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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Aug 18. 2024

주말에 연락드려서 화가 많이 나셨나요?

아차 싶게 만드는 기자

입사 이후 개인적인 스케쥴은 월말에 나오는 근무표에 끼워 맞추며 살았다. 하루도 빠짐 없이 뉴스는 나와야 하기에 빨간 날(주말, 공휴일, 명절 등 휴일) 근무는 일상이 됐다. 이젠 익숙해져서 휴일 근무 피로도는 줄었지만, 그렇다고 평일 근무보다 강도는 줄지 않는다. 기사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해한다. 기자야 출근이 일상이겠지만, 관공서든 회사든 쉴 사람은 쉬어야지. 


무난한 주말 아침이었다. 단독 기사는 많이 없지만, 그 덕에 발제할 것도 없어 땀이 나는 아주 일상적인 일요일이었다. 확인해야 할 기사는 딱 하나, 의원실을 끼워 쓴 단독이었다. 서면 답변서를 쌍따옴표로 인용한 기사였으니 내용이 틀리진 않겠으나 그래도 가장 원 소스에 가까워야 하는 게 기자다. 머뭇거릴 새도 없이 일단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 걸었다는 죄송의 언어를 가득 담아서.


"주말이라 집에 있어서 없고, 그 기자님이 찾아달라고 해서 준거예요. "

"아, 그래요? 그러면 자료는 지금 없나요?"
"집에 있어서 없죠."

"앗, 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내주셨다면 공유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비슷한 결로 기사화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기사를 통해서만 접해서요. 원본을 요청드리고 싶어가지고요."
"지금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보좌관님 말고 다른 분에게 요청드릴 분이 있을까요?"
"제가 준 거예요. 제가 준 거고, 저만 가지고 있는데 주말이라 없습니다."


뭔가 나의 창으로는 뚫을 수 없는 방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주말의 한계이니 일보후퇴해야겠다.

"아, 그렇다면 인용은 괜찮을까요?"
"기사 인용이야 저한테 요청할 게 아니죠."

"기사에 나오는 답변들이요. 보내주신 자료에서 언급됐으니 그 내용은 맞는 거지요?"
"그 내용도 기자님이 요청해서 제가 전달만 드렸고, 제가 검토해보지도 않은 내용이에요. 
저한테 묻지 마세요."


드디어 나는 창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주워 곧게 세웠다(웃으면서 되물었다).


아, 네. 그런데 주말에 연락을 드려서 화가 많이 나셨나요?


"아니오." 그제서야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알겠다고, 잘 마무리하고 끊었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못한 통화였다. 주말에 건 전화여서였을까? 라고 하기엔 상대는 무수히 많은 기자를 상대하는 의원실 보좌관이다. 호의적이지 않은 매체여서였을까? 라고 하기엔 비슷한 결의 기사를 쓰겠다고 취지를 설명한 상태였다. 내가 정치부 기자가 아니어서였을까? 목소리가 너무 앳된 탓일까? 갖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의 깊은 생각을 끊어내게 한 건, 옆에서 통화 내용을 다 들은 동기의 말이었다. 


"넌 매우 상냥하고 따뜻하지만 강단있고, 
'함부로 하면 큰일나겠다'하는 아차 싶게 만드는 기자인듯 해."

"왜? 내가 주말에 전화해서 화나셨냐고 말해서?"


딱 그때 OOO이 자세 고쳐잡고 대답한 게 느껴진다.

나 역시 그 대답에서 미묘하게 달라진 톤을 느꼈기 때문에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한 지도 몰랐다. 



되돌아보면, 누군가에게 호락호락하길 원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았다. 여러 현장 속에서 시민들을 만날 때 어쩌면 나는 늘 호락호락하기를 자처했다. 기자인 나를 편히 여겨 더 날 것의 이야기를 해주십사하는 마음이기도 했고, 기자의 탈을 쓴 동료 아무개라는 이유로 고개를 숙여야 할 일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고 싶을 때는 그 반대의 경우였다. 어느 회사 대표, 어디 지역구 의원, 어떤 직급 공무원 등을 만날 때다. 우리 회사를 대표해서 자리한 것이고, 시청자를 대신해 질문한 것이니 고개가 절로 빳빳해진다(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과 건방진 것은 다르다).


자세를 고쳐잡고 다시 대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내가 지향하는 사람이자 기자의 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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