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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Apr 27. 2016

파리의 어느 곳,  일곱 명의 나를 만났다

파리 마레지구, 한인민박에서 그녀들을 통해 나를 만났다.


“나는 자기가 나랑 다니는 게 불편한 줄 알았어”

“아니야, 난 좋았어.”

“항상 어디 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다 괜찮다고 하니까 가고 싶은 곳이 없나? 피곤한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난 정말 다 괜찮았거든.  원래 여행을 즐기지는 않지만, 자기가 가자고 하는 데는 잘 따라가고 싶었어”

“이렇게 말하니까 속이 시원하다. 자기가 나랑 여행이 너무 불편한 줄 알았거든.”

“알잖아, 나 체력이 정말 약한 거. 그런데도 자기가 가자고 해서 많이 노력한 거야.”

“그렇지, 맞아.”

“이렇게 말해야 해. 앞으로도 우리 바로바로 말하자.”


이불속에서 들었던 대화.

‘일어나야 하는데, 내가 있는 줄 모를 텐데 어쩌지.’ 하며 숨죽이고 들었던 50대 여인 두 명의 이야기.


항상 가고 싶은 곳이 많았고 일정을 계획하며, 앞장서서 ‘가자!’ 리드했던 여인과 조용히 뒤를 따랐던 소극적인 여인, 그들은 함께 여행을 한지 단 하루 만에 오해가 쌓였다. 그리고 풀었다.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도 특별한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 테지만, 미묘한 까끌거림이 싫었던 것일 게다. 그리고 작지만 걸리적거리는 것을 단번에 빼내버렸다. 시원하게.


처음엔 그녀들의 다툼이 어린아이들의 그것과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내 허탈했다.

내가 몇십 년을 더 살아간들 그때도 우리는 아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는구나.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은 여전한 거구나.

너를 오래 알아간들, ‘나’로서만 살아가는 것이기에 역시 나에 갇혀서 너를 바라보는 것이구나.

그러나 아주 깨질 것 같지 않던 벽도 설탕 유리처럼 가볍게 부서져 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말 한 마디로. 두 여인의 벽은 너무나 쉽게 깨졌고, 달콤한 여운마저 감돌았다.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는 길, 브이를 해주는 그를 담아보았다. 사실 내가 찍고 싶은건, 그 앞의 연인의 진지한 대화였지만.
슬쩍 담아본 모습. 넉넉한 의자를 두고 가까이 붙어있는 그들이 사랑스러워서.


지난 시간 동안, 우리에게는 몇 개의 유리벽이 있었을까?

아주 잘 안다고, 네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노력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을 벽. 그러나 톡, 건드리면 촤르르 부서져 내릴 그것.

나는 가끔 네게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 하며 너의 적극성에 대해 욕심을 부렸지만 사실은 너를 알기 위한 이해에 대한 욕심을 부렸어야 하는 것이라고.

오랜 시간이 지난대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는 마법은 결코 생기지 않지만, 내 마음을 털어놓는 방법은 배워갈 수 있다고.

 

파리의 어느 곳,

침대 여덟 개가 차곡차곡 놓여있는 방에서

조금 어린, 나이 든, 비슷한 그녀들을 통해

나를 알아갔다.





토요일 오후, 낯선 파리의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캐리어 위에 걸터앉았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시크해 보이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지나쳤고, 그곳에서 한 사람을 기다렸다. 20분쯤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내 눈에만 띄는 자그마한 여인이 길쭉한 파리지앵들 사이로 걸어왔다. 오늘 묶을 한인민박의 숙소 주인아주머니이다. 파리에서 머무는 6일간, 이틀은 한인민박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온통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 나와 같은 그녀들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걸터앉았던 캐리어 위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니 먼 친척 이모 같기도 하다. 오늘의 날씨, 길거리의 상점들, 이 곳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금세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나서 아주머니가 오늘 사 온 것이라는 오렌지를 하나 집어 먹었다. 주방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꺼내 주시는 동안, 창문 밖을 바라보니 파리의 중심이라는 마레가 펼쳐졌다. 아마도 맛있음에 틀림없는 식당들에는 이른 저녁부터 사람들이 테라스까지 자리를 채워 앉아 있었고, 맞은편 스타벅스에도 사람들은 가득하다.  


평범한 토요일 오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바빴고 그 일상 속에 내가 자연스레 존재한다는 것에 조용한 흥분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리. 에스프레소나 크루아상이라면 달랐을까. 어제도 오늘도 먹어온 오렌지를 맨손으로 까서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고 어제도 내가 입고 있던 고무줄 치마를 입고 있으니, 더욱 현실 같지 않았다.

너무 당연해서 더 비현실적이었던 순간.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고개를 내밀고 바라본 모습.
토요일 오후, 숙소 앞 거리.


누가 올까.

비어있는 일곱 침대를 둘러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여행 이내 게 줄 광경과 내게 다가올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혼자 여행이 그랬듯 게스트하우스 역시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몰랐고, 앞으로도 결코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곳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난다는 것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마치 언젠가는 만날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조금의 기다림 끝에 일곱 명의 여자들이 모였다. 20대 대학생부터 50대 주부까지.


우리는 여자였고,

어떤 곳을 가고 싶어했으며

그것들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기도

전부이기도 했다.


S양은 Y대 교육학과에 다니고 있었고 과목을 전공하지 않아, 하게 된다면 어느 것을 정해야 할지 그리고 자기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찾기 위해 여행을 왔다고 했다.

M양은 한 달간의 유럽 여행 중 파리를 두 번째로 들렸다고 한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걷다 보면 만나는 것들을 즐겼으며, 시간이라는 특권을 누렸고 넉넉지 않은 주머니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다른 여대생 Y와 J양두 명은 친구 사이였으며, 어렸고 때때로 쉽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내겐 썩 괜찮은 숙소 주인아주머니가 그녀들에겐 ‘귀찮은 아줌마’로 인식되는 과정을 보며 신기하기도 했고, 설핏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여인 두 명은 50대였다. 남편들의 출장에 동행해서 유럽에 왔으며, 남편들은 어젯밤 한국으로 먼저 떠났고 그녀들만 남아 3박 4일간의 파리 여행을 할 것이라고 했다. 가끔 회사 행사 때 보던 사이에서 이렇게 둘이 파리에 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는 그녀들. 한 명은 밝고 의욕이 넘쳤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여린 외형과 내성적인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서툰 여행을 시작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렇게 7명의 여자들은 같은 방에서 같이 잠을 자고 아침을 먹었다.


내가 이틀을 묶었던, 파리의 가장 중심 샤뜰레역 근처 한인민박. 이 곳에서 여자 일곱명이 만났다.


아침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알람을 맞추지 않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작은 벨소리로 베개 밑에 핸드폰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소리로 벨소리를 울리게 해 모두가 동시에 눈을 뜨게 한 사람도 있었으며, 다섯 시 반부터 십분 간격으로 울리게 해 마침내 모두의 몸을 일으켰던 사람도 있었다.

아침으로는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M양과 우유와 계란 프라이를 먹는 나, 부지런히 토스트를 만드는 Y양, 일곱 명 모두는 스타일이 달랐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장소는 그들에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이기도 했고, 서로가 추천하는 장소를 새로 일정에 추가하거나 더 빨리 가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크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대부분 각자의 계획에 다라 가고픈 곳을 갔지만 이따금 목적지가 같으면 만나서 함께 걷기도 했다. 또는 오전이나 오후의 일정에 따라갈 곳이 같아도 전혀 만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들른, 어느 한 때에 마침 만나기도 했다. S양과 내가, 따뜻하고 안락한 숙소가 너무 필요했던 그 날 오후처럼. 우리는 예정에 없이 들린 숙소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 보고 싶은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은 장소가 되기도

또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잊고있던 어떤 그리움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가 온 뒤, 싸늘하고 차가웠던 그 날. 아늑한 숙소가 그리워졌던 순간.


“아, 파리에서 가보고 싶은 곳 너무 많은데 한국 가기 싫다. 유나 씨는 내일 어느 곳을 갈 거예요?”

“저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와 레 뒤마고 카페를 가려고 해요.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던 곳이라고 해서요!”

“어머, 나도 헤밍웨이 정말 좋아했어요! 고등학생 때 노인과 바다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나 대신 꼭 가줘요. 그래서 사진을 보내줄래요? 아, 정말 가고 싶다. 꼭 보내줘요 유나 씨가 본 것들”

처음 만난 너에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왜 이 곳에 왔는지, 어느 곳에 가고 싶은지 새삼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우리는 놀랐다. 그녀가 퇴직 전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했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면에서 우리는 같아서,

이 먼 곳 그리고 이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우리는 각자가 지나쳤던, 혹은 앞으로 걸어갈 길에서 ‘내가 걸어가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세상 가장 낯선 곳, 그 어느 방에서. 그것은 때로는 놀라운 힘을 준다. 그녀의 추억 한편에 있는, 열일곱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 작가의 집에 갈 수밖에 없었던 그 날처럼.


보쥬광장 안에 있는 빅토르위고의 집.
노트르담의 파리와 웃는 남자, 그리고 레미제라블을 남긴 빅토르위고.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기도 했으며, 그는 루이나폴레옹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의 80번째 생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이 될만큼 영향력이 있었다고.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작가, 그가 죽자 국가적인 장례가 치루어졌고 판테온에 묻혀있다.
레뒤마고 카페, 헤밍웨이를 비롯해 피카소와 보부아르 등 당대 문인들이 즐겨찾아 이야기를 펼치던 곳.
꼭 가보고 싶었던 레뒤마고, 라떼를 주문하면 따끈한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나뉘어서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신청한 현지 투어에 늦을까 봐 꼬박 지하철역 1 정거장 거리를 질주했던,

"우리 왜 뛴 거야? 택시 탈 걸!" 하며 안 그래도 아픈 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렸던,

파리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Chatelet 역을 헤맨 그녀를 위해 밤마실을 나가 길을 다시 알려주었던,

저녁이면 오늘 무엇을 보았는지 사진기를 꺼내놓고 서로 다정하게 알려주던,

일교차가 심한 파리에서 오들오들 떨던 날, 뜨끈한 순두부 덮밥에 "우와아" 하며 탄성을 지르던,

밤이면 함께 걸으며 파리의 야경을 누렸던, 그리고 뜻밖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던

다음 여행지에서 서로가 보고 싶어했던 것을 보여주고,

서로의 길을 대신 걸어주던 그 날처럼.  

         

파리에 가게 된다면 나는 한인민박에서 하룻밤을 잘 것이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불편함을 겪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단체생활에 볼멘소리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우리의 취향에 맞게 에그 스크램블을 만들어주고 “아이고, 더 먹어야지.” 하며 고기 세 점을 한꺼번에 밥그릇에 올려주는 그녀 덕에 우리는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고 집을 나설 것이다. 또, 10분마다 울려대신 알람 소리에 그 방에서는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다 일어나 이른 아침을 준비를 하게 될 테며,  결코 듣지 못하는 기계음 대신 우리의 목소리로 그녀를 깨워주기도 할 것이다. 투덜대기 보다는 웃어넘기게 될 아침에, 제 각각의 식사를 하고 그 날의 여행을 준비할 것이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나는 이 길을 걸어가는지 기억하며.


너를 통해

나에 대해

알아 갔던 순간.


우리는 앞으로 만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마주친다고 해도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날, 우리가 한 장소에서 만났듯이 언젠가 약속하지 않은 채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쳐지나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서로가 걷는 길을 응원하면서.


첫 날 도착하자 마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준비해주신 오렌지.
파리엥서 상추쌈이라니, 그리고 매콤한 두부덮밥이라니. 먹으면 힘이 절로 났던 음식들.
식당 바로 옆, 문이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다. 처음엔 이 것 조차 신기했다!
언젠가는 또 만날까, 나와 닮은 그녀들. 지금쯤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나와 비슷한 그리움을 느끼진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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