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내 기사의 주인공은
약속이 없는 휴일이면 에코백에 책 한 권을 챙겨 근처 카페로 향한다. 손이 걸리적거려도 아무 상관 없는 날이니 텀블러도 챙겼다. 환경보호에 동참했다는 뿌듯한 마음은 덤이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얼음을 아그작 씹다가 에어컨 바람의 찬 기운이 내 어깨를 감쌌다. 으슬으슬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더운 바람이 훅 끼쳤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 아오리사과를 연상시키는 연두색 돗자리. 그 위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앉아 계신 중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잘못 열었나? 멈칫했지만 분명 화장실이 맞았다. 당황스러운 내 표정을 감추며 얼른 들어갔다.
화장실에 머무는 동안 내 눈은 둘 곳을 잃었다. 그게 맞는 방법인지 모르겠으나 괜히 불편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줄곧 바닥만 쳐다봤다. 서둘러 손을 씻고 슬그머니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돗자리는 고작 신문지 한 칸 크기였다. 그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여사님의 눈은 유독 지쳐있었다.
화장실에서 밥 먹고 쉬는 일상을 공개하며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르포를 읽은 적 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교에서도, '백의의 천사'가 머무는 대형 병원에서도 이들의 공간은 없었다. 유독 덥고 습한 올해 여름, 이 폭염의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을 것이다.
기사의 비중 역시 다르다. 35도를 웃도는 올해 여름, 내가 가장 많이 쓴 기사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이었다. 지인에게 300만 원이 넘는 가방을 받은 영부인이 죄가 있는지, 과연 법앞에 특혜도 예외도 성역도 없도록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영부인을 대면조사했지만 그 과정이 출장(혹은 특혜) 조사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고, 수사팀이 검찰의 최고 수장에게 보고를 누락하는 이른바 '총장 패싱'을 비중있게 다루기도 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내가 쓴 기사는 한 여사만을 향했다. 폭염과 싸우는 야외노동자, 고열 요리에 쓰러지는 급식노동자, 눈칫밥 먹는 청소노동자의 여건엔 눈 감은지 몰랐다(물론 나는 지금 법조팀이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기사는 뭐였을까. 진짜 써야 할 여사님의 고통은 뭐였을까.
비단 여사님 기사만이 아니다. 주 1회 에코백에 텀블러를 챙겨도 주 5회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현장을 향하는 삶, 그런 내게 환경보호란 무엇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