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에 대한 나의 존중 방법
문구덕후인 나에게 요 근래의 최애템은 바로 '북커버'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을 때마다 하나둘씩 구매하다 보니 이따금씩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통장에 유감을 표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크기가 제각각인 책이 북커버에 한 몸처럼 딱! 들어맞을 때면 묘한 쾌감과 함께 기분 좋은 독서의 시작이 되곤 해서 이 맛을 끊으래야 끊을 수가 없다.
북커버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보이고 싶지 않아 북커버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오롯이 책의 보호를 위해서 북커버를 사용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책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자라왔던 터라 책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고, 고시공부를 하던 때에 책비닐을 입히던 습관이 지금의 북커버 애용으로 이어졌다.
북커버의 장점 중 하나는 당연하게도 책을 깨끗이 유지시켜 준다는 것에 있다. 물기나 먼지로부터 책을 사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의 강한 충격에서도 책을 보호해 준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항상 새책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독서를 마치고 북커버에서 책을 꺼낼 때면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결과물을 존중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고, 언젠가는 나도 이런 존중을 받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창작 욕구가 충만해진다는 점이다.
작년,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힘입어 '텍스트힙'이 화제가 되면서 독서용품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북커버를 고르는 재미가 있어졌고, 이 재미는 독서에 대한 흥미로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예전보다 확실히 책을 자주 펼치게 되었지만, 부끄럽게도 다독(多讀)을 한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독서를 시작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심결에 유튜브 앱을 열게 되고, 책 한 권으로는 얻지 못할 다양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떠먹여 주는 여러 콘텐츠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예전에 초등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조사하면 법조인이나 기자와 같은 소위 '먹물 직업'이 인기였지만, 요즘은 단연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1위라고 한다. 나의 학창 시절에도 UCC가 유행하긴 했었지만, 지금처럼 스낵 콘텐츠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먹거리가 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UCC 그 게 밥 먹여주냐?'라는 말이 있곤 했었는데, 지금은 비싼 코스요리를 대접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요즘처럼 누구나 손쉽게 영상이나 글을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법은 「민법」도 「형법」도 아닌 「저작권법」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우리는 하루 종일 「저작권법」과 밀접한 행동들을 해나간다. 출근길에 듣는 음악, 무심코 넘기면서 보는 숏츠 영상, 회사에서 작성하는 보고서, 저녁식사 자리에서 지인들과의 사진 한 장. 이 모두가 저작물을 소비하거나 창작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저작권은 우리의 곁에 아주 가까이 있다. 물론 지금 선생님께서 읽고 있는 이 글도 어문저작물이다.
유튜브가 대중화되기 전에 내가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바로 북커버와 단짝인 '책'이었다. 책 속의 어느 한 페이지에는 1952년 세계저작권협약을 통해 등장한 'ⓒ'기호가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는 책의 저작권자를 아주 명확하고 든든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책은 역사적으로도 저작권과 함께했다. 인쇄술의 발달로 어문저작물의 대량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저작자의 권리를 지켜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그렇게 책은 저작권이라는 개념과 가장 먼저 어울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책=저작권'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책에는 당연하게도 창작자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저작권법」에서는 이를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저작물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사상과 감정'은 책 속의 글을 통해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고,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울고 웃고 화내고 공감하게 된다.
어린 시절 '책에도 권리가 있어야 하나?'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지만,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브런치 작가로서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 어떠한 권리보다도 저작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단 책뿐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저작물을 침해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고유한 사상과 감정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저작권은 인간과 분리할 수 없는 권리라고도 까지 생각을 연장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디지털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저작권이 너무 쉽게 침해된다. 게다가 침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창작물(저작물)의 효용가치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친다. 물론, 침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유혹적인 아이템일 수밖에 없다. 이미 완성되어 있기에 제작비용이 들지 않으며,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별도의 마케팅 없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침해가 장기화되는 경우에는 우리의 K-컬처를 스스로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너무나도 뻔하지만 무서운 결말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입장에서 더 이야기해 보자면 지금껏 작성한 글들과 이 글을 포함해 앞으로 써내려 갈 글들은 나의 살아온 기록이자,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나의 글들이 창작자이자 저작권자인 나의 의사에 반하여 소비가 이루어진다면 처음에는 인정받는다는 기쁨도 있겠지만, 이내 나는 방향을 잃고 깊은 박탈감의 늪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 늪을 뿌리치고 나와 다시 글을 쓰기에는 상당한 시간을 마주할 것만 같다.
이 때문에 나는 책을 보호하기 위해 북커버를 사용하는 것처럼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저작권 존중 및 보호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커버를 사용하는 건 단순히 책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저작물 안에 담긴 창작자의 생각 또는 어쩌면 그의 일생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자연스레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는 의지로 이어진다. 결국 북커버 등을 통해 책을 아끼는 것은 곧 창작자를 존중하는 태도이고, 이러한 태도는 저작권을 중심으로 한 문화와 관련 산업의 발전을 위한 시작이 된다.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저작물을 깨끗이 사용하고 정당하게 사용하는 일. 이것이야 말로 독자와 같은 소비자들이 창작자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