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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홋카이도 갈래요?

9화. 작전명 탈!출!

by teaterrace

밤사이 달게 잤다.


설원 트래킹과 두 곳의 노천온천 그리고 긴장의 버스 웨이팅까지 꽉 채운 하루는 두 사람을 아주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창 밖에는 태양이 이제 막 기지개를 펴듯 낮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오비히로의 아침이다.


오비히로는 디저트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모르 온천’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름부터 낯설었다. 독일어로 ‘습원’을 뜻하는 모르(Moor). 수천 년 전 도카치강 주변 갈대 숲이 남긴 식물성 유기물이 온천수가 되어 솟아나는, 말 그대로 태고의 자연이 만든 물이었다. 광물이 아닌 식물이 주성분인 이 온천은, 피부에 잘 스며들어 피부를 촉촉하게 해주는 덕분에 ‘미인탕’이라는 별명도 있다.

지원은 서둘러 온천장으로 내려갔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다. 탕은 천장을 큰 돌로 둘러 마치 동굴처럼 보이도록 설계해 놨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이 희귀한 온천에 몸을 담갔다. 탕 아래 바닥에서 공기 방울이 부글거리며 올라와 지원의 몸 이곳저곳을 두드리듯 마사지했다. 지원은 두 손으로 온천수를 떠올려 얼굴에 부었다. 손가락 끝이 닫는 곳마다 매끌매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탕 색깔은 호박 빛깔을 띠었는데, 마치 석유를 물에 희석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기분 때문인지 온천 후에 가볍게 샤워를 한 후에도 화장수를 전혀 바르지 않아도 매끈함이 그대로 피부에 남아있었다. 과연 미인탕이로구나.

방에 돌아가니 한별이 이미 일어나서 TV를 보고 있었다. 피곤할 아이를 깨우는 대신 곁에 메모를 남기고 다녀왔더니 다행히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기로 있는 한별.

“잘 잤니, 한별? 엄마 없어서 안 놀랐어?”

“안녕. 엄마. 화장실 갔나 두리번거리다가 엄마 메모 봤어.”

“우리 별이도 오랜만에 푹 잤나 보다. 최근 들어 이렇게까지 늦게 일어난 일은 없었는데 말야.”

한별이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는 고프지 않니?”

“조금.”

지원은 한별에게 오비히로에서 유명한 음식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를 것을 제안했다.

“인디안 카레? 이름부터 특이하네!”

“그치? 실제로 인도식은 아니고, 옛날 일본에서 이국적인 단어들이 유행할 때 붙인 이름이래. 기억에 잘 남잖아.”

“왜 오비히로에서 왜 이렇게 유명해졌대?”

“평야가 많고 농산물이 풍부해서 재료가 좋으니까. 워낙 맛있어서 입소문을 타고 ‘시민 소울푸드’가 됐대.”

한별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울 카레라니. 어쩐지 나 이 오비히로가 좋아질 거 같아. 근데 엄마 공부 많이 했네?”

“그러엄. 그야말로 현장 체험 학습인데 이 정도는 필수지.”

한별이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이곳 시민들이 카레 냄비 들고 줄 서기도 했었대!”

“그 정도야? 와- 되게 궁금하네? 근데, 엄마는 소울푸드가 뭐야?”

“엄마? 엄마는 할머니표 수제비. 호박이랑 감자가 듬뿍 들어간. 할머니 수제비는 세 그릇도 먹을 수 있어.”

지원은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엄마의 수제비는 언제든, 어디에서는 식욕을 돋운다.

“별이는? 별이는 어떤 음식이 소울푸드야?”

“나는 당연히 엄마의 계란간장밥이지.”

그 말에 지원의 코끝이 아릿했다. 단순한 그 밥 한 그릇에, 별이가 마음을 담았으니까.

“정말?”

한별은 대답 대신 한쪽 눈을 윙크한 채로 지원 앞에 엄지를 내보였다. 소울푸드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두 사람은 금세 시장이 몰려왔다.

다행히 인디안 카레 가게는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빨간 색 차양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으로 황금색 벽에 터번을 쓴 인도인 양각 디자인이 보였다. 실내는 비교적 한산했다. 우선 베이스가 되는 루의 종류를 고르고 커틀릿, 햄버그, 치킨, 새우, 치즈 등 다양한 토핑을 선택할 수 있었다. 소고기를 듬뿍 사용해 감칠맛이 응축된 진한 풍미의 인디안 루, 양파의 단맛을 천천히 끌어낸 심플한 맛의 베이직 루, 마지막으로 홋카이도산 야채의 힘으로 맛을 높인 야채 루. 모두 궁금했지만 어딜 가든 기본이 최선이다. 지원은 인디안 루 베이스의 새우 카레에 치즈 토핑을 선택했고, 한별은 치킨 카레에 돈까스와 치즈 토핑을 선택했다. 종업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뉴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지 않는 가게인 모양이라고 지원은 생각했다. 그러나 지원의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은색 그릇에 세 가지의 카레가 서빙되고 나서야 주문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여성 한 명과 아이 한 명이 와서 카레 3개를 주문하니 종업원은 의아했던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밥을 다 먹지 않는다면 못 먹을 양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신나게 수저질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엄지 척.

카레 집을 나와 후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디저트 가게의 본점이 대부분 오비히로에 있다고 했다. 본점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싶은 마음으로. 길 건너에 커다란 순록 동상이 보였고 그 뒤로 대나무 숲 같은 길이 길게 나 있었다. 1층은 제품 판매, 2층은 디저트와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공간이라 두 사람은 그곳으로 올라갔다. ‘오비히로의 숲’이라는 이름의 수플레 케이크와 치즈 케이크, 그리고 딸기 우유를 주문했다. 밝은 초록 배경에 빨강과 노랑의 꽃 그림이 그려진 롯카테이Lok'katei 고유의 디자인이 프린팅된 쿠션이 인상 깊었다. 가게 입구도, 메뉴 이름도, 그리고 쿠션마저도 모두 숲을 연상시켰다. 폭신하면서도 쫀득한 질감의 치즈 케이크와 리코타치즈가 곁들여진 퐁신한 수플레 케이크. 오길 잘했다 싶은 맛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크렌베리 과자점에 들러 고구마 빵을 사 왔다. 식료품을 사듯 빵의 중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신기한 빵이었다. 스푼으로 찐 고구마를 떠먹듯 먹는 고구마 빵은 그들의 훌륭한 점심 식사가 되어 주었다. 유명한 도카치 우유와 함께 먹는 빵 맛은 포근함 그 자체였다.

저녁은 근처 부타동 집이었다. 인디안 카레로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했으니, 이번엔 도카치의 또 다른 대표 요리 차례다. 숙소를 나서며 지원이 말했다.

“부타동은 돼지고기 덮밥이야. 오비히로 사람들이 진짜 사랑하는 음식인데, 카레랑 함께 양대 산맥으로 불려. 오비히로에서 시작된 완전 오비히로 오리지널 요리.”

“이름도 귀엽다. 부.타.동!”

“그치? 그런데 이게 그냥 돼지고기 덮밥이 아니야. 간장 소스를 바른 고기를 숯불에 착— 구워서 불향이 살아 있거든.”

한별이 ‘스읍-’하고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지원이 깔깔 웃음이 났다. 아닌 게 아니라 지원 역시 입안 가득 침이 고였기 때문이다.

“엄마, 나 이미 배고픈데?”

“엄마도야. 그럼 얼른 가자, 우리 소울푸드, 부타동 만나러.”

두 사람은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듯, 가게 안은 아직 조용했다. 첫 손님이 된 두 사람을 직원이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따뜻한 녹차 드릴게요.”

푸릇한 녹차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지원과 한별은 나란히 앉아 메뉴를 훑었다.

“여기, 부타동 하나랑…… 텐동도 하나 주세요!”

구워지는 돼지고기에서 퍼지는 불향이 먼저 식욕을 자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큼직한 돼지고기 여섯 장이 가지런히 올라간 부타동이 먼저 나왔다.

“우와, 고기 진짜 큼직하다.”

그 위에 얹힌 완두콩 네 알이 포인트처럼 귀여웠다. 지원은 눈이 동그래진 한별에게 살짝 윙크하며 말했다.

“봐봐, 이게 바로 도카치의 진짜 소울푸드지.”

한별은 수저를 들고선 조심스레 고기 한 점을 베어 물었다.

“……와.”

말이 없었다. 대신,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불향 미쳤어. 진짜 맛있어!”

지원도 한 입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큰한 간장 소스, 적당히 기름진 고기, 밥 사이사이에 스며든 풍미가 완벽했다.

“부타동 먹기 전에 부타가 되는 기분이야.”

한별이 웃으며 말했다. 지원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은 채 대꾸했다.

“돼도 괜찮아. 오늘은 맛있는 거 먹는 날이니까. 먹요일!”

마치 약속처럼, 두 사람은 동시에 입안 가득 밥을 넣고는 또 ‘음-’ 하고 감탄했다. 소울 푸드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부타동 옆자리에 놓인 텐동은 얇은 튀김옷이 바삭하게 부풀어 올랐다. 가지, 쑥갓, 새우, 단호박. 보기만 해도 아삭한 소리가 들릴 것 같은 튀김들이 노릇노릇 쌓여 있었다.

“엄마, 이거 바삭한 소리 들어봐야 해. 나 한 입 먼저 먹어도 되지?”

“당연하지. 대신 바삭한 ASMR 들려줘야 해.”

한별은 젓가락으로 새우 튀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준비됐지? 시작합니다!”

입안에 바삭한 소리가 퍼지자 두 사람 모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튀김 아래엔 단짠 간장 소스가 어우러진 밥이 완벽한 이중창을 이루고 있었다. 후식으로 고른 아이스크림 튀김은 예상 이상이었다. 겉은 뜨거운데 속은 차가운 아이스크림. 젓가락 끝으로 한 조각을 찢자, 바삭한 튀김옷 안에 차가운 바닐라가 단단히 살아 있었다.

“진짜 이런 조합 누가 처음 해봤을까. 미쳤다, 진짜.”

한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지원도 한 입 넣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콤한 후식이 여행 하루의 마무리를 아주 부드럽게 감쌌다.


“내일은 어디 갈까? 시카리베츠 호수에서 열리는 이글루 축제가 있고, 도카치가와 온천 마을에서 열리는 ‘사이린카’라는 등불 축제가 있어.”

“둘 다 가면 안 돼?”

“둘 다 가도 되지. 근데 하루에 모두 가기는 어려워. 두 곳 모두 여기 오비히로 역을 거쳐서 가야 하는데 버스가 자주 없고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럼 이글루 축제 먼저 가자.”

“그럴까?”

지원은 얼른 노트북을 열고 시카리베츠 호수에 있는 료칸을 검색했다. 조석식을 포함해도 그리 비싼 가격을 아니라서 얼른 예약을 했다. 마츠리를 구경하고 다시 오비히로 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여유롭게 구경하고 호수 배경의 온천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였다.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때의 지원은 몰랐다.

어느쪽으로든 결정이 되기만 하면 그저 마음이 편안한 것이 요즘 지원의 마음이었다. 결정이 어렵지 결정을 하고나면 어떻게든 그 결정을 긍정하는 것이 지원의 성격이니까. 남편도 비슷한 성향이라 치열하게 고민한 후 결정한 후에는 그 결과에 대체로 만족했다. 그것은 만족스러운 결정이어서 라기보다는 닥친 상황 가운데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습성 때문이었다. 집을 고를 때도, 전자제품을 살 때도, 과일을 고를 때도. 여긴 채광이 진짜 죽인다. 장 보기도 편해. 이 냉장고 진짜 볼수록 예뻐. 수박 큰 거 사길 진짜 잘했다. 등등등. 그래서 사실 두 사람 모두 치열한 고민이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뜨겁고 격렬하게 고민했고, 결정에 굉장한 신중을 기했다. 심지어 결정을 내리지 못해 서로에게 미루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원은 그저 결정된 상황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여유롭게 조식을 먹고 짐을 쌌다. 그리고, 버스 터미널에 들러 2day 티켓을 샀다. 이틀 동안 버스 무제한 탑승권이었는데, 시카리베츠 호수까지의 왕복 버스 금액과 도카치가와 온천 마을까지의 왕복 금액을 더했을 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무엇보다 이글루 축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 3천 엔 어치를 돌려주었다. 티켓 가격이 3천 엔보다 저렴한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인지. 아마도 마츠리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참여하게 하려는 마을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버스는 도로 양옆에 가로수가 근사한 길을 한참을 달렸다. 도카치 평야, 도카치 우유 이런 말들이 잘 어울리는 동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마 일차선일 것 같은 절대 교행이라고는 불가능할 것 같은 산길을 굽이굽이 돌았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산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건 아주 쉬워 보였다. 그 즈음 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길이 조금 넓어지자 제설차도 한 두 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수 가까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맹렬한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터널 하나를 지나니 눈 덮인 호수와 호텔 그리고 관광 안내소로 보이는 건물 한 채가 덩그러니 나타났다.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이 축제에 가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룸키를 받아 숙소에 들어섰다. 다다미방 특유의 짚풀 냄새가 났다. 창을 열자 눈 앞에 호수와 이글루가 보였다. 내일 아침 햇살받은 이 호수 정경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며 지원은 한별을 데리고 서둘러 나갔다. 받은 쿠폰 가운데 입장료로 5백 엔을 내고 남은 2천 5백 엔으로 스노우 모빌과 아이스 바에서 음료를 마시기로 했다. 한별은 기대감을 안고 스노우 모빌 존으로 앞서 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운행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한별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일도 기회가 있을 거야. 한별을 달래서 노천 족탕, 지오 이글루 등을 구경하고 아이스 바로 들어갔다. 이글루 안을 Bar 형태로 꾸며서 음료를 판매하는데 잔 역시 얼음으로 만든 것이라 음료를 따르면 음료의 색깔대로 잔 색깔도 변했다. 한별이 고른 하스카프 소다는 붉은빛 음료인데, 체리 코크와 맛이 비슷했다. 얼음 집, 얼음 의자, 얼음 잔에도 두 사람은 춥다고 느끼지 않았다.

저녁은 돼지고기 샤브샤브가 메인으로 나오는 정찬이었다. 이미 밖은 어둠이 찾아와 노천 온천은 내일 아침에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자리에 누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지원은 창을 열어 날씨를 살폈다. 해가 떠 있어야 할 하늘이 천지분간 조차 안가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홋카이도의 날씨는 30분 간격으로도 천지 차이가 나니까. 우선 온천을 하고 오기로 했다. 한별은 이제 제법 용기가 생겼는지 이번에도 도전한다고 했다. 정말 너무 마음에 든다, 별아.

날씨 때문인지 시간 때문인지 정말 운이 좋게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원은 가볍게 몸을 씻고 바로 노천탕으로 갔다. 나무 기둥을 나란히 벽으로 세워 온천장으로 만들어놨다. 창을 통해 봤던 것보다 눈발은 더욱 거셌다. 저기가 호수겠지? 눈이 없었으면 눈 덮인 모습이라도 보였을 텐데. 그럼에도 뺨 위에 닿는 눈발의 감촉이 좋았다. 시야가 안 보이면 어떠하랴. 따뜻한 온천수, 시원한 바람, 차가운 눈이 이리도 기분 좋은 걸.

뷔페식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쌌다. 그때까지도 눈은 맹렬히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오늘은 스노우 모빌을 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어제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이 상황이면 빨리 이곳을 나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로비에는 이미 체크아웃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직원은 체크아웃을 도우면서 아침 버스가 운행이 취소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다음 버스는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현재 제설 작업 조차 못하고 있거든요. 안에서 대기를 하고 계시면 상황이 전해 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스노우 모빌이 문제가 아니었다. 호텔을 벗어나는 것 조차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옆에서 한 남성이 지원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들렸다. 생김새나 일본어 발음으로 미루어 한국인이 틀림없었다. 지원은 다짜고짜 한국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모른대요. 다음 버스 상황도.”

그 남성이 놀라며 물었다.

“한국인이세요?”

그 표정에는 놀람 뿐 아니라 안도도 섞여 있었다. 타국에서 동지를 만난 안도감. 지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함께 고립되는 것은 어쩐지 무섭다. 아무리 호텔일지라도. 심지어 그날 호텔은 모두 풀북이었다.

“여기서 대기하면 알려주신다는 대요. 근데 언제 알려주실지는 본인들도 모르겠다고.”

무기한 기다림이 될 예정이었다. 지원은 한별에게로 그는 그의 아내에게로 걸어갔다. 마침 두 사람이 근처에 같이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 분이시래.”

그가 아내에게 지원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그 인사를 시작으로 네 사람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걱정으로 나중엔 근황과 여행 온 이유까지 낱낱이. 그들은 대전에 사는 부부로 청주공항에서 오비히로 공항까지 직항이 꽤 저렴하게 나와 설 연휴를 붙여 휴가를 왔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 출근인데 이렇게 발이 묶여 버렸다고. 두 사람은 돌아가면서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는 전화를 했다.

“아, 이번엔 정말 여행 안 오려고 했는데. 너무 특가가 떠가지고 혹해서 왔거든요. 근데 이렇게 됐네요?”

부인 쪽에서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충 보아도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부부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참 밝았다.

“어차피 회사는 못 가게 되었고, 이렇게 된 이상 즐기기라도 해야죠.”

그러면서 오리 눈 집게를 들고 호텔 밖으로 나갔다. 대단한 정신력과 긍정 마인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와서는 고구마깡을 꺼내 뜯었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과자에 지원과 한별은 눈이 번쩍 뜨였다. 답답할 때 먹는 달콤한 과자는 큰 위로가 되었다.


드디어 호텔 직원이 손님들을 그러모으더니 안내를 시작했다. 방에서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온 지 꼬박 4시간 만의 일이었다.

“오늘 버스는 전편 모두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한숨과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래서 저희가 셔틀로 오비히로 역까지 모셔다 드릴 예정입니다. 다만, 차량 대수가 넉넉지 않아 직원들 차까지 동원하여야 하는 상황이므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박수와 안도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을 역까지 바래다 줄 차량 네 대가 모두 준비되자 수많은 중국인들이 앞다투어 줄을 섰다. 네 사람을 비롯한 소수의 한국인들은 줄에서 밀려나 가장 끝에 서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혹시라도 자리가 모자란 상황에서 자신들이 못 타게 될까 싶어 앞선 차에 꽉꽉 눌러서 탔다. 그러다 보니 네 사람이 타는 차량은 오히려 짐도 편안하게 뒤편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고 쾌적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전화위복의 상황이었다.

차량이 호텔 앞 터널로 들어섰다. 터널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 같았다. 그 끝에 빛이 보였다. 터널 끝 광명이었다. 다른 세상으로 탈출하는 포털 속으로 들어와 빛을 향해 나아간다.

차 안에서 보는 도로의 풍경은 믿기지 않을 만큼 근사했다. 대기의 기다림도 잊을 만큼 멋진 풍경에 너나 할 것 없이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산길을 내려오자 부랴부랴 제설이 시작되는 모습이 보였다.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오비히로 역에 도착했다. 난데없는 고된 운전에 고생했을 운전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묵을 숙소가 내려준 곳에서 멀지는 않은지 염려했다. 이 사람들은 어디까지 선한 걸까. 그들의 배려와 헤아림이 지원은 진심으로 감동스러웠다.


오비히로를 포함한 도동 지역은 본래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지역이다. 그런 곳에 어제 오늘 같은 폭설은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역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도로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그 정도로 오비히로는 아수라장이었다.

그 여파로 호텔 방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지원은 전날 밤에 오비히로 역 근처 호텔을 2박 예약해 두었다. 본래 사이린카를 보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부부도 다행스럽게 역 근처 호텔 예약이 가능했다. 네 사람은 인디언 카레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의 숙소에 짐을 두고 오기로 했다. 엄청난 눈은 차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치워지지 못해, 횡단보도를 건너도 인도로 이어지는 길이 막혀 겨우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른 체크인을 마치고 인디안 카레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멀직이서 바라봐도 인디안 카레 건물 앞은 눈으로 봉쇄당했다. 혹시 다른 입구가 있을까 싶어 다가갔지만 문의 절반은 눈으로 막혀 오늘 오픈하지 않았음이 너무도 분명했다. 최소한의 안내문구 조차 없는 것으로 미루어 오늘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비상 상황임이 확실했다.

“어쩌지? 별아. 카레집이 문도 안 열었네?”

“엄마. 그럼 그분들 다시 못 만나는 거야?”

한별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었다. 지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정말 인연이었는데. 대전에서도, 제주에서도 몇 번은 마주쳤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분들인데……그치?”

그 말을 하며 지원은 인연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부를 떠올렸다. 대전에 산다고 했을 때 지원은 “우리 시가도 대전이에요. 유성구.”라고 했고, 그들 역시 같은 구에 산다고 대답했다.

“유성구 한동 숲체원 근처요.”

“아악! 저희 그쪽으로 캠핑 자주 가는데.”

그뿐 아니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하다 제주에서 근무한다고 했더니, 부인되는 사람이 “어? 저희 친정 부모님이 이달에 제주로 이사하시는데.”라며 놀랐다. 대화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한국에서 만나지지 않은 게 오히려 신기하다며 모두가 놀랐다.

“그런 인연인데, 그냥 헤어져야 하다니…… 좀 아쉬워. 좋은 분들이었는데.”

한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잠시 말이 없었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분들,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우리 인연이니까. 나는 믿을래.

지원은 잠시 웃고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삿포로나 오타루라면 모를까 오비히로에서 만난 건 분명 대단한 인연일 거야. 우리 인연의 힘을 믿어보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운명을 믿는다고 했지만, 마음 한 켠엔 설마가 자리했다.

‘그래도 혹시 다른 입구가 있는 건 아닐까?’

지원은 편의점으로 향하며 몇 차례 카레 집 쪽을 돌아보았지만, 눈에 잠긴 유리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닫혀 있었다. ‘역시 안 열었네… 진짜 끝인가.’ 그때였다.


근처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레집이 닫았더라고요.”

“저희도 그래서 편의점으로 왔어요!”

그 두 사람, 바로 그 부부였다. 순간, 지원은 멈춰 선 채 그들을 바라봤고, 한별은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 진짜 만났어.”

한별이 속삭이듯 말했다. 지원은 하마터면 그녀를 끌어안을 뻔했다. 감탄, 놀람, 그리고 반가움.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쏟아졌다.

“그러게. 우리 진짜 운명인가 봐.”

편의점 안, 기묘하게도 포근한 온기가 돌았다.

“얼른 사세요. 여기 거의 동났어요.”

그들의 말에 지원이 매대를 둘러보니 과연 컵라면, 김밥, 샌드위치가 몇 개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라면과 간식거리, 우유를 바구니에 담았다.

“이거 완전 재난 상황인데요.”

그들 부부가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웃지 않으면 어쩔 거예요. 울 순 없잖아요.”

짧은 인연의 재회는, 다시 웃음으로 더없이 따뜻했다.

“여기요. 카톡 아이디요.”

내일을 기약하며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윤서영. 그녀의 이름이었다. 밖으로 나와, 두 모자는 눈길 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엄마, 엄마! 진짜였어. 운명이라면 만나질 거라는 말, 그거 진짜였어!”

한별은 신이 나서 두 손을 꼭 쥐며 말했다.

“그러게. 편의점을 가게 된 것도, 하고 많은 가게 중에 거기였다는 것도. 정말 인연이야.”

호텔로 돌아가는 길, 둘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편의점을 바라봤다. 인연이란 게 꼭 긴 시간에서만 피어나는 건 아니었다. 짧은 순간에도, 어떤 마음은 오래도록 남는 것이었다.


그날 뉴스에서는 아까 저녁에 촬영한 장면들로 넘쳐났다. 그 덕에 지원도 오비히로가 53년 만에 120㎝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로 동해 라인 근방의 도시들, 이를테면 오타루 같은 곳이 눈이 자주 오는데 그곳마저도 적설량이 98㎝였다. 그런데 도동 지역에서 이런 놀라운 기록이 나오니 도시가 마비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이런 폭설은 이곳 오비히로 시민들에게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헤드라인은 죄다 오비히로 폭설 소식으로 장식됐다.


이튿날. 한별은 그들과 만남이 기대된다며 일찍 눈을 떴다.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화창했다. 어제의 폭설이 꿈만 같았다.


-오늘 계획 있으신가요.

-안 그래도 연락해볼까 했는데. 날씨가 좋네요^^

-저희 일단 카페 가서 토스트로 아침 먹으려구요.


그러면서 카페 위치를 보내왔다. 돈까스 샌드가 맛있었던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여기 갔다가 오후에 버스가 다니면 도가치가와 온천마을 가보고 싶은데. 버스가 다닐지 모르겠네요.


지원은 그 말에 버스 터미널 사진을 찍어 보냈다.

-우선 터미널 제설은 되었어요.

어제는 터미널조차 눈에 잠겨 있었는데 오늘 아침은 정류장 내 도로는 제설을 해 둔 모양이었다.


-사이트 보니까 8시 30분 현재 계속 ‘운휴’로 뜨네요. 오후 되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코메다는 언제 가셔요?

-체크아웃하고 바로 가려구요. 11시까지 아침 토스트를 팔더라고요.

-저희도 아침 먹으러 가야겠네요. 열었어야 할 텐데.

-어제 저녁에 가봤는데 어제도 열었더라고요. 카페에서 뵈어요.

-아! 넘나 다행~~ 이따 봬욤.


카페 안에 들어서니 그들은 이미 도착해서 앉아 있었다. 일행이라고 하자 직원이 그리로 안내해 주었다. 토스트 세트 3개와 돈까스 샌드를 주문해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터미널에 가서 버스 운행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한별과 그들 부부는 정말 열심히 눈 오리를 만들었다. 그쪽도 눈 오리 공장장 같아 보였다. 젊은 부부인 그들은 다행히 아이를 좋아했다. 여러 이유로 요즘은 딩크족도 많고, 아이 혐오를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 지원은 아이와의 동행이 조심스러운 터였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오히려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어쩌면 그들이 아이의 ‘마음 높이’였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아이와 잘 맞았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스페인에서요.”

“우와- 여행에서?”

“어학연수요. 원래 학교에서도 아는 사이기는 했는데 그땐 그냥 이름 정도만 알았고요. 이 친구가 제가 있던 스페인으로 놀러 와서 만났다가 서로 정말 잘 맞는단 걸 알게 되었어요.”

“진짜 인연이네요. 오히려 한국에서 쉽게 만날 수도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라 더 특별하게 보이셨을 수도 있겠어요.”

“둘 다 여행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해서 맞는 부분이 많았어요.”

“만날 인연이었네요. 장소만 외국이었을 뿐.”

“이 친구가 스페인을 정말 좋아해서 가능했을지도요.”

두 사람의 얼굴에 홍조가 띠는 것을 보고 지원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터미널 직원은 스쿨버스 라인을 제외하고는 오늘 모든 버스가 하루 종일 운휴라고 했다. 그들은 2day 티켓의 일부를 환불받고 동네 구경을 다니기로 했다.

거리는 그야말로 눈 폭탄을 맞은 듯 도시 전체가 눈으로 뒤덮였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두꺼운 눈이었다. 중고 자동차 매장의 자동차들도 눈에 덮여 마치 자동차 무덤처럼 보였다. 네 사람을 그걸 보고 또다시 한참을 깔깔거렸다.

어제 못 먹은 카레를 먹고 그들과 작별했다. 대전에서라도 제주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청주는 일주일에 이틀 비행기가 뜨는데 그게 내일이라면서 내일은 부디 결항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에 지원과 율도 간절히 그러기를 바랐다.


다음 날도 맑았다. 하늘과 날씨만 보면 이곳이 폭설 재난 현장인지 정말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청명했다. 부부는 오늘 비행기를 탈 수 있으려나. 괜한 걱정이 되어 지원은 공항버스 운행 정보를 살폈다. 다행히 버스가 운행 중이었다. 그때 그녀로부터 카톡이 왔다.


-저희는 오늘 비행기 뜬대요! ㅎㅎㅎ

-축하드려요. 안 그래도 7시에 눈뜨자마자 공항 셔틀 운행하나 봤더니 다행히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실 수 있구나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저흰 우선 여기를 탈출해야지 싶어 11시 기차를 타려고 해요. 오늘도 시내버스 운행은 안 한다기에 사이린카는 내 인연이 아닌 갑다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 JR도 다행히 운행하나 보네요. 다 탈출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밤에 찍은 눈 오리 사진을 보내왔다.

-저희 어제 만든 오리들 밤에도 잘 있더라구요. ㅋㅋㅋㅋ

-또 산책을 하셨군요. 이쁜 사진 감사해요!

폭설로 카레 집이 닫았던 그날 저녁도 그들을 밤 산책을 다녀왔다고 했었다. 과연 여행과 운동이 제격인 부부다웠다.


-끝까지 안전한 여행되시기를 바랄게요. 그나저나 애기 이름도 안 물어보고 놀았네요. 저는 윤서영, 남편은 구동현입니다.

-아 ㅋㅋㅋ 그렇네요. 저는 이지원, 아이는 선한별입니다. 한국 도착하심 연락 주셔도 저희도 마지막까지 잘 보내다 돌아가면 연락드릴게요. 조심히 귀국하시고 정말 한국서 뵈어요.

-저희도 어제 덕분에 너무 잘 놀았어요! 대전이나 제주 어디든 한국에서 다시 뵈어요.

-네네^^ 꼭이요. 우울할 뻔 했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썼네요.

-ㅋㅋ그러니까요. 눈은 한동안 안 봐도 되겠어요.


그리고 지원은 짐을 챙겨서 기차역으로 갔다. 그들이 탈 기차는 그야말로 대단한 눈을 뚫고 온 게 실감이 날 정도로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눈을 붙이고 있었다. 쨍쨍한 오비히로를 벗어나 미나미 치토세 부근에 도착했다. 그곳은 또 다른 눈 세상이었다. 2시간가량 달리면서 변화무쌍한 날씨를 봤다.


-저흰 탈출 성공입니다.

-저희도 이제 공항버스 탔어요.

-여기는 눈이 많이 오지만 일단 안전하네요. ㅋㅋ

-여긴 여전히 쨍쨍입니다.

-다들 버스 운휴를 안 믿을 듯 해요.

-그러니까요. 이틀이나 공항이 폐쇄되었다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줄 것 같아요.

-자꾸 오비히로 날씨 좋다고 카페 글이 올라와서 뚜벅이는 넘나 답답합니다.

-ㅋㅋㅋㅋ 진짜 저희만 아는 시간이네요. 저희 기억 속에만 있는 오비히로 재난 현장.

-절대 못 잊을 거 같아요. 그래도 그 덕에 만난 귀한 인연들이 있어 회복^^ 조심히 가셔요.


그녀 말대로 정말 우리들만 아는 시간이었다. 우리들의 시간 속에서 우리들의 추억을 나누었다. 비행기가 두 시간이나 지연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잘 도착했냐는 지원의 메시지에 답이 없었다. 그리고 날짜를 넘긴 새벽 12시 반.

-저희 이제 내렸어요. 청주에도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바로 랜딩 못하고 제설 작업하는 2시간 동안 상공에서 돌았어요. 그래도 눈 계속 오면 인천공항까지 가서 랜딩할 뻔 했는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암튼 이제 저희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긴 여행이 마냥 즐겁고 편한 건 아닐 테지만 한별이가 살아가면서 평생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되겠네요! 두 분 여행 하시는 거 보면서 저희도 뭔가 느끼는 게 많았어요. 끝까지 무탈하게 재밌게 즐기다가 오세요!


다음 날 아침에 메시지를 확인하고 지원을 깜짝 놀랐다. 새벽 도착이라니! 정말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간 듯 했다.


-안녕하세요. 편안한 아침을 맞으셨을까요? ^^ 상공에서 2시간이라니 너무 힘드셨겠어요 ㅠㅠ 비행기만 5시간 타신 셈이니 ㅠㅠ 청주 랜딩은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힘들어도 어쨌든 좋은 결과로 귀결된다는 여행의 교훈이려나요? ㅎㅎ 저흰 노보리베츠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역시 기차가 미어터져요 ㅎㅎㅎ 다음 여행으로 이집트를 공부해 봐야겠네요. 여행으로 키워진 깡과 체력으로 올해도 잘 이겨내시길요. 물론! 긍정적인 두 분은 잘 즐기실 거 같습니다^^

-다음 여행으로 이집트라니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쉬운 여행지는 아니긴 하지만 매력적인 곳이라서 한별이가 매우 재밌어 할 것 같아요. 혹시라도 준비하시다가 궁금한 게 생기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저는 오랜만에 출근해서 머리 부팅하고 있는 중이에요! ㅎㅎㅎ

-아. 오늘까지 걍 쉬시는줄요. 넘나 피곤하실텐데…… 연휴 증후군으로 앞서 적응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스위치 온! 하시길. 눈보다 사람이 더 많을거 같습니다 하하!(연휴 끝났을텐데 중국인들 여전히 많네요)

여행 공부는 시작도 전에 즐겁네요! 열심히 돈 모으며 공부하다 여쭐게요! 곧 맛점 하시겠어요. 남은 오후도 화이토!

-저는 회사에서 오비히로 이야기 해주러 다니고 있습니다 ㅋㅋㅋ 눈 초밥 사진 보여주고 ㅋㅋㅋ 남은 여행도 화이팅 하세요! 저도 화이팅 하겠습니다!


눈 초밥이라는 말은,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만 아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 눈 속에서, 따뜻한 인연 하나를 건져 올렸다. 우연 같던 실타래가 결국 우리를 다시 만나게 했다. 눈 속을 걷던 시간, 마음 졸이고 웃던 감정들. 함께여서, 그 모든 순간이 다행이었다. 어쩌면 그 여정은, 처음부터 우리를 위한 작전이었을지도. 그렇다고 다시 오비히로에 갈 거냐고? 당분간은…… ‘Nope!’


작전명 '탈출'.

MISSION COMPLETE.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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