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대 대기업 김팀장 이야기 #3

오늘 다들 저녁에 시간되지?

by Keui

윤대리는 오늘도 김팀장의 점심시간 눈치를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김팀장은 혼자 밥을 먹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었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척 했지만 혼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팀원들이 회의나 개인 일정으로 바쁜 날에는 점심을 아예 거르거나 누군가에게 들어오는 길에 김밥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했다. 그런 날이면 윤대리와 팀원들은 괜히 자리를 비우거나 조용히 김밥집으로 향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은 팀원들에게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점심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넘어 갈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저녁 식사다. 김팀장은 저녁 약속을 잡는 일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오후 3시쯤이면 사내 메신저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인사로 시작하지만, 곧

"오늘 저녁 어때요?"라는 메시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김팀장은 메시지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곧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 이 팀장님, 오늘 저녁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네네, 그럼 7시에 그 식당에서 뵙죠."


이렇게 약속을 잡아내는 그의 노력은 대단했다. 그 꾸준함과 성실함이 업무시간에는 보이지 않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의 목표는 단순히 저녁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주로 법인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다른 팀의 팀장이나 임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식사 비용을 처리할 방법까지 고려한 그의 전략이었다. 윤대리는 김팀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돌리는 모습을 보며, 그의 저녁 약속이 단순한 사교 활동을 넘어선 생존 전략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팀장은 단순히 저녁 약속만 잡는 것이 아니라, 사내의 축하할 일들도 모두 꿰차고 있었다. 생일, 승진, 심지어 자녀의 입학 소식까지 그는 기막히게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아 정말 축하드려요. 이참에 식사나 한번 하셔야죠"

그의 축하는 기쁨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저녁 약속을 잡기 위한 또 다른 도구였다. 팀원들은 그의 능숙한 축하술에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약속이 매번 성사되는 것은 아니었다. 약속이 잡히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윤대리와 팀원들은 조용히 긴장했다. 그날이 바로 '팀 번개 회식'의 날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김팀장은 약속이 실패한 날, 특유의 단호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자, 오늘은 우리 팀 회식이다. 다들 괜찮지?"

물론 팀원들은 괜찮지 않았다. 이미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 사람들도 있었고, 다른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김팀장의 제안을 거절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거절했다간 이후에 더 큰 눈치를 보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팀 내에서는 이런 상황이 보이지 않는 순번제로 굳어져 있었다. 번개 회식에 참여하는 팀원들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자리를 채웠다. 이번 주는 누가 나갈 차례인지, 다음 주는 누구의 순번인지 다들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순번제가 있어도 모두가 김팀장이 약속을 잡길 기원하는 날들이 많았다.


김팀장이 저녁 약속을 잡는 일주일 평균 횟수는 3~4일 정도였다. 그가 저녁을 집에서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윤대리는 가끔 궁금해졌다.

"도대체 집에서는 저녁을 안 먹는 걸까? 아니면 가족이 없는 걸까?"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질문을 직접 묻지 않았다. 그저 팀원들은 그가 약속을 잡아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어느 날 약속이 실패로 끝났고 어김없니 팀 회식이 있던날 김팀장은 자리에서 팀원들에게 말했다.

"우리 팀은 참 좋아. 이렇게 서로 챙기고,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분위기."

팀원들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 분위기를 챙기고 있는 건 사실 김팀장의 외로움 때문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다음 순번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번개 회식이 끝난 뒤, 팀원들은 사내 메신저에서 조용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오늘도 김팀장 약속 실패. 번개 회식 타임~.' 그러자 정 대리가 답글을 달았다.

'다음 순번은 누구야?' 박 대리가 답했다. '내 차례인 것 같아. 하필 오늘은 회식 없이 집에 가고 싶었는데.' 다들 씁쓸하지만 공감되는 웃음을 터뜨렸다.


김팀장은 번개 회식 중에도 다음 날의 저녁 약속을 위해 전화를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 손에는 메뉴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붙잡고 말했다.

"아, 박 팀장님! 내일 저녁 시간 괜찮으시죠? 제가 괜찮은 곳으로 예약할게요"

대단해 보이기까지한 그의 식사 약속에 대한 열정이다.

윤대리는 오늘도 꽤나 취한 상태로 집으로아가며 생각했다. "이러니 다들 번개 회식을 피하려고 애쓰지. 다음 주는 제발 누군가와 약속이 잡히길." 그는 팀 내 보이지 않는 규칙이 언젠가는 깨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울대 대기업 김팀장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