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부끄러웠고
눈치는 일상이었다
단칸방에 모여 살던 어린 시절
겨울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추위를 뚫고 밖으로 나가던 그 발걸음은
아직도 기억난다
IMF라는 단어도 몰랐던 어린 내가
학교에 낼 돈이 없어
지원금 신청서를 썼고
그 대가로 남들 기피하던
재활용 정리를 도맡았다
그 시절의 나는
왜 나만 이런가 싶었다
왜 아무도 나를 대신해 주지 않냐고
속으로 울었다
결혼하고도 단칸방
아이와 셋이 한방에서 잠들었다
좋은 집에 살지 못했지만
매일 밤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든 그 순간들
이제는 귀한 기억이 되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잃고
그제야 책을 폈다
시간은 남았고
남은 시간은 나를 마주하게 했다
그 모든 순간은
‘굴곡’이라 불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살아낸 날들이었고
견딘 만큼 단단해진 날들이었다
이제는 안다
가난했던 그때의 내 눈빛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부족했지만
그 또한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지금의 나를 참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