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다!
철 모르는 11살 꼬맹이가 현관문으로 달려간다. 이 집의 가장 사랑둥이 꼬마 조카는 할아버지의 두 손에 담긴 수박을 할아버지보다 더 반겼다. 13킬로그램이나 되는 수박을 한 손으로 들고 온 아빠는 웃는 얼굴이다. 둘째는 아빠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아빠를 웃게 하기로 작정했다.
'조카야, 이모는 아빠가 과일 사서 들어올 때가 제일 좋더라. 너는 아빠가 뭐 사 올 때 제일 좋아? '
'치킨'
고민도 않고 치킨을 외치는 꼬마 조카는 요즘 아이들이 맞는가 보다. 둘째는 그랬다. 과일을 밥보다 더 좋아해서 과일 먹기를 밥 먹기만큼 자주 하는 둘째가 된 것은 과일이 맛있어서가 아니었나 보다. 현관문 앞에 서서 셋은 늘 인사를 배웠다. 아빠, 다녀오세요. 아빠 다녀오셨어요. 이 두 가지 인사가 가장 예의 바른 인사였고, 인사를 하면서도 항상 눈은 아빠의 손을 향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무언가 자꾸 손에 들고 오셨다. 첫째, 둘째는 잘 요구하지 않는다. 아빠, 뭐 사주세요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셋째는 좀 있으려나. 어린아이였던 적이 별로 없으니, 요구할 수가 없었던 거다. 일찍부터 너무 많이 자라 버려서 아이들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없게 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빠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늘 손에 들고 들어오시던 그 아빠를 보면 뛸 듯이 기뻤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빠가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둘째는 아빠의 손이 아니라 아빠의 웃음을 봤다. 11살 철없는 소년에 손에 힘자랑되고 있는 수박과 함께 아빠는 웃고 있었다. 첫째도 웃었다. 엄마도 웃었다. 우리는 다 같이 웃고 있었다.
둘째는 생각한다. 어쩌면 수박보다 아빠의 웃음을 기다렸던 건 아닐까. 아빠는 과일을 좋아하는 둘째와 가족을 위해 봄이면 딸기, 여름이면 수박, 가을이면 사과, 겨울이면 귤을 박스채 들고 오신다. 둘째는 문득 그 무거운 박스를 한 번도 들어드린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아빠에게는 아무것도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왠지 항상 그 현관문 언저리를 힘 있게 넘으실 것 같았다. 이런 날은 항상 식탁에 모여 옛날이야기를 한다. 첫 번째 이사한 곳은 어디였고, 두 번째 이사한 곳은 어디였고. 그런데 이상하게 모두의 기억이 다르다. 다섯 식구는 함께 살았던 적도 떨어져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 옛날이야기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다 보면 모두에게 아련했던 시간, 후회스러운 시간, 아쉬웠던 시간 만이 남는다.
' 조카야 할아버지 할머니는 세 명을 키웠어. 너는 한 명이잖아. 곱하기 세명만큼 돈을 벌었어.'
'우와'
혀를 내두르며 놀라는 조카에게 '할아버지가 진짜 멋지지? '
둘째는 조카가 너무 사랑스럽다. 조카와 관계할 때 둘째는 거짓이 없다.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라 더 좋다. 아이라서 그런가 보다. 아빠에게 말하지 않아도 둘째는 아빠를 웃게 할 수 있다. 11살 꼬맹이와 연합하면 말이다.
왜 수박을 보면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매년 나를 위해 애써줘서 감사하다는 표현은 어버이날만 가능한 걸까. 에둘러 표현하는 게 익숙한 것이 되어버린 가족. 가족 안에는 따뜻함이 있는데 표현되지 않는 것이 참 많다. 우리는 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둘째는 표현이 서툴다. 첫째는 표현이 과하다. 셋째는 표현을 가린다. 우리는 표현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직접 서로를 웃게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에둘러 서로를 웃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오늘은 수박이다.
표현이 서투르고 어색한 사람들에게 권한다. 이야기를 하며 서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다. 듣지 않는 것 같은데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관심 없는 것 같은데 귀가 쫑긋한 누군가가 있다. 그 누군가를 위해 둘째는 오늘도 인생의 스토리텔링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