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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희망

by 루씨

예상치 못했던 일들에 충격을 받긴 해도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잊어버릴까, 어떻게 엿을 먹일까, 어떻게 하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대할까', 생각은 주로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다가 사라져 갔다.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가면 고통은 엷어진다. 그게 고통이 가진 유일한 장점이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고 또 새로운 희망을 도모하게 된다.

반대로 희망도 시간이 지나가면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스러워진다. 그게 희망의 가장 나쁜 점이다.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엔 거품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단단해 보인다.

그는 쉽게 희망하지 않은 대가로 절망도 하지 않는 복을 받는 것 같다. 난 기쁘고 싶어서 즐겨 희망했고 자주 삶에 감동받고 싶어 했다.


몸이 골짜기에 있더라도 마음속에 봉우리를 떠올리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내가 그려왔던 수많은 봉우리와 빠져있던 골짜기가 물에 비쳐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희망 없이도 살아가는 기술을 익힐 수 없다면, 기뻐하지 않고 희망하는 기술이라도 익히고 싶다.


유진목의 책 <재능이란 무엇일까>를 읽다가 '최근에 나는 많은 것과 작별했다'는 문장에 밑줄을 치고 내가 작별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적어갔다.

그 문장들은 이렇다.


'최근에 나는'

쉽게 희망하기와 작별했고,

없던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 하는 습관과 작별했다.

쉽게 화내다가 빨리 풀고 싶어 하는 마음과 작별했다.

한 가지 고통이 여러 가지 일상을 망치도록 내버려 두는 습관과도 작별했다.

앞이 안 보이는 현실을 말갛게 닦아줄 행운을 기다리는 일과도 작별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다리다 보면 알게 된다. 누군가가 그렇게 해준 게 아니라 진창 속에서 발버둥 치며 시간을 보낸 스스로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http://aladin.kr/p/wRYJp



Leiko Ikemura <Floating Face> 2009. 슈테델미술관 (프랑크푸르트)

작품 해설

Leiko Ikemura는 1951년 일본 미에현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독일과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일본-스위스 국적의 작가입니다. 그녀는 회화, 조각, 수채화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인간 존재와 자연, 여성성 등의 주제를 탐구합니다.

<Floating Face>는 Leiko Ikemura의 대표적인 "Floating Faces" 시리즈 중 하나로, 부유하는 얼굴의 형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내면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 시리즈는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로, 인물의 얼굴을 부드럽고 흐릿하게 묘사하여 감성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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