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유저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시작한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가 될 가능성이 높긴 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한다는 것은 '입문'의 구질구질한 변명이랄까. 소위 말하는 '킬링타임(Killing Time)용 즉, 시간 때우기용이거나 20년 이상 각종 게임을 해오고 있는 나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고 믿는 '통제감'이 게임을 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감이란 현실에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지 못하고 본인의 삶을 통제(control)할 수 없지만 게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트레스 해소가 게임을 하는 목적이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믿을 것이다.
20년 전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군대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달에 한 번도, 아니 일주일 중 하루도 게임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어지간한 온라인게임은 다 해봤고 대다수가 해봤다는 패키지 게임 역시 다 해봤다. 그런데 그 어떤 게임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라보지는 못했다. 근성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노력하면 게임 속에서라도 최고가 될 수 있지만, 쉽게 지루함을 느꼈기 때문에 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통제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임 속에서도 초식 컨텐츠라고 부를만한 낚시, 채집, 하우징 등을 좋아했다. 현실세계도 경쟁인데 게임에서 만큼은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혼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컨텐츠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8년간 온라인게임 시장을 독주하고 있는 게임이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게임은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다. 장르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모두가 롤에 대해서 열광할 때도 나는 홈페이지 조차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권유로 게임을 시작했을 때, 흥미를 느끼고 장기간 플레이했다. 매 게임마다 매칭을 통해 같은 팀원이 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형이라 부르고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20년 전의 게임 속 분위기를 살펴보면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런 식의 막무가내는 없었다. 아마도 롤이 그 당시 게임이었다면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게임 시작 전에는 파이팅을 외쳤을 것이다.
반말을 하는 것은 익명이 보장된 곳에서 더 과감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같은 팀, 상대팀을 막론하고 조롱하고 대놓고 욕하기도 한다. 운영진 측에서도 유저 간 다툼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2013년쯤, 내가 롤을 처음 했을 때보다 확실히 비속어 필터링이 더 엄격해졌다. 하지만 자음과 모음을 띄우거나 숫자를 섞는 등의 형태로 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같은 팀원이 내게 욕을 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맞받아쳤다가는 게임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맞받아 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 잘못이 아니라도 상대에게 사과하고 잘해보자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제법 단단해 보이는 멘탈도 때때로 조각난다. 방귀 뀐 놈이 화낸다고, 자신의 잘못을 팀원에게 전가한다. 만약 내가 잘못한 상황이라면 내가 욕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지만, 저 방귀 뀐 놈은 욕먹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되는 상황에서도 먼저 욕을 하는 식이다. 내게 롤을 권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롤은 먼저 욕하는 놈이 이기는 게임이다. 네가 잘못을 했어도 먼저 욕하면 되는 거지.'
누군가 실수를 하면 그 즉시, 나오는 3가지 연속되는 말이 있다.
?
하...
아니 뭐하냐
물음표도 사실상 '뭐하냐'의 의미에 해당한다. 보통 저렇게 시작해서 게임을 하지 마라, 000끼 그리고 결국 가족까지 언급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게임에서 멘탈이 흔들리다 못해 깨지는 날에는 울화통이 터진다. 평소에는 받아치지 않던 비난과 욕들을 맞받아친다. 사지가 멀쩡하고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내가 상담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 정도의 데미지를 받는다. 그까짓것 마음에 왜 담아두고 그러냐며 공감을 못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정도로 멘탈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욕을 들어도 무시하거나, 어떠한 마음가짐을 한다고 해도 뇌에서는 이미 '노르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고 있다. 노르아드레날린이 노(怒)를 대노로 만들고 공격할 용기를 가져다준다. 하나하나 다 맞받아칠 정도로 심할 경우는 게임을 종료한 후 휴식하고 밖에서 광합성(햇볕을 쫴야 한다)을 해야 한다. 미쳐버리기 전에.
확실히 롤은 타인과 팀을 이루어 플레이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긴 하다. 오버워치도 비슷한 상황인 것을 생각했을 때 팀플레이로 플레이어 간 경쟁을 하는 게임은 이런 위험에 노출돼있다. 하지만 20년 전의 포트리스 같은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초면에 반말을 하지는 않았다. 같은 팀에게 공격당해도 고의가 아니라면 욕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비단 게임에서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와 같은 SNS에서도 볼 수 있는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