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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May 17. 2018

"제 인생인데 아까울 게 뭐가 있겠어요"

인생을 평가하려는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

최근에 그런 말을 들었다. “그동안 해온 게 있잖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너무 아깝지 않아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라고. 내가 해왔던 분야가 다르다고, 그간의 성과물이 마치 물거품처럼 사라진다고 말하던 그를 바라보며, 나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과는 저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도전이라면 도전이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이 과정에서 떠오른 게 있다. 인생의 과정이 ‘아깝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남이 아닌 나여야만 하고 그것을 책임지는 것도 오로지 나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어서다.   


지난 6개월간 많은 일이 있었다. 보금자리를 옮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수년에 걸쳐 할 수 있는 것을, 불과 반년 만에 한 것이다. 내 부족함을 절감하면서도,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적잖은 나이에도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글을 써오면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성과를 내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나를 평가할 때 보는 건 다르단 생각을 한다. 사실, 상을 받을 기회가 한두 번은 있었던 것 같다. 전국적으로 큰 이슈로 부각됐던 문제를 단독으로 취재했고, 모든 언론사가 내 보도를 접하고 나를 따라왔다. 평소 연락이 없던 선배들이 내게 연락을 해 오는가 하면 방송사에서는 취재를 요청해 왔다.  


단독 보도 이후 정부가 현장 조사에 들어가는가 하면 관련 협회의 검찰 고발까지 이뤄졌다. 심지어 원장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하기까지 했다. 끈질기게 보도한 문제들이 정부 조사 결과 모두 사실로 드러난 순간,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취재와 보도를 하던 두어 달간은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보도준칙을 어긴 적이 없는 데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전화나 서면이 올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만큼 겁이 많았고, 나약했다. 그런데 당시 주변에서는 다들 내 기사를 놓고 “이달의 기자상에 내지 않았냐고”들 물었다. 단독취재한 사안인 데다 다른 매체의 반향, 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취재 잘 하고 기사만 잘 쓰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뒤늦게 후회했다.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날려버려서다. 오죽하면 나중에 다른 부서의 데스크가 “왜 그때 좋은 기사 쓰고도, 그걸 가만히 뒀냐”라고 말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그때 혼자서라도 써서 내볼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공적설명서를 써서 제출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당시엔 데스크가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낼 수 있는 기사인지 판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한국기자협회에 공적설명서를 제출하는 방법도 잘 몰랐다. 지나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선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냈으면 적어도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몰랐던 만큼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해서 후회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물론,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시, 첫 물음에 대한 답에 대한 내 생각을 더하면, 사는 동안에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를 할 거라면 일단 저지르고 보자, 라는 것이다. 그간 걸어왔던 길과 조금 다르다고, 내 마음가짐과 신념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첫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다. “전혀요. 제가 사는 인생인데 아까울 게 뭐가 있겠어요.”  


사진=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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