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밤, 벚꽃나무 아래서
신주쿠공원에서 벚꽃 야경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축제 포스터에 그려진 벚꽃빛 신주쿠 공원의 야경이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역시 대도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결코 어둠 속에 묻혀두지 않았다. 낮이 저물고 밤이 되어도 짧게 일주일 남짓 만개할 벚꽃을 환히 비추며 모두를 끌어 모으는 것을 보니.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공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 입구에서는 저마다 보라색, 분홍색, 연분홍, 하얀색 – 형형색색의 등불을 하나씩 들고 일렬로 행진하는 모습이 축제라기보다는 어떤 의례를 연상케 했다.
공원의 드넓은 잔디밭을 배경으로 우뚝 선 벚꽃나무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제 모습을 뽐냈다. 그 주위로 저마다 들고 있던 등불들은 어두운 잔디밭 위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풍경은 하나의 작은 우주와도 같았다.
잠잠할 일이 없는 도시의 밤에서 하늘의 수많은 별 중 무엇 하나를 보기란 쉽지 않기에, 이 고요한 밤의 공원에서 도시인들은 잔디밭에 앉아 저마다 가져온 작고 밝은 등불들과 한껏 꾸며진 공원에 황홀경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등불은 어둠 속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며 자취를 남겼고 벚꽃나무를 비추던 조명은 서서히 색을 바꾸었다.
며칠 뒤면 떨어질 벚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과의 작별을 앞두고 이토록 정성을 다한다. 영원하지는 않지만 찰나의 아름다움을 기리며, 벚꽃잎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다음 벚꽃과 다시 만나기를 염원한다. 삶도 벚꽃과 다르지 않아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의 연속이건만, 우리는 과연 벚꽃처럼 누군가를 순수하고 열렬히 찬미한 적이 있던가.
때마침 벚꽃나무 군락 속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작은 부케를 든 여자와 멀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서로를 가장 밝혀줄 수 있는 마음과 자세로, 소멸하는 벚꽃 아래에서 불멸한 사랑을 기약한다.
그러나 사랑 또한 벚꽃처럼 언젠가 흩날릴 운명을 피할 수 없는 법. 벚꽃처럼 짧고 덧없기에 더욱 아름답고 소중한 것. 불어오는 봄밤의 찬바람에 벚꽃은 온데간데 사라지겠지만, 야간 조명에 비친 벚꽃보다 더 찬란히 빛나던 그들의 눈빛과 미소는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손에 들고 있던 등불마저 제 명을 다해 희미해져 가지만, 저편에서 어른거리는 또 다른 밝은 등불들이 이 곳을 이어 밝히기 마련이었다. 벚꽃잎이 내리던 도시의 그 밤, 서로 이어진 손끝에서 발한 빛들의 파도가 일렁였다.
비록 삶과의 짧은 만남이라 해도 아쉬움과 슬픔보다는 따스함과 기쁨으로 가득 찬 순간으로. 서로가 만나 새끼손가락을 걸어 하나가 되는 축제로.
천천히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가는 길목에 유독 키가 큰 벚꽃나무 두 그루 사이로 저 멀리 첨탑 하나가 보였다. 첨탑 꼭대기의 빛도 벚꽃의 색을 닮아 저 높은 곳에서 도시 전체를 벚꽃 축제로 물들이고 있었다.
짧은 삶의 매 순간도 이처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축제와 같고 서로가 느슨하게 이어질 수 있다면야. 곁을 스쳐가는 봄이 속삭인다 – 서로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건 따스한 봄이 지나가고 있는 바로 지금이라고.
이 이야기의 전문을 신간 <봄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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