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슈탈트의 마법
‘미안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마지막 상담 날이다. 헤어짐이 어떤지 힘들지는 않은지 내담자에게 물었다. 내담자는 선생님께는 미안하지만 저는 괜찮다고 답했다. 괜찮다고 웃으며 내담자를 가볍게 넘기며 내담자와 헤어짐을 마무리하고 나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둘째에게 문자 하나가 왔다. 내담자가 울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 일도 아닌 듯 이별을 쿨하게 인사했던 내담자에게 갑자기 슬픔이 몰려왔던 것이다. 감정은 그렇다. 마음속에 겹겹이 쌓여있던 그것은 어떤 계기를 통해 탁 하고 풀어질 때가 있다.
둘째에겐 그 시간이 대학을 다닐 때였다. 문득 그때가 떠오르는 둘째는 잠시 감상에 젖었다. 어느 날 그렇게 줄줄 눈물이 나던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가장 많은 계단을 내려오고 있던 어느 밤이었다. 그날은 왠지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었다. 그러다 한순간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일까를 고민하던 순간 인생에서 가장 미안했던 순간이 떠오르고 있었다.
한창 사춘기 소녀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를 다니던 그때, 그때도 아버지는 현장에서 일을 하셔서 트럭을 몰았었다. 아버지는 평생 딸과 아들을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으셨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아침에 아빠의 트럭으로 등교하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필사적으로 학교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었다. 어쩌다 한번 늦으면 저 멀리 정류장에 내려달라고 아빠에게 말했었다. 그게 그렇게 부끄러워서. 첫째와 둘째는 아침마다 짜증을 냈었다. 괜히 트럭이 싫을 때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니 새삼스레 부모님이 생각나던 때가 있더라. 갑자기 트럭 타고 학교 가기를 싫어했던 과거의 나가 부끄러워지고 아버지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했돈 그때가 생각나서 계단을 내려가며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었다. 그렇게 많이 울었던 적이 있었을까.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이 얼마나 생각이 나던지. 인생에는 항상 해결되지 않은 장면이 있다. 늘 배경으로 가있던 그 장면이 그날은 전경이 된다. 해결되고 나서 배경으로 가야 하는데 해결되지 않고 가버리면 언젠가 이렇게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때 알게 되었다. 미안한 감정을. 얼마나 미안한 딸이었었는지. 얼마나 감사한 아버지였는지. 그래서 자식은 항상 자식이고 아버지는 항상 아버지인가 보다.
지금도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잘하신다. 그 어려운 운전을 하신다.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늘 같은 마음으로 남매를 데려다주신다. 가끔 트럭을 보면 아버지의 수고와 고생이 보인다. 이제 둘째는 트럭을 탈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아직도 트럭과 함께 하시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여전히 남매를 위해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학교를 갈 때마다 미안함보다 더 깊숙한 곳에 심겨 있었음에 감사하면서.
배경이 전경이 되는 순간,
전경이 배경이 되는 순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해결되어 감사가 되는 순간,
둘째는 그 순간을 여전히 사랑한다.
개체가 전경으로 떠올렸던 게슈탈트를 해소하고 나면, 그것은 전경에서 배경으로 물러나고 다시 새로운 게슈탈트가 형성되어 전경으로 떠오르고, 해소되고 나면 다시 배경으로 물러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이러한 유기체의 순환과정을 '게슈탈트의 형성과 해소' 혹은 '전경과 배경의 교체'라고 부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게슈탈트가 형성되었음에도 상황적 여건에 따라 이를 해결하지 못하였거나 아예 게슈탈트 형성 자체를 방해받았을 때 그것은 배경으로 사라지지 않고, 배경에 남아있으면서 계속 전경으로 떠오르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