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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Sep 27. 2016

뉴욕의 별이 떠올라, 브루클린브릿지

눈에 들어오는 맨해튼이라는 도시를, 믿어야 했다.


뉴욕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브루클린 브릿지가 멋있다고 했지만 나는 시큰둥하게 반응하고는 했다. 사진을 찾아보아도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 직접 보면 로맨틱할 거야. 세상 어느 브릿지가 예쁘지 않겠어. 반포대교나 광안대교도 얼마나 멋있는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해 질 녘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넘어올 때 브릿지를 꼭 걸어보세요. 정말 아름다워요!'라는 많은 사람들의 말에 못 이기는 척 걸어보기로 했다. 반은 심드렁하게 또 반은 '그래?' 하는 솔깃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이 다리가 브루클린브릿지, 위에 일자형 다리가 맨해튼브릿지이다. 낮에 본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다리들.


저녁 7시, 브루클린 지하철역에 내려서 브루클린 브릿지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게다가 앞과 뒤로 함께 우르르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니, 별다른 지도나 표지판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이 쪽으로 가는 길이 맞냐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한 번 물어보긴 했지만.


브루클린은 맨해튼과 분위기가 정말 달랐다. 맨해튼이 마치 미디움템포의 락이라면 브루클린은 언더그라운드 힙합같은 느낌이랄까.


브루클린 브릿지는 뉴욕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고, 공사 기간만 15년이 걸렸던 1km가 넘는 길이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브루클린 브릿지는 걸어서 건널 수 있으며 1층은 차도, 2층은 인도로 되어 있다. 다리 중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높이 84m의 브루클린 타워가 있다. 인도는 왼쪽이 자전거 도로, 오른쪽이 보행자 도로로 나뉘며 다리의 끝에서 끝까지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아름다운 다리의 모습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킹콩>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브루클린 브릿지로 올라가는 입구. 도착하니 아이스크림 트럭이 있고, 당연히 그냥 지나칠 리 없는 나는 더운 날씨에도 무려 콘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아이스크림은 자고로 콘이라고! 생각하며 샀건만, 숱한 사람들이 컵에 들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와중에 혼자만 콘을 선택했건만, 주인아저씨가 Very good choice라고 칭찬까지 해주었건만! 그래서 어깨가 으쓱해졌건만. 손에 쥐자마자 녹아내리는 통에, 내가 산 게 아이스크림인지 흘러내리는 퐁듀인지 헷갈릴 정도로 손은 아이스크림 범벅이 되었다.


네, 겨울이 아닌 이상 컵에 들은 것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걸을 수 있도록이요.


다리 위에 오르자 내려다보이는 브루클린, 아니 맨해튼이던가. 아 뉴욕이라고 하자. 뉴욕이 발아래 가득 펼쳐져있다.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고 스치는 풍경에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지금 까지는 내가 어느 것을 간다, 머문다, 떠난다 였다면 지금은 '스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묘하게 바뀌고 있는 풍경은 걷는 속도만큼 느렸지만 그래서 스치듯, 머무르듯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걸으니 다 같이 현장학습을 나온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가벼운 마라톤 대회의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떠들썩하고 유쾌한 분위기랄까. 이곳저곳에서 찰칵거리며 사진을 찍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로맨틱하다기보다는 친근하기만 하다. '상쾌하고 좋네. 동네 산책하는 것 같아.' 그들 틈에 섞여 기분 좋게 걸어갔다. 그러니까 해가 지기 전까지는.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시인, 폴 발레리


큰일 났다



맙소사. Oh my god.

다리 위 해가 지고 도시의 별이 떠오르는 순간, 큰일 났다, 이거구나 싶었다. 발아래에 있는 불빛을 지나며 흥분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맨해튼이라는 도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의 해가 지고 도시의 별이 떠오르던 순간. 커다란 도시는 내게 다가왔고 그곳이 맨해튼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했다


나는 지금 맨해튼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 것인지,

그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그와 내가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곁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왜인지 점점 아득해진다. 다리 밑을 지나치는 자동차, 인도 옆을 스쳐가는 자전거,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리는 이 곳 브루클린 브릿지와는 전혀 다른 공간인 것만 같다. 여기는 오직 브릿지위를 걷는, 어디론가를 향하는, 다른 세계로 가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해가 지고 별이 떠오르는 그 짧은 순간에만 나타나는.


이런 순간을 만날줄은. Brooklyn Bridge.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걷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결코 두 지역 모두 익숙하지 않지만, 맨해튼에 내가 머물 곳이 있고 저곳이 나를 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다. 이 멀고도 낯선 곳에서 나를 지켜줄 곳.


맨해튼, Manhattan.


브릿지일 뿐인데


파리도, 같았다.

한강이랑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센강을 가장 좋아하게 될 줄이야.

그 날 날씨, 바람, 배경, 그리고 사람. 모든 것은 같이 다가오니까.

앞에는 퐁네프의 다리가, 왼쪽에는 오르세 미술관이 있는 그리고 옆에는 오래된 벽에 기대어 센 강을 바라보는 네가 있어서. 센 강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무엇이 그리 낭만적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뉴욕이야?

나는 대답했다. 갈 이유가 없는 곳이라서.


유럽처럼 함께 여행을 가자는 친구도,

흔한 미국에 살고 있는 친척이나,

운 좋게 인턴십이나 출장같은 기회가 닿지 않아서,

작은 인연이 닿지 않아 서툰 인연 만들기 위해,

어느 날 낯선 맨해튼에 도착을 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혼자 걸어가고 있고,

내겐 가장 멀리 있었던 맨해튼이 날 기다리며,

가슴이 미어지도록 네가 떠올라 그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이,

벅차도록 아름다워서.



지나가는 자전거를 피하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이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도록 도와주는 당신이,


같이 자리에 털썩 앉아

시선을 맞추고 웃음을 나누는 네가,


자기보다 사진을 잘 찍는다며 친구를 데려와서

놀랍고 멋쩍어하는 나를 보고 웃는 그대가,


고마워서.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나를 사진에 담아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사진, 괜찮아? 확인해봐! 다시 찍어줄까?"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나란히 있는 곳,

넓은 브릿지가 좁도록 복잡한 곳,

배경을 잘 담아내야 하는 곳, Brooklyn Bridge.

그래서 그들은 말했다. "사진 확인해봐. 괜찮아?"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더 잘 찍어준 사진보다는, 네가 찍어줬던 모습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

그때 우리 옆을 스쳐 지나친 자전거 덕분에 흔들린,

아무리 기다려도 셔터를 누르지 않는 신중한 너를 기다리는 초조한 내 표정이나,

앵글 속 나를 보고 싱긋 웃는 네 미소에 나도 따라 웃었던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은 분명히 , 나온 사진임에 틀림없으니까.

물론 가끔, 이런 사진도 있었지만.


브루클린브릿지에 얽힌 전설이 있다고,  다리가 아프지만 걸어야했던 귀신이 있었다고...



완전한 밤이 도시에 내려앉았고 맨해튼에 도착했다.




브릿지의 끝무렵 데한 그림을 팔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매력적인 그림이다. 평상시 같으면 지나쳤을 것이다. '으음, 마음에 들긴 하지만 이런 그림들은 다른 곳에도 있지 않을까? 나중에 또 보게 되면 사야지.'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여행을 하며 배운 것 하나, 다음은 없다.

우연을 기다리는 것보다 인연을 만드는 편이, 낫다.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찬찬히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마음속에 들어온 그림 두 장, 선물하기 좋은 그림 두 장을 골랐다. 브루클린 브릿지는 사진보다 그림으로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느려지는 걸음, 도시가 떠오르는, 땅에 별이 떠오르고, 맨해튼과 만났던. 그 모든 순간은 어쩐지 그림같이 지워질 듯 아련하지만 평생 자국이 남듯 기억에 선명하게 남을 테니까.

그렇게 4장을 골랐다. 어쩐지 군데군데만 강렬한 색으로 떠오르던 그날의 기억과 닮은 그림을. 그는 "난 같은 그림은 그리지 않아.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야."라고 말했다. 진짜든 그렇지 않든 괜찮다. 이 그림이 걸릴 장소는, 세상에 한 곳일 테니까.


집까지 무사히 도착한 브루클린브릿지를 담은 그림들.




늦은 저녁, 채 가라앉지 않은 흥분상태로 지하철에 올랐다. 숙소로 가는 길, 어느새 익숙해진 집으로 가는 길.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Hello everyone! I am a - "

한껏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더니 힙합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 한 남자. 음악이 고조되고, '저게 가능해?!' 할 만큼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그.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보며 감탄을 했다. 봉을 잡고 공중에서 서너 바퀴를 돌아 내려오고, 백 덤블링을 하며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모습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화려한 공연을 마친 후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즐겁게 살아요. 웃어도 된다고요. 걱정되는 게 있어요? 힘든 일이 있어요? 기다리면 늦어요. 웃어요, 웃어도 된다니까요. 지금이에요, 지금이 당신이 웃을 타이밍이에요!" "Keep on smile!"이라고 외치는 그는 결국 같은 칸에 있는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난생처음 보는 어색한 광경에 손에 든 그림을 꼭 쥐고 긴장하며 바라보던 여자까지도.  

꽤 많은 사람들이 지폐를 꺼내 들었고, 나 역시 멋진 공연에 화답했다. 그는 흥겹게 그루브를 타며 고맙다고 말했고, 그 말도 잊지 않았다. Keep on Smile!! 그러니 웃지 않을 수가 없잖아. 긴장은 그만, 그래 웃어버리자.


"같이 사진 찍어도 돼?" 하는 내 물음에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다가오는 그.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설정한 후 "Three-Two-one!" 하고 셔터를 눌렀는데, 이런! 타이머가 맞춰져 있다. 5...4...3... 느리게 흘러가는 숫자를 보며 우리 둘 다 빵- 터지고야 말았다. 삶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도


Keep on Smile-
기다리면 늦어,
Now is the best moment!



반신반의하며 브루클린 브릿지에 올랐고

낯선 곳에서 맨해튼이라는 도시에 감싸 안겼던

그 날의 기억과 많이 닮은 그림을 품었고

지금, 웃으라는 너를 만난-

잊지 못할, 잊지 싫은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넜던 날.



브루클린브릿지 Tip )

브릿지를 건널 땐 맘 편히 컵 아이스크림을 드시기를!

넉넉히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일몰 시간에 맞춰서 가시면 좋습니다.

다리가 끝날 때쯤, 그림을 파는 청년과 딜을 하면 한 장 더 주기도 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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