. 경악스러운 내용이다. 제목은 '쿠팡 개인정보 노출 통지'란다. '유출'이 아니고 '노출'이라고? 단어 선택 한번 기가 막힌다. '통지'? 통지는 또 뭐고. 제목만 보면 내가 뭐 잘못해서 혼나는 내용 같다.


<쿠팡 개인정보 노출 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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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일부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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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노출된 정보는 고객님의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입력하신 이름,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주문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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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입력한 이름, 전화번호, 주소) 라면 내가 쿠팡에 입력한 개인정보 거의 전체인데, 이걸 일부라고 볼 수 있나. 3,370만 명이면 대한민국에서 쿠팡을 사용할 수 있는 성인 모두로 보인다. 이 정도면 대부분의 개인 정보가 모두 유출된 것인데. 게다가 5개월 전에 털린 걸 이제야 공개하고 있다. 모두 평문이라면, 대체 암호화도 안 한 건지, 방화벽은 무용지물이었던 건지 무슨 일인가 싶다.




쿠팡 경영진은 심지어 정보 유출 공개 직전, 주식까지 처분했다고 한다. 맙소사.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고 밖에 달리 묘사할 단어가 없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공개되기 전에 자신들만 손해를 회피하기 위해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고객 및 일반 주주에 대한 책임 의무를 저버리고 개인의 사익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https://naver.me/FpPLMvdf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히 유출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피싱 조직에 넘어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다. 이름과 전화번호, 거기에 주소까지 알고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기 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무궁무진하다. 사실상 피해자의 모든 것을 알고 소위 '작업'할 수 있는 거다.


예를 들어, 범죄자들은 이 유출 정보를 활용하여 마치 쿠팡이나 정부기관, 금융회사 등을 사칭하고, "배송 지연, 환불 안내, 피해보상 조회" 등을 명분으로 삼아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정확한 구매 상품 정보'를 언급하며 접근할 경우 소비자는 의심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칭 전화나 문자 메시지에 속아 악성 앱(원격제어 앱 등)을 설치하거나 금융 정보를 입력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으로 금전적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심각한 사안이다.

2024년 한국에서 보이스피싱 1인당 피해액은 4,000만 원이 넘었다. 무려 30억 원을 당한 피해자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해 생겨날 추가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삼천만이 넘는 한국인의 개인정보라니. 높은 가격에 거래될 확률이 높다. 정보가 판매되어, 앞으로 많은 피해자가 나올 텐데. 아차. 판매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계정당 5천 원에 중국에서 판매 중이라고 한다.

https://naver.me/5ix80m66




쿠팡이 일으킨 문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과도한 업무 강도, 살인적인 근무 환경(폭염 등), 안전 문제로 인한 잦은 산업재해 및 사망 사고 발생부터 '로켓배송' 등 극단적인 속도 경쟁으로 인한 배송 기사들의 과로사 및 노동 환경 악화 문제까지. 일으키는 사회악이 무서울 정도이다. 하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법적 판단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list.aspx?SRS_CD=0000020692




한국 사회에서 일부 기업이나 개인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책임은 보통 솜방망이로 끝난다. '죄송해요~ 담부터 안 그럴게요 헤헷'이라고 하면 그냥 넘어가는 게 한국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강력한 법적 조치와 같은 실질적인 처벌이 부재하거나 있더라도 미약한 것(과징금 ㅇㅇ억 수준)이 현실이다. 책임 있는 행위를 요구하기보다는 온정주의적 분위기나 실효성 없는 사과로 면죄부를 주는 구조적 문제 또한 개인정보 유출의 재발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쿠팡은 전관 출신들을 대거 영입하여, 규제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경영진 및 주요 임원 자리에 판사, 검사 등 법조계 출신 전관을 비롯하여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 경찰청, 국회 보좌진 등 주요 정부/권력 기관 출신 인사들을 상당수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강한승 현 쿠팡 대표이사는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거쳤으며, 그는 판사 출신이다.


이번에도 아마, 징벌적 손해배상도, 법적 조치도, 그 어떤 처벌도 없을 거다.

그럴 거라고 본다.

왜?

만화 '송곳' 중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니들이 어쩔 건데? 쿠팡 안 쓸 거야? 로켓배송 없어져도 돼? ㅋㅋ 그래봐야 니들 손해지, 우린 절대 안 망해~"


어떻습니까,

당신은 '쿠팡'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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