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Sep 24. 2016

<부산행> 그 이후의 좀비 영화란

Movie Appetizer#22 아이엠 어 히어로

우리는 좀비에 대한 내성이 생겼을까
좀비 영화의 변별점
<부산행>보다 더 영화적인 영화


<부산행>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의문은 천만 관객의 응답으로 해소되었다. 국내 극장가에서 ‘좀비’라는 소재가 흥행할 수 있음이 증명된 순간이다. 이 장르는 <레지던트 이블>이 문을 두드렸고. <월드워Z>가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틈을 만들었다. 그 틈으로 <부산행>의 천만 관객이 좀비처럼(?) 몰려와 영화관을 점령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여름의 좀비 열기가 식은 서늘한 극장가에 새로운 좀비물 <아이엠 어 히어로>가 도착했다. <부산행> 이후의 좀비 영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우리는 좀비에 대한 내성이 생겼을까

<아이엠 어 히어로>는 일본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기생수>, <진격의 거인> 등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있는 만화를 영화로 만드는 일본 영화계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일본의 영화계도 원작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개발하는 동력과 창의력이 부족해진 걸까. 아니면, 홍보와 흥행에 유리한 원작에 기대는 것일까. 국내에 웹툰 원작의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상영등급에서 예측할 수 있듯 이 영화는 잔인함의 수위가 꽤 높다. <부산행>의 좀비가 귀여워 보일 정도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함께 피가 많이 튀는 ‘고어물’이라 잔인하고, 오싹한 장면이 꽤 많으니 참고해서 관람하시길. <부산행>이 좀비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직후 개봉한 덕에 흥행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위를 국내의 일반 관객이 견뎌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고, 이후의 영화 수입 및 제작과 개봉에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된다.


고어물이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까. 관람 중 몇 번을 놀랐지만, 이 영화의 흥행 여부가 궁금하다. 또, 한 편으로는 응원하게 된다. 현재 극장가에 있는 기획 영화들이 클리셰로 가득 차 지루함을 주고 있기에 이러한 새로운 표현과 자극을 주는 영화가 상대적으로 더 좋았다. 이 좋다는 것이 영화의 완성도와 우월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시도와 표현이(기괴하더라도) 영화적 상상력의 확장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기에, 이러한 비주류 장르를 더 보고 싶은 것이다.



<아이엠 어 히어로>의 변별점

죽지 않고 움직이는 시체, 인간을 물어뜯는 강력한 턱, 그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이기심,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전투와 도주…. ‘좀비’라는 소재가 던져졌을 때,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이며, 대부분의 좀비 영화가 이러한 공식을 따르고 있다. (최근에 이 공식을 탈주한 영화로는 <웜 바디스>가 있다. 사랑에 빠진 좀비가 등장하는데, 꽤 따뜻한 영화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아이엠 어 히어로>가 다른 좀비 영화와 다른 점은 무어일까.


우선, 좀비의 움직임을 말할 수 있다.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좀비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올해 개봉한 <곡성>, <부산행>엔 독특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좀비가 등장한다. 두 작품 모두 안무가가 치밀히 움직임을 만들었고, 그 노력 덕분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이 엠 어 히어로>에도 온몸이 뒤틀리는 새롭고 충격적인 좀비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약간 더 힌트를 주자면, 이 영화 속 좀비는 감염되기 전에 가졌던 직업 및 의식과 매우 연관이 있는 재미있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런 좀비의 움직임을 통해 감독이 바라본 사회의 모습이 드러난다고도 볼 수 있으니, ‘저 좀비는 왜 저렇게 움직일까’, ‘감염된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등을 질문하며 관람하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히데오(오오이즈미 요)도 이런 장르에서는 드문 인물이다. 히데오가 ‘왜, 어떻게 변하는가’는 재난 상황 속에서 감독이 기대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그의 행동은 영화의 주제라 할 만하다. 다소 지질하고 멋이 없는 이 남자가 영화의 제목처럼 ‘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으면, 매우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에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부산행>보다 영화적인 영화

<부산행>은 좀비 영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한국의 국가 시스템과 재난 상황에서의 무능력함을 겨냥한 날카로운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현실의 부조리와 시스템을 스크린에 그대로 이식해 보여주고, 관객이 분노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부산행>은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줬기에, 이야기가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과 쾌감은(좀비라는 소재임에도) 그만큼 축소되어버렸다. 또, 인물 개개인의 이야기와 감정을 겉만 훑은 느낌도 적지 않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고 공감할 여지가 적었다는 것이다. 내러티브에서 보이는 클리셰와 신파적 요소 등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런 점에서 <아이엠 어 히어로>는 더 영화적으로 뛰어난 면을 보인다.



물론, <아이엠 어 히어로>는 <부산행>만큼 대중적인 코드를 공유하지는 못한다. 작품성과 완성도가 더 뛰어난 영화라고도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부산행>보다 관객을 상상하게 하는 영화고,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며, 고민하게 하는 좋은 ‘극’ 영화다. ‘고어물’에 대한 내성 정도에 따라 영화에 대한 호감·쾌감이 극과 극일 것 같지만 말이다.


어떻게 이 영화를 표현하면 좋을까. 영화에서 가능한 폭력적 요소 중 하나인 ‘피’를 스타일리쉬 하게 표현하는 거장 ‘쿠엔틴 타린티노’가 낄낄거리며 관람할 것 같은 영화라 말하면 좀 고급스러운 표현이 된 걸까. 이 영화를 응원하는 마음에, <아이엠 어 히어로>는 ‘헤모글로빈의 미학’이 있는 영화라 (애정을 가지고) 우겨보며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영화가 재소환 될 수 있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