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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Sep 14. 2021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일

일과 육아의 균형

집집마다 자신이 정한 나름의 서열이 있나 보다. 가족 구성원 중 누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지를 말해보라면 지인 대부분은 고민 없이 자기만의 순서를 털어놓는다. 별다른 이유 없이 첫째가 무조건 우선일 수도, 애교 폭격기 막내가 우선일 수도, 언제나 가정의 중심이 되어 주는 남편이 우선일 수도 있다. 나에겐 내가 흔들림 없는 1번이다. 내가 삶의 주인공이니깐. 가까운 친구들에게 그렇게 보일 정도로 나란 사람은 내 삶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꿈꾸는 일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결혼한 이후에도 남편과 끊임없는 투쟁을 하며 나만의 시간(me-time)을 쌓아 왔다. 가사와 육아도 물론 내 중심적으로 돌아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첫째는 부지런히 챙길 수밖에 없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의심되는 아이를 평범한 세상으로 끄집어 내느라 애써왔다. 아이에게 네 살 초반 때까진 화를 단 한 번 낸 적도 없었고, 아이가 무난하게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해결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다. 연예인도 출연한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해 놀이평가를 받은 뒤 아이에게 필요한 수업을 최근까지 해왔다. 내가 고민하는 내용이나 센터에서 들은 사항들을 어린이집˙유치원 선생님들과 꾸준히 전달하고 피드백받았다. 다행히 지능도 자존감도 높다는 진단을 받고 큰 병원에서 뇌 검사를 하진 않았지만 가족들과 센터 선생님들, 어린이집•유치원 선생님들이 애써주신

노력이 하나로 뭉쳐져 사회성도 상호작용도 원활한 아이가 되었다. 자기 만의 터널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세상살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선 나의 일을 만들어가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둘째는 가까워진 누구에게든 애교를 부리는 사랑둥이다. 9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맡겼는데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었다. 둘을 온전하게 돌볼 수 없는 체력이라고 인정하고 나니 어린이집에 보내는 내 마음도 편했다. 더군다나 첫째를 2년째 믿음으로 보내고 있는 어린이집이었다. 남자아이가 가진 특성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에너지가 워낙 흘러넘치는 아이지만 둘째에겐 마냥 믿는 구석이 있었다. 둘째는 사회성이 좋은 편이다. 마음을 열고 나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 그리고선 더 큰 사랑을 받는다. 이 녀석이 하원 할 때는 20분 정도 여유를 둬야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모두 인사를 해야 차에 올라탄다.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은 물론 시간 연장 보육 선생님들께도 일일이 눈 맞추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제일 마지막 코스는 담임 선생님이다. 사무실에 계신 선생님을 굳이 찾아 데리고 나오는 아이. 이런 아이를 거부감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나와 주시는 선생님께도 참 감사하다. 이런 환경에 놓여 있는 데다 자기표현이 충실한 아이라 둘째에겐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었다.


이제 숨을 좀 돌릴까 싶어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과제가 생겨났다. 둘째가 사랑을 절로 부르는 녀석은 맞지만 장난이 심해졌다. 아들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겪어 보지 않은 '아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회유책과 강경책을 골고루 써봤고, 남아를 잘 다루기로 유명한 최민준 자란다 남아미술연구소 소장님 유튜브를 찾아 조언대로 실천했다.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도대체 아들은 어떤 존재인가. 아들을 떠나 다른 남아들도 이러한가. 그 해답을 풀기 위해 첫째와 전혀 다른 고민들을 풀어 나가야 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무슨 감정이든 시원시원 잘 표현했던 둘째는 최근 자기 가슴을 만지는 행위로 나에게 무거움을 안겨 주었다. 아들아 항상 나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뽀뽀하지 않았니?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먼저 다가오는 녀석에게 뒤통수 맞은 기분이지만 원인을 찾으려다가도 이런저런 일을 즐겁게 하게 된 상황이라 아이보단 일을 먼저 챙기게 되었다.


 와중에 첫째는 어느 순간 울보가 었다.  하나 쉽지 않았던 첫째를 마음 편히 내려놓고 지내겠다고 한숨 돌리는 차에 엄마에게 불만이 생겼나 보다. 첫째는 엄마와 따로 이곳저곳 단둘이 데이트도 많이 하지 않았던가. 뭐가 부족할까.   터울 녀석들은 티격태격하다 하루를 홀라당 보내 버릴 때가 많다. 어떤 날은 기적인지 아침부터  시간을 절친처럼 놀기도 하지만 엄마 사랑을  받는다는 불안감으로 첫째는 징징거림으로 둘째는 장난으로 나의 혼을  빼어 놓았다. 엄마가 일하는 재미에 빠져 인생 진도를 마음 놓고 쭉쭉 빼는 동안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육퇴  뒤엔 일을 해야 하는데 잠들어 버린다. 육아도 가사도 나의 일도 균형을 이룬다고 자신했던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작업하던 노트북은 아이들 하원 후에도 펼쳐져 있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서 가슴 만지는 6세 여아 사례를 보고 이곳에선 차마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둘째부터 살뜰하게 챙겨 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불만도 쌓인 시간도 늘어나고 그로 인해 나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커졌던 나는 일하는 재미로 내 삶을 이어가고 싶었다. 회사는 다니지 않으니 이 정도는 욕심내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살짝만 시선을 돌리고 있어도 아이들은 힘들 수 있겠구나 싶다. 그제야 둘째 녀석에게 특별하게 필요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밤수를 끊은 7개월부터 아들 재우기는 남편이 도맡아 주었다. 밤 9시부턴 내가 마음 놓고 일하고 공부하고 강의 듣는 시간으로 채워갔다. 지금 와서 보니 느껴 졌다. 아들은 엄마를 늘 기다렸다. 말을 안 했을 뿐. 녀석이 아빠가 곁에 바로 있어도 손을 빨고 가슴을 만지면서 겨우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아파왔다.


이런저런 막연한 고민들이 이어질 때쯤  아이와 각각 데이트를 했다. 첫째는 엄마와 따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빈번했다. 그래서  시간을 마음 편히 보낼  알았다. 그런 느슨한 모습에 나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에게 울림을   둘째와의 시간이었다. 둘째와 작정하고 단둘이 시간을 가진  처음이었다. 바다생물에 빠진 아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주려고 모처럼 아쿠아리움을 방문했는데 아들은 예쁜 말만 골라서 나에게 들려주었다. 장난기는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 둘은 연애를  시작한 연인처럼 손을  잡고 다녔다.



강연장에 가면 엄마의 삶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그리고 엄마의 자유시간도 꼭 확보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자만심이 찬 말이었을까 반성도 된다. 홈스쿨 하는 동안 아빠에게 맡기고 누나와 시간을 보냈을 때마다 어린 아들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나는 초예민자'라고 생각하고 미리 민첩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첫째와 둘째와 각각 보내는 시간도 차이가 없어야 한다. 일(work)과 육아 간 균형도 맞춰야 한다. 균형을 이루는 일을 잠시라도 쉬어가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신호를 보낸다.


- 반성하는 엄마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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