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어릴 때부터 심장이 약했다. 첫째가 태어날 때 의사는 심장이 기형이라고 했고, 부모는 늘 조심스레 첫째를 대했다. 살아가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과 다른 심장을 타고난 것이 첫째의 탄생이었다. 예쁘다는 소리를 셋 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고, 어릴 적엔 공부도 잘했다. 첫째는 친구도 많았고, 인기가 있었다.
11월의 어느 날, 둘째가 태어나는 날 첫째는 많이 울었다. 항상 옆에 있었던 엄마와 아빠를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첫째는 고작 세 살이었다. 할머니가 엄마가 되고, 할아버지가 아빠가 된 것 같았다. 첫째는 적응할 수 없었지만 적응해야 했다. 이제 좀 적응이 된 건가 생각할 무렵, 엄마는 또 병원에 갔다. 첫째는 충분히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7살 어린 셋째가 태어났지만, 셋째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할머니는 엄마였고, 엄마도 엄마였다. 조부모,부모, 삼남매가 사는 집에서 첫째는 늘 먼저였다. 일을 해도 먼저였고, 치킨을 먹어도 먼저였다. 하지만, 첫째는 어느순간부터인가 먼저 기회가 와도 닭다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첫째의 숙명이었다. 어릴 때부터 힘드신 엄마를 지켜봐 온 첫째는 강해져야 했다. 엄마를 위해 할머니에게 맞서야했고, 아빠에게도 맞서야 했다. 첫째는 자기 자신보다 누군가를 보호하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둘째를 지켜내야 했고, 집에서는 엄마를 지켜내야 했으며, 세상에서는 자신을 지켜내야했다. 가족을 지키기위해 무엇이든 하는 첫째는 가족의 중심이었다.
선택의 시간은 언제나 온다. 가장 처음 선택의 시간은 가족사진을 처음 찍던 날이다. 5식구가 함께 사진을 찍던 날, 첫째는 중학생, 둘째와 셋째는 초등학생이었다. 둘째는 엄마가 정해준 하얀색 드레스를 입었다. 셋째도사진관에서 준 귀여운 턱시도를 입었다. 첫째는 드레스를 거부했다. 첫째는 평상복을 입고 사진에 등장했다. 엄마가 정해준 것만 하던 어린 시절을 벗어나 처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선택했다. 첫째는 그렇게 자라갔다. 친구들이 인생의 안식처가 되었지만, 가족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늘 가족 언저리에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첫째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 오면 견딜수가 없었다. 조부모가 돌아가시고 가족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첫째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첫째는 많이 울었다.
두번째 선택의 시간이 왔을 때 첫째는 또다른 선택을 해야했다. 남들처럼 꿈만 붙들고 살기에는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꿈만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과 달리, 첫째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버는 것을 선택했다. 한달에 얼마 못받고, 오랜 시간을 일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심장이 약한 첫째는 그 일이 버거웠다. 하지만 선택에 책임지려고 애썼다. 첫째는 가족을 지키야만 했다. 가족을 지키는 방법을 가장 먼저 가족에게 보여줘야 했다. 첫째는 최선을 다했다. 무언가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최선의 선택을 했다. 첫째는 또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첫째의 어깨에는 가족이 있었다. 그 마음에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은 삶의 전부고 부모는 없으면 안되는 첫째의 필요였다. 어쩌면 첫째는 한 눈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그의 눈에는 자신의 가족만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첫째는 아팠다.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팠다. 부모가 첫째였고, 둘째가 첫째였고, 막내도 첫째였다. 첫째에겐 첫째가 없었다. 첫째에겐 가족만 있었다.
결혼을 하면 보통 가족의 변화가 온다. 원가족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하지만 첫째에게는 가족이 많아졌다.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그저 한명이 더 추가된 가족은 첫째의 삶에 버거움이 추가된 것일지도 모른다. 첫째는 최선을 다했고, 여전히 가족을 위해 살았다. 많아지는 가족은 첫째에게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첫째의 어깨에는 점점 가족수가 늘어난다. 첫째는 약했다. 첫째는 작았다. 그래서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