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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의 마음 Dec 16. 2023

까미노를 걸으며 만난 사람들 5

오십을 바라보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미국 간호사 쥴리

쥴리는 자신의 초등학교 친구인 멜라니와 함께 순례길을 걸었다. 쥴리와 멜라니는 올해 60세가 된다고 했고 두 분의 부모님들이 자신들이 어렸을 때 스페인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다녔던 외국인 학교에서 만났다고 했다. 한 사람은 미국에 살고 다른 사람은 캐나다와 스페인을 오가며 삶에도 불구하고 40년이 넘게 친구로 지낸 셈이다.


내가 멜라니와 쥴리와 친해진 것은 순례길 초반에 한 공립 알베르게에서 멜라니가 자기 친구가 발에 물집이 생겨 고생한다고 내게 걱정하면서 말했을 때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하면서부터였다. 난 이미 그전에 두 발에 모두 물집이 심해서 고생하면서 물집치료를 위한 모든 도구들과 약을 구비하고 있었기에 한 번 보자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쥴리의 발에 있는 물집을 소독하고 소독 주사기로 터뜨려 물집 안에 있는 액체 성분을 제거하고 베타딘 젤을 발라 주면서 양말을 신지 말고 공기가 통하게 하라고 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걷기도 편해지고 다시 물집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한동안 이 두 분을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재회하게 된 것은 Astroga에서였다. 그 이후 Foncebadon에서 Ponferrada을 걸었던 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구간을 걸을 때 약 해발 1500미터 지점에서 철의 십자가를 지나게 되는데  순례자들이 자기 고향의 돌을 챙겨 와서 여기 철십자가 앞에 던지며 자신들의 걱정과 근심들을 덜어 버린다고 했다.  


멜라니는 내게 돌을 몇 개나 가져왔냐고 물었지만 난 철의 십자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가져온 것이 했다. 내가 지고 가고 있는 걱정과 근심거리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평안을 얻고 싶었다.


쥴리는 내가 넌 어떤 돌을 가져왔니라고 물었을 때 난 엄마를 데려 왔어. 엄마가 스페인으로 다시 오고 싶어 했을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하얀 비닐봉지에 있는 흰 가루를 보여 주었을 때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쥴리는 올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화장 후 분골의 일부를 가져와서 철의 십자가 주변에 뿌렸다.  


산을 내려가며 쥴리가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난 엄마와 어려운 관계로 평생을 지냈어. 돌아가시기 전 4 년 동안은 직접 만나지 못하고 통화하는 정도로 … ”우리 엄마는 쉽지 않은 분이셨기에 가깝게 지내는 엄마와 딸로는 지내지 못했지만 돌아가시기 전 양로원에서 잘 지내셨고 엄마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하셨기에 그것으로 감사해. “ 조금은 이해하기가 어려워 내가 다시 쥴리에게 넌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엄마에게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드는 거니라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자신과 엄마의 관계에서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도가 그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며 난 쉽지 않았던 엄마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나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엄마가 스페인 땅을 사랑했기에 엄마의 일부가 이곳에 돌아오기를 바랐을 거라며 담담히 나누는 그녀를 보며 난 나와 힘든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화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 같은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 삶에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우린 때론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고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나는 쥴리를 통해 그래도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우리는 아주 가까운 가족들과도  어려운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항상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부담을 주고 해결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려운 관계가 있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이후에는 해결되지 않는 관계에서 오는 죄책감을 내려놓는 것이 좋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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