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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새 Aug 03. 2024

풍경의 변화

일요일 아침에는 여름이가 가장 먼저 일어난다. 평소에는 아침 8시에 깨워도 겨우 일어나면서, 주말에는 귀신같이 7시쯤 일어난다. 아직은 혼자 어두운 화장실의 불을 켜는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여름이가 일어나면 나나 배우자 중 한 명이 따라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여름이를 쉬를 시키고, "엄마 아빠는 조금만 더 잘게, 여름이 혼자 놀고 있어." 하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여름이는 착하게도 "응-" 하며 혼자 책도 읽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혼자 깨어 있으면 배고파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반, 혹시라도 혼자 놀다 다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반으로 나도 곧 일어나게 된다.


아침밥은 주로 전날 사 둔 식빵과 버터와 잼, 계란프라이, 두부구이, 간단한 제철과일이나 토마토, 블루베리와 요거트, 딸기라떼  등을 차린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꽤나 먹음직스러운 아침식사 같은데, 이 모든 것이 한 상에 차려지는 날은 거의 없고 냉장고에 늘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최소한의 조리로 내놓는 것이다. 게다가 블루베리와 딸기는 냉동이고.


이건 그렇게 일요일 아침을 위해 전날 사는 식빵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엄밀히 말하면 직접 식빵을 만드시는지는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식빵을 파는 빵집 사장님에 관련된 이야기다.


우리 동네에 아주 작은 빵집이 있다. 조리공간은 모르겠지만 매대와 계산대, 손님이 서는 공간까지 하면 4제곱미터 정도 되려나. 수제 식빵 전문점인데, 치아바타와 같은 다른 빵도 몇 가지 판다. 간판이 특별히 눈길을 끌지 않아서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년이 되도록 들어가 보지 않았는데, 몇 달 전에 우리 아이랑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아이가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해서 아이를 안고 뛰어 가느라 잠시 아이 자전거를 맡겨 두느라 처음 방문했었다.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좁은 줄 몰랐는데 문을 열고 보니 공간이 너무 좁아서 자전거를 맡아달라고 말씀드리기가 주저스러웠는데, 사실 마음으로는 주저하였지만 내 목소리와 표정은 굉장히 다급하였기 때문인지 빵집 사장님은 흔쾌히 자전거를 두고 가라고 하셨다. 이때가 그 빵집에 대한 좋은 감정을 느꼈던 첫날이었고, 그 후로 매번 방문할 때마다 기분 좋은 점이 하나씩 있었다.

자전거를 찾으러 가서 빵을 사려고 둘러보았을 때, 빵을 많이 먹지 않는 우리 가족이 주말 동안 먹기에 딱 좋은 작은 사이즈의 식빵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요즘처럼 물가가 비싼 시기에 저렴한 가격도 기분이 좋았고. 다음날 빵을 먹었을 때는 빵이 부드럽고 촉촉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에 방문했을 때에는 "전 날 만든 빵" 코너에 할인된 가격의 빵을 파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빵을 싸게 사서, 그리고 정말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지키시는구나 싶어서. 어느 날은 온 가족이 산책을 나와서 빵을 사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고, 어느 날은 혼자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가면서 빵을 사 가니 남편이 좋아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매주 빵을 먹는 것은 아니니 기껏 해야 한 달에 한두 번 구매했기에 사장님이 보기에 내가  단골이라고까지 생각되진 않겠지만, 나는 식빵을 살 땐 그곳만 갔으니까 나에겐 단골 가게였다. 평소에 스몰톡을 잘하지 않고 내적 친밀감만 쌓아가는 나로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온 가족이 주말 아침 산책을 나왔다가 그 빵집에 들렀는데, 빵집 문이 닫혀 있고 "건강상의 이유로 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제빵이 체력 소모가 많다고 하던데, 게다가 매일 당일 생산한 빵을 팔려면 새벽부터 일어나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내부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갑작스럽게 아파서 못 나오신 것 같은데 큰 병일까, 빨리 나으시면 좋겠다, 남편과 나는 진심으로 사장님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빵집에 가니 사장님께서 나와 계셨다.


원래는 조용히 빵을 고르고, 계산대에 내밀고, 카드를 드리고,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 짧은 몇 마디 말만 나누지만, 그날은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었다.


"지난주에 왔었는데 문 닫으셨더라고요. 편찮으셨어요?"

"네, 몸이 좀 안 좋아서 며칠 쉬었어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걱정했어요."

"네, 이제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끝이었다. 다른 말들은 마음속에 그대로 담아 두고.


'제가 사장님이 만드신  빵을 아주 좋아해요, 너무 촉촉하고 맛있어요. 작은 사이즈가 있는 것도 좋고요. 저는 식빵을 여기서만 사요. 사장님 얼마나 편찮으셨던 거예요? 큰 병이셨어요? 저희 가족이 걱정 많이 했어요. 아프지 않으시면 좋겠네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조금 쑥스러워요. 빵집에 혼자 계시면 적적하시기도 하세요? 예전에 저희 엄마가 가게를 하실 땐 손님들이 이런저런 말을 걸면 덜 심심해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많은 손님들과 대화를 하시며 피곤해하시기도 했지요.' 


모르는 사람과 정을 느끼는 대화는 어느 정도로 길어야 할까? 길이보다는 내용이 중요하겠지만, 이 많은 마음은 뒤로 하고 단지 저 몇 마디 짧은 말을 건네는 것으로도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은 전달이 될까?

나는 그다지 붙임성이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나의 일상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감사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때로는 나도 그분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아주 잠깐의 기분 좋은 순간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약간의 용기와 수고로 건조한 풍경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도 조금은 의미 있는 일이겠지. 그러니까 나는 그냥 지나가다 빵 한 개 사 가는 사람이 아니라 빵집 사장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손님이 되고, 그 빵집은 나와 내적 친밀감이 조금 더 강해진 사장님이 계신 빵집이 되는 . 남들에겐 별 일 아닐지라도 나에겐 풍경을 약간 더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일. 이런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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