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주 팽창과 시간 흐름 간의 관계에 대한 단상

by gimmesilver

순환하는 세계

1차원 세상에 살고 있는 개미를 생각해 보자. 개미의 입장에서 세계는 앞뒤로 아주 길게 뻗어있는 선으로만 이뤄져 있다. 만약 개미가 호기심이 강하다면 세계의 끝이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탐험하려 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현재 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부 쯤에 있어서 세계의 끝에 도달하려면 아주 먼 여행을 해야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1차원개미.png


그런데 어느날 누가 개미에게 이렇게 얘기한다고 상상해보자.

"네가 사는 세계는 사실 끝도 없고 중심도 없단다."

아마 개미의 지적 수준이 충분히 높다면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 되물을지 모른다.

"세계에 끝이 없다면 이 세계는 길이가 무한한 선이란 말야?"

다시 그 누군가가 이렇게 답을 한다.

"아니, 길이가 무한한 건 아니야. 다만, 세계의 '끝' 이란게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

이런 말을 들은 개미는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평생을 1차원 세계에서만 살아온 개미의 입장에선 '유한한 길이'를 가지면서 동시에 '끝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고차원 공간에서 생각하면 두 명제가 상충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기는 아주 쉽다.

1차원폐곡선개미.png


편의상 둥근 원을 예로 들었지만 위상학적으로 단일 폐곡선으로 된 도형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즉, 개미가 사는 세계는 순환하기 때문에 시작이나 끝이라고 할만한 지점도 없고 중심점도 없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 사는 개미가 한쪽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다보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우리 지구에 사는 대다수의 인간들 역시 불과 수백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언젠가 세계의 끝에 도달해 바닥이 보이지 않는 폭포로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세계가 둥글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지구의 크기가 배를 타고 일주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둥근 지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 충분히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기술력이 있기에 우리는 '둥근 지구'를 비교적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2차원 세계에 살고 있어서 세번째 차원을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이고(그래서 높이 올라가 실제 둥근 지구를 관측할 수 없고), 지구의 크기가 우리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일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면 우리는 1차원 세계에 사는 개미처럼 '크기는 유한하지만 끝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실제 지구에 사는 개미 입장에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상상을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도저히 일주 혹은 끝까지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면서 전체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 이미 살고 있다. 그 공간을 우리는 '우주'라고 부른다. 언젠가 과학 유튜브에서 사회자가 한 천문학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주가 처음엔 작았다가 계속 팽창하고 있고 심지어 거리가 아주 먼 곳의 팽창속도는 광속보다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의 끝에 가기는 커녕 관측조차도 불가능하다고 하셨는데, 만약 가장 바깥쪽에 사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 외계인은 우주의 끝부분에 갈 수 있는거 아닌가요?"

이에 대한 천문학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아뇨, 우주에는 중심이나 바깥쪽이란 것이 없고 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계도 없습니다."

빅뱅 우주론에 의하면 최초의 우주는 지름이 수 km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후 약 140억년 동안 팽창하고 있다. 즉, 우주의 부피는 유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중심이나 바깥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1차원과 2차원 세계의 개미 예시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유추를 할 수 있다.


'우주는 3차원 공간이 순환하는 세계이다.'


1차원 세계만 인지할 수 있는 개미에게 2차원 도형인 원은 직관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일 것이다. 2차원 세계에 사는 존재 역시 3차원 도형인 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원이나 구처럼 1,2차원에서 순환하는 도형은 쉽게 머리속에 떠올수 있지만 3차원적으로 순환하는 4차원 도형을 머리속으로 그리지 못하는 건 우리가 3차원 세계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지 그런 구조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팽창하는 세계

이제 팽창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해 다시 1차원 단일 폐곡선 세계에 사는 개미로 돌아와보자. 편의상 개미의 단일폐곡선 세계는 원 형태로 되어 있다고 가정하겠다. 이 개미가 사는 세계도 우리 우주처럼 계속 팽창하는데 원의 선분 위에 사는 개미나 물체들의 크기는 그대로이고 공간만 팽창하며 거리가 먼 곳일수록 점점 더 빠르게 멀어진다고 상상해보자.

이렇게 원 형태로 된 1차원 공간이 팽창한다는 것은 원 둘레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인데, 이는 다시 말해 원의 지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구의 2차원 표면적이 점점 팽창한다는 것은 표면에서 중심까지의 거리 즉, 구의 지름이 되는 세번째 차원축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3차원 순환 구조인 우리 우주의 부피가 계속 팽창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4차원 도형의 표면에서 중심까지의 거리인 네번째 차원축이 점점 길어진다는 뜻이 된다.


그럼 이렇게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는 이 4차원 축은 무엇인가? 빅뱅의 시작 이후로 한번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단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차원축을 우리는 이미 하나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이미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은 공간과 함께 시공간 좌표축 중 하나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4차원 축을 시간으로 보는 것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왜 시간축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지, 심지어 시간이란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지 등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시간을 엔트로피 관점에서 설명하는 주장인데, 시간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이유는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방향(즉, 시간의 역방향)으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엄청나게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주를 팽창시키는 축이 시간축이라고 가정하면 시간의 단방향성은 당연한 것이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 역시 해소된다. 팽창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즉, 빅뱅 '이전' 이란 사건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계기로 빅뱅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우리 우주는 시간축이 길어지면서 팽창했고 이로 인해 우주 공간에 사는 우리는 팽창하는 시간축을 이동하며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4차원팽창개미.png


상대성이론과 시간축 팽창과의 관계

이제 우주가 시간축을 따라 팽창한다는 가정 하에 시간과 관련된 두 가지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 왜 중력에 의해 시간 왜곡 현상이 발생하는가?

혹시 겉면에 접착 테이프 조각이 붙어 있는 고무 풍선을 불어본 경험이 있는가? 접착 테이프가 붙은 표면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덜 부풀어 오른다. 왜냐하면 테이프가 고무가 늘어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력은 고무 풍선에 붙은 접착 테이프같은 효과를 우주 팽창에도 줄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우주의 팽창이 곧 시간이기에 중력에 의해 팽창이 더딘 공간은 시간축 이동이 상대적으로 느려질 것이고 이것이 중력에 따른 시간 흐름의 차이를 일으킨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우리 우주는 표면의 장력이 균일하지 않아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오르는 풍선과 같다.

이 생각을 확장해 보면,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인해 공간의 팽창이 이뤄지지 않고 따라서 그 중심부에서 시간축의 이동이 없어 시간이 흐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둘째, 왜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느려지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광속보다 빨라질 수 없는가?)

이번엔 지구 중력을 생각해 보자. 중력은 지구 중심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중력의 방향와 직교하는 방향(즉, 지구 표면에서 수평 방향)으로 물체를 던지면 앞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던지는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그래서 물체의 수평 이동 속도가 충분히 빠르다면)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지표면의 곡률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낙하하는 물체보다 더 천천히 땅에 떨어지게 된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땅에 떨어지기 전에 지구 표면을 따라 이동하는 거리가 길어지게 되며 약 8km/s 의 속도가 되면 지구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지구 주위를 돌 수 있게 된다. 인공위성의 원리이다.

인공위성원리.png

같은 원리를 시간축을 따라 팽창하는 우주 공간에 대입해 보자. 구의 2차원 표면에서는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든 지구 중심을 향한 축과 직교하듯이, 3차원 우주 공간에서도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든 (심지어 제자리를 빙빙 도는 회전 운동을 하더라도) 4차원 축에 직교한다. 따라서 4차원 축과 직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물체는 3차원 순환 공간의 곡률을 따라 떨어지기 때문에 정지한 물체보다 4차원 축의 팽창하는 방향으로 더 천천히 떨어진다는 상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마 광속으로 이동하는 물체는 시간축 팽창에 의해 밀려나지 않는 일종의 4차원 위성 상태일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중력은 벗어날 수 있지만 시간은 벗어날 수 없다. 그건 아마 우리가 3차원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 3차원에 존재하는 물질은 광속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


우주 팽창의 끝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럼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는가?' 팽창의 원인이 되는 힘 혹은 에너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팽창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추정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팽창하는 힘은 유한해서 천천히 느려지다가 언젠가 멈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팽창하는 우주 안에 속해있는 우리는 점차 느리게 팽창하는 것을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느리게 팽창할수록 시간 또한 같은 비율로 느려질텐데 그렇다면 결국 속도가 동일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설령 팽창이 멈춘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주가 언제까지 팽창할지 혹은 팽창 속도가 느려지거나 빨라지는지를 묻는 것은 시간축에 갇힌 존재인 우리 입장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한 의미 없는 질문일 것이다.


우주 팽창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 문득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작가의 이전글게임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