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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 기장에게 아이스아메리카노 부탁하는 한국 부기장

by 망고 파일럿


우리 회사는 노선에 따라 비행기에 타는 조종사 인원이 달라진다.


현재 내가 있는 아부다비 베이스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의 유럽노선들은 비행시간이 6-7시간 정도 나오기 때문에 기장과 부기장 이렇게 두 명이 타지만, 인천 노선이나 일본 혹은 미국이나 호주같이 장거리 비행의 경우에는 세명, 네 명이 타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인천으로 다녀오는 비행이었고 조종사는 기장 두 명과 부기장 한 명으로 구성된 편조였다. 그리고 이렇게 세 명이 한 편조로 구성될 때는, 부기장인 나는 이착륙 시 오른쪽 좌석에서 듀티를 수행하고, 두 기장은 인천으로 갈 때와 올 때 각각 한 번씩 교대로 왼쪽에 앉는다. 듀티가 아닌 기장은 칵핏 뒤쪽에 있는 좌석에 앉아있는다. 그날의 기장 두 명은 이탈리아와 이집트 사람이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날, 나는 칵핏 오른쪽 좌석에 앉아서 비행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날 듀티였던 이집트 기장 또한 왼쪽 좌석에 앉아서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탈리아 기장은 항공기 외부점검을 해주었고, 순항중 우리가 번갈아가면서 휴식할 좌석에 베개와 담요 등이 잘 실려있는지 확인해 주었다. 그렇게 확인을 마친 이탈리아 기장은 우리에게 와서 물었다.


"내가 마실 거라도 뭐 준비해 줄 거 있을까?"


보통은 캐빈크루분들이 칵핏에 오셔서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봐주지만, 그날은 칵핏에 인원이 한 명 더 있었기에 이탈리아 기장이 직접 챙겨주겠다는 배려를 보인 것이다.


보통의 날이라면, 나는 괜찮다고 하거나 조금 피곤한 날에는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부탁하지만 그날은 왠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인천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날 시차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입사 후 1년 만에 기내에서 처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겼다.


하지만 물어봐준 상대방은 이탈리아 사람,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기장에게 말했다.


"정말, 내가 너에게 이런 말하기 길티 하지만..."

"괜찮아 Mango, 뭐 갖다 줄까? 에스프레소?"

"아니, 혹시... Iced Americano 한 잔 만들어줄 수 있어?"

"아이스드 아메리까노?"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생전 처음 듣는 기괴한 조합에 놀란 것도 잠시, 충혈되어 있는 나의 눈의 간절함을 알아봤음이 분명했다.


"오께 오께, well well, 내가 최선을 다 해볼게."


마치, 내가 어느 외국인 친구 누군가에게 먹고 싶은 한식이 있느냐 물었을 때, 혹시 겉절이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여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은 심정이었을까.


그렇게 약 5분 정도를 기다리니, 이탈리아 기장이 타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도착했다.


아니 어찌 사약을 타오셨소


처음 받아보고 느낀 생각,


'아니, 어찌 사약을 타오셨소.'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차갑긴 했다. 에스프레소에 얼음을 넣어서 최대한 휘저어 녹인 후 커피의 온도를 최선을 다해 내린 느낌이었다. 아마 이탈리아 기장에게는 정말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을지도 모른다. 고마운 마음에 말했다.


"진짜 고마워."

"내 인생에 처음 타봐. Iced whatever coffee."


그렇게 우리는 이륙을 하였고, 이탈리아 기장이 휴식을 갔을 때 나는 옆에 있는 이집트 기장에게 말했다.


"잠깐 나 커피 좀 수리해야 해서 나갔다 올게."

"그럼, 시간 보내고 와."


꼬레안 스타일 아이스 아메리까노


그렇게 다시 직접 꼬레안 스타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부활시킨 커피를 들고 칵핏으로 돌아왔고, 부활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조금 더 내 입맛에 맞았지만, 그 안에 담긴 배려와 따듯함만큼은 이탈리아 기장이 타 준 그 첫 잔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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