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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Oct 19. 2016

차가운 유해진 vs 뜨거운 정우성

Movie Appetizer#26 럭키

차가운 유해진이 뜨거운 아수라에서 살아남는 법
킬러와 코미디 장르의 만남
‘왕자와 거지’의 연기 버전
유해진의 절제하는 코미디


모처럼 등장한, 잘 만든 코미디 영화 <럭키>의 흥행 돌풍은 단순히 ‘운’이 작용한 결과일까. 추석 이후, 그리고 마블의 본격적 침공(닥터 스트레인지)이 있기 전, 극장가의 주인은 놀랍게도 주연 배우 유해진이였다. 올 초 <대배우>로 첫 주연작을 맡은 오달수와는 다른 행보이며, 유해진의 또 다른 주연 작품 <미쓰GO>의 기억을 지워도 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아수라>의 흥행을 곧 뛰어넘을 것 같은 <럭키>. 흥행이란 팩트만 보자면, 유해진의 얼굴이 정우성의 얼굴을 이겼다. 지금 관객에겐 상처로 얼룩진 정우성의 절망적인 얼굴보다 푸근함과 친근함이 있는 ‘참바다’씨의 얼굴이 필요했던 것 같다.


킬러와 코미디 장르의 만남

코미디 영화와 피, 살인, 킬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코미디에서 기대하는 가벼움과 즐거움, 그리고 긴장의 완화를 청부살인업자에게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장르에 어울리는 소재가 있듯, 장르를 선택하는 관객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킬러에겐 스릴러나 액션물(아저씨) 혹은 로맨스(레옹)가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용감하게도 코미디 영화 <럭키>의 주인공 형욱(유해진>은 킬러다. 차갑고 절제된 형욱이 기억을 잃고,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사람 냄새나는 유해진이 된다. 이러한 ‘킬러’-‘사람 냄새’ 간의 간격이 충돌을 만들고, 관객에게 재미를 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를 코미디로 요리했는데, 그래도 이 영화는 자신의 뿌리가 코미디 영화에 있음을 잊지 않았다. 킬러가 가진 사연이 어떻게 코미디 영화의 톤 앤드 매너로 녹아들 수 있을까. 아무튼, 색다른 조합이자 좋은 시도였고, 성공한 결과물임이 연일 증명되고 있다.


왕자와 거지의 배우 버전

동경하던 타인의 삶을 살면서 장애물을 만나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왕자와 거지’라는 원형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광해> 등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변주되고 있다. <럭키>엔 기억 상실을 매개로 두 남자의 인생이 바뀐다, 비루한 남자는 부유하면서도 비밀스러운 킬러의 삶을, 고급스러운 삶을 살던 킬러는 전 재산이 2천 원인 배우지망생의 삶을 살게 된다.


서로의 삶을 알기 위해 하나씩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럭키>의 재미는 ‘연기’라는 데 있다. 연기자가 되고 싶던 배우 지망생은 진짜 인간을 속이는 연기를 하고, 비밀스럽게 세상을 속여 온 남자는 허구의 이야기 속 배우가 되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 엇갈린 서로의 역할 때문에 서로가 추구하던 ‘연기’라는 행위의 목적이 전치된 것이다. 이 아이러니 속에 두 남자가 아등바등하며 힘들어하고, 그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다.



차분한 유해진이 만드는 코미디

유해진의 코미디 연기는 코미디 영화에서든 아니든 늘 관객을 기대하게 한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의 연기는 늘 조명받았다. 그 정점에 있던 영화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었고, 그의 애드립은 따로 영상 클립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였다. (음~파 음~파) 이번 <럭키>의 연출이 돋보인 이유는 유해진이 보여주던 익살스러움을 덜어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유해진이라는 배우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수많은 표정과 과장 등의 돌출을 자제했다. 연출자로서 보장된 재미를 참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계벽 감독과 유해진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럭키>의 유해진은 킬러의 무드를 깨지 않고, 온전히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만든 틈으로 웃음을 불어 넣는다. 상황은 점점 꼬이기만 하는데, 그 와중에 유해진은 중심을 잡고,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뜨거운 상황과 차가운 유해진의 조화가 만드는 웃음. 그리고 그의 차가움이 하나씩 해제되어 갈 때, 코미디가 생긴다. 유해진은 이번 영화에서 어떤 애드립보다도 친근한 표정으로 관객을 웃게 했다. 참바다씨가 보여준 담담한 웃음이 영화에도 옮아온 것만 같았다. 아, 물론 아재 개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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