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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Mar 12. 2021

큰돈 안 쓰고도 재밌게 살기

합정 사는 독신이 발견한 지속 가능한 7가지 취미생활

  재미없는 삶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요새 삶에 낙이 없어, 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투철한 종교관으로 무장 종교인이 아니고서야 삶의 목표라는 건 불투명 수밖에 없다. 태초에 철학이 있으되 아마도 그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한 삶의 의미를 찾아서,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 위에서 죽을 때까지 정처 없이 헤맨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을 모른들 어떠한가! 어느 날씨 좋은 날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지금껏 살아온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본다고 상상해보자. 약에 아아, 정말 재미있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면, 적어도 후회되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삶을 산다는 건 이토록 중요하다.


  그래서 정리해보았다. 나는 삶을 재미있게 보내려고 무얼 하고 있었나? 최근 한 달간 동선이 모조리 기록된 내 캘린더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난 그동안 총 7의 취미활동을 누리고 있었다.


  한 가지 말해 것은, 나는 평생 한 번도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적이 없다. 지금보다 돈이 훨씬 많았더라면 이보다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취미 활동을 마음껏 즐겼을 테다. 그러나 지금은 노후를 위해 자금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기에 큰 지출을 용납하기 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 돈이 충분히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나는 아주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지속 가능한 취미를 발굴해내는데 나의 온 여력을 쏟아부었다. 이 모든 활동들에 드는 비용을 전부 합해도 내 월간 지출의 5%가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전부 가성비가 쩌는 취미들이라는 뜻이다.



1. 온라인 독서모임 (커뮤니티 활동)


  어릴 때부터 독서는 가장 접하기 쉬운 여가활동이었다. 특히 해리포터 시리즈와 퇴마록은 책이 닳아서 곳곳의 페이지들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골백번 반복해서 읽었다. 두어 시간짜리 영화를 한 번 볼 값으로  시간을 즐겁게 보냈으니, 단연 독서를 능가할 정도로 가성비 좋은 취미는 찾 어렵다.


  만일 독서가 익숙치 않다면, 단체로 모여서 독서를 하는 모임보다는 각자 과거에 읽어봤던 책을 소개하거나 감상을 나누는 독서모임에 우선 가보는 걸 추천한다. 여러 군데의 모임에 나가보고 본인과 결이 잘 맞는 형식이나 회원을 찾아보면 된다. 나는 주로 동네 기반 커뮤니티나 인문학 팟캐스트 팬카페에서 활동하며 회원을 모집했다.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은 중고서점에서 저렴하게 구매했고, 다 읽고 난 뒤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서점에 팔았다.


  독서모임과는 별개로, 팬데믹이 유행하기 전까지는 직장인 경제 인문학 스터디 모임에서 2년 넘게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매주 모임에 참석했다. 독서모임과 직장인 모임에는 식사비와 커피값 외에 크게 드는 비용이 없다. 게다가 운영진이 되면 회비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직장인 모임은 그만두었지만, 독서모임과 동네 커뮤니티 모임은 줌(Zoom)이나 미트(Meet)를 이용해서 비대면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다.



2. 그림 그리기


  학창 시절에는 독서만큼이나 그림 그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무거운 색연필 세트나, 비싸고 사용이 번거로운 물감보다 단순히 연필 한 자루로도 언제 어디서나 그릴 수 있는 흑백 소묘 그리기를 선호다. 주로 빌딩이나 사람, 자동차를 즐겨 그렸는데, 대학교 입학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10년간 연필을 내려놓았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동네에서 그림 그리기 모임에 참여한 이후로 다시 재미를 붙고 있다.



  연필 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고 나면 몸은 살짝 지쳐도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결과물이 좋은 그림이 나오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완성된 그림을 차곡차곡 쌓다보면 점점 나아지는 그림을 보며 상당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종종 친구 얼굴을 그려서 선물해줄 도 있었는데, 굴이 장 잘 생겨 보이는 황금 각도를 찾아내는 게 중요 포인트다.



3. 정동  라디오


  마을공동체미디어 마포FM 라디오(100.7MHz)에서 진행 중인 동마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마포구의 각 동별로 주민들이 모여서 각자 살고 있는 동네를 주제로 격주에 한 번씩 1시간짜리 방송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마을미디어지원센터 덕분에 신비, 연수비, 스튜디오 이용료까지 전부 무료이고,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공개방송도 진행보았다. 10주간의 연수를 수료하고 나서 [어쩌다 합정러]라는 이름으로 작년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10회 차를 녹음했다.



  어릴 때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열렬히 청취한 라천민 출신으로서 언젠가 라디오 방송을 직접 진행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꿈을 하나 이룬 셈이다. FM 라디오와 팟빵 팟캐스트에서 내 목소리가 나오는 방송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4. 브런치 글쓰기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어느덧 1년이 었지만, 아직 글을 쓰는 속도가 더뎌서 매주 하나씩 올리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충분히 즐겁기 때문에, 내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그래도 언젠가는  책을 출간하는 게 목표다.


  운 좋게도 같은 동네에서 매주 한 번씩 온오프라인으로 모여서 함께 글을 쓰는 멤버가 생긴 덕분에 글쓰기를 지금까지 즐겁게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활동을 계속 이어갈 원동력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므로, 무엇을 하든 간에 동반자는 아주 중요하다.



5. 한강 러닝과 홈트이닝


  나는 평생 운동이라고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건강 악화로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했을 때, 지인의 권유로 5km 단축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갔다가 러닝의 재미에 눈뜨게 되었다. 


  신체적 한계에 도달할 때 느껴지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직접 맛보고 나니 왜 운동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생기는지 이해가 된다. 10km 이상 신나게 달리다 보면 마치 그림 그리기에 집중할 때처럼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러닝의 장점만 나열하더라도 몇 페이지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다.



  그때 마침 또다른 지인이 소개해준 프립(Frip)이라는 액티비티 어플을 알게 되어 직접 호스트로 등록을 했다. 러닝을 처음 해보는 입문자나 초보 러너를 위해 합정 부근의 한강공원에서 4km 러닝 코스를 정해서 매주 4인 이하 소수로 그룹 러닝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이용자 수는 어느덧 250명이 넘었다.


  러닝을 계속하다 보니, 역시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부족이 느껴졌다. 무산소 근력운동이나 홈트레이닝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 재미없고 힘들어서 최소한의 강제성 없이는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몇 지인들과 홈트 인증용 오픈 채팅방을 열 1년 가까이 참여하고 있다. 


  나이가 30대 들어서면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구는 강하다. 확실히 러닝과 홈트를 시작한 뒤에 군살이 빠지고 지구력이 크게 늘었. 특히 장시간 의자에 앉아 일할 때 집중력이 더 오래 유지되 효과보고 있다.



6. 유튜브 & 팟캐스트


  수년 전에 한 인문학 모임에서 만난 분의 고마운 제의로, 유튜브와 팟캐스트 채널을 열기 위해 서너 명의 사람들기투합해서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인문학 서적을 읽고 나서 리뷰하고 토론하는 포맷으로, 올해 하반기 채널 오픈이 목표다.


  읽어야 할 책이 더 늘어났지만 로 부담이 없다. 새로 구매한 신간은 깨끗하게 잘 관리하면 중고서점에 원가의 3/4 정도의 높은 값으로 팔 수 있다. 영상 녹화를 위한 스튜디오 대여 비용은 서너 명이 나눠 내면 시간당 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독서토론모임을 오랫동안 해온 나에게는 로 크게 준비할 필요도 없는 즐거운 취미 생활이다.


  수익을 바라고 유튜브를 한다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영상 제작분담해서 가벼운 취미로 하고 있다. 정말로 미있는 경험이다. 무엇보다도 나중에 나이를 많이 먹었을 때 나의 30대 시절을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다고 상상만 해도 벌써 마음이 들뜬다.



7. 경쟁요소 없는 게임


  다양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유독 올해 초에는 한가한 시간이 많았다. 각종 번역 프로젝트들이 종료되어 일거리가 줄어들기도 했고, 겨울에는 러닝을 비롯한 야외 활동에 제약이 많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창궐는 바람에 하루 종일 할 일도 없이 제로 집안에 머무르는 날이 늘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던 컴퓨터 게임을 시작했다. 구매비용은 약 10만 원 남짓으로 저렴하지는 않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 게임400 시간 족히 즐겼, 시간당 250원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여가시간을 보냈다.


  게임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포인트는 누군가와 경쟁하는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게임에서 다른 게이머를 이감을 얻을 수 있는데, 결국 즐거 위해 시작한 게임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귀한 여가시간을 투입해서 아주  스트레스와 찰나짧은 미를 얻는 건 내겐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MMORPG나 PvP 대전 형식의 게임들은 전부 지워버렸다. 나의 20대를 바쳤던 위닝일레븐, bye bye.



  나는 혼자서 아름다운 19세기 도시를 건설하는 샌드박스 형식의 게임을 골랐다. 건설 시뮬레이션 장르는 엔딩이 따로 없어서 좀 더 긋하게 즐길 수 있고, 남을 밟고 올라설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눈에 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감상하는 자기만족만 있을 뿐이다. 경쟁을 내려놓으니 이 얼마나 즐겁고 평화로지!




  그도, 가끔은 기타들고나가서 한강공원 한구석에서 마음껏 노래 부르도 하고, 집에서 명작 고전 영화 네이버 시리즈에서 천 원 남짓의 저렴한 가격으로 감상할 때도 있, 유튜브로 귀여운 고양이 공짜로 구경하기도 하고(랜선 집사)... 세상에는 적은 비용으로도 즐길 거리가 너무 많다. 사람 인생, 길어봤자 백 년도 안 된다. 이렇게 재밌는 일들을 마음껏 즐기기에 너무 짧다.


  이 모든 취미활동들의 핵심은,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적당 즐겨야 만족감이 증폭된다. 혼자서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같은 취향과 취미를 가진 두세 명의 사람들과 온오프라인으로 모여서 함께 놀다 보면 혼자 때와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집중도와 만족도가 크게 올라간다. 시간이 흘러 사십 대가 되고 오십 대가 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취미를 즐기는 게 나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듯하다. 게다가 나처럼 시집 장가를 안 가고 나와 함께 할 동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늘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에 무리가 갈 정도로 생계보다 취미에 더 심하게 몰입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느껴지는 결핍을 어떻게든 채우려는 듯이 모든 걸 그곳에 다 쏟아붓는데, 그러면 지속 불가능하다. 취미활동의 원칙은 나와 타인에게 그 어떠한 피해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다. 삶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누구나 적어도 한두 개의 취미 정도는 갖고 있기 마련이다. 만약 좋아하는 취미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다양한 경험을 아직 직접 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별 관심이 없서 시도조차 해볼 생각을 안 한 취미활동이 있더라도 꼭 한 번쯤은 직접 경험해보라. 막상 해보고 나면 의외로 너무 재밌어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아, 전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나 이거 좋아하네?"


  나도 스무 살에 기타를 배우기 전엔 아는 가수라고는 서태지 한 명 밖에 없을 정도로 음악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디뮤직, 재즈, 클래식, 포크, 팝, 알앤비, 퓨전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스무 살 이전까지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음악이라는 예술이 어느덧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크게 높여주고 있다.


  비연애, 비혼, 비출산주의자 점점 더 늘어가는 세상이다. 그 와중에 삶의 낙을 잃고 그저 일만 하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수도 함께 늘고 있다. 한평생 대학 입시, 취업 준비, 승진 경쟁, 재산 증식 등등 겉으로 보이는 목표에만 정처 없이 이끌리는 바람에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일상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그동안 등한시해왔던 삶의 여유와 만족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우리네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저 당신이 한번 쳐다봐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보내 있다면, 부디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당신의 파랑새를 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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