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사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날이었고, 둘째는 출근하려고 차에 올라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국회의원 중의 하나가 말한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국민을 지키는 나라가 되겠단다. 국민이 지켜지고 있는가. 내 세상 중에 가장 큰 내 나라가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마음속에만 간직하며 골목을 나간다.
골목은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거기서 아련한 한 사람이 보인다. 대학원 진학이 둘째에겐 버거웠었다. 고민도 많았고, 벌어놓은 돈도 없었다. 집을 나간 지 10년 만에 돌아와서 한다는 게 대학원 진학이어서 많이 울었었다. 하지만 그것밖에 둘째에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불편한 마음을 발판 삼아 어찌어찌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전부터 둘째에겐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다. 가족, 부모라는 밟아도 부서지지 않을 믿음직한 발판은 존재하지 않았고, 둘째를 지키는 나라 또한 기억 속에 없었다. 그래도 공부는 하면 되니까, 못해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으니까 둘째는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석사과정도 그런 거였다. 당시 둘째는 차도 없어서 카풀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10시에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면 11시가 다 되었다. 그날도 둘째는 카풀 해 준 동료와 함께 학교를 나섰다. 비가 많이 내렸고, 창밖을 보니 집 앞 골목에서 집까지 가기만 해도 비에 다 젖겠다 싶더라. 둘째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우산 좀 가지고 나와줄래? 엄마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 공손하지만, 어렵게 말을 꺼낸다. 둘째는 가족에게 무엇을 잘 요청하지 않는다. 가족이 둘째에게 요청한다. 둘째는 늘 혼자 무엇이든 해냈다. 공부도 직장도 연애도. 그래서인지 우산 가지고 나오라는 말이 그렇게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다. 엄마는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리는 골목에 가까이 오니 저 멀리서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또 다른 우산을 쓰고 서있었다. 반팔티에 반바지 차림의 남자였다. 내리는 곳에 도착하자 운전하던 동료는 세상에!! 아빠예요? 를 외쳤다. 둘째는 자세히 그 남자를 본다. 아빠다. 30넘은 딸자식을 위해 우산을 들고 서있는 아빠의 모습은 지금껏 둘째가 본 어떤 아빠의 모습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 번도 아빠가 우산을 들고 나온 적이 없다. 늘 엄마였다. 아빠는 바빴고, 둘째는 할 수 있는 모든 요청은 엄마에게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둘째의 마음에 무언가 큰 바위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바로 우산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집까지의 거리가 멀었던 적이 없다. 뛰어서 가고 싶어도 옆에 아빠가 걷고 있으니 발을 맞춰서 걸어야 했다. 둘째는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이 뇌리에 남았다. 그 어두운 밤에 우산 두 개를 들고 서있는 아빠의 모습이 왜 그렇게 지워지지 않던지. 사람마다 지우지 못하는 초기 기억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이전에 둘째에게 있었던 기억 하나가 소환되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둘째는 준비물을 잘 챙겨가는 편이었는데, 딱 한번 준비물을 안 가져온 적이 있었다. 엄마한테 급하게 전화를 하고, 준비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둘째의 리코더를 들고 온 사람은 아빠였었다. 교실 안에서 문위로 리코더를 흔드는 아빠를 보며 그때도 우산 두 개를 든 아빠를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구나 알게 되었다. 처음이 아니었구나. 처음이라 기억이 나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두 번째라 기억이 소환되는 거였다. 둘째에게 아빠는 바쁜 사장님이었다. 한번 안아준 적도 따뜻하게 대화해본 적도 없는 긍정적 기억이 없는 부재중 아빠였다. 그런데 둘째는 이때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기억은 사실이 아닐 수가 있는 거다. 생각보다 기억은 신뢰성이 없는 정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하게 된 그 순간 둘째는 아빠를 믿게 되었다. 아빠는 믿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째의 기억이 믿지 못할 기억이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과 상관없이 나의 기억을 놓아줄 때 올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까.
세상을 믿는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아빠를 믿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언젠가 누가 그랬다. 아빠에게 딸은 진실이고, 며느리는 사실이라고. 아직도 둘째는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데 둘째에게 아빠는 진실이었을까, 사실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둘째에게 세상은 진실일까, 사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