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하고 소리쳐도 닿지 않는 그에게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가 가위로 한순간에 싹둑 잘렸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감은 두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40대 워킹맘은 짧아진 머리가 어색한지 자꾸 머리를 매만졌다. 10년 넘게 양육비를 안 주는 전 남편을 처벌해달라며 나선 삭발 시위다.
실형 판결 좀 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양육자는 이게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녀의 바람은 지난달에서야 이뤄졌다. 돈이 없다며 양육비 9600만 원을 주지 않은 아이 아빠의 실형이 확정된 것이다.
서류상 직업 없이 11년을 산 남성(이자 아빠), 하지만 빚도 없다. 휴대전화도 신용카드도 모두 다른 가족의 명의로 사용해왔고, 돈도 벌고 있었다.
양육비를 상회하는 수입을 평균적으로 얻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계 혈족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다면 가족들로부터 돈을 빌려서라도
자녀들의 양육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양형조건들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의 형은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되므로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 있다.
-2심 판결문 中
1심 재판부는 징역 3개월, 2심은 이보다 형량이 높은 징역 6개월을 선고했는데, 이후 상고를 포기하면서 징역 6개월이 확정됐다. 지난 2021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 개정된 양육비이행법이 시행된지 3년 만이다.
그런가하면 15년간 희귀병을 앓는 아들에게 양육비를 한푼도 주지 않은 또다른 아빠는 여전히 재판 진행 중이다. 법정 최고형인 징역 1년이 선고되자 곧장 항소했기 때문이다. 다시 법정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아이 엄마는 가슴을 친다.
애들은 태어난 이상 마음대로 부모를 선택할 수 없잖아요.
저는 그저 부모의 도리만 다하길 바랐어요.
그런데 재판할 때마다 매번 눈앞에 있는 자식을 외면해요.
판사님 앞에서 같이 듣는데, 그 아픈 애가 얼마나 비참할까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달엔 아동복지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양육비 미지급 행위는 방임에 이르는 아동학대'라고 명문화하고 법정 최고형도 2년으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더 이상 수년에 걸쳐 소송하고, 삭발하며 알리고, 눈물 쏟지 않아도 된다며 관련 시민단체는 이 법이 하루빨리 통과되길 바라고 있다.
물론 법이 만들어졌다고 끝은 아니다. 형사처벌과 양육비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났어도 양육비를 받아내려면 다시 이행명령부터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사이 쌓인 두 아들의 양육비는 1억도 훨씬 넘는다. 이 돈을 언제 받을지는 둘째 치고, 엄마는 아이들과 내일을 살아야 한다. 탁한 한숨이 쌓인다.
경찰에 검찰에 법원으로 쫓아다니는 너무 먼길이었는데 끝났지만 허무해요.
이겼는데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그런 속상함이 밀려오더라고요.
지난 시간 내가 뭐했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앞으로도 그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