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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Aug 09. 2023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격월지 FEARLESS 7호 - 언제든, 나를 웃게 하는 게 있나요?

  사람 가진 감정 중에는 생각보다 아주아주 중요한 놈이 하나 있다. 귀여움을 느끼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귀여움 분노와 고통과 슬픔을 일시적으로나마 극복시켜 주고, 사람을 웃게 만드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귀여움은  다른 개개인들의 , 나이, , 문화권, 사회적 위치 등등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긍정적 감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여움이라는 감정을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다. 사실 나 또한 그랬었다. 낼모레면 마흔 살 아저씨인 내가 사실 겁나게 귀엽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원래 나는 평생 귀여움과는 수백 광년쯤 떨어져 살던 메마른 인간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타공인 핵노잼 시사덕후니까. 문화, 경제, 정치 같은 국내외 시사 문제 인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눈을 반짝이면서 열변을 토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나 때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다. 스몰토만 시작되면 좀처럼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눈앞에 나타난 한 사람이 내게 시도 때도 없이 귀엽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 아내가 된 (구) 여자친구였다.


  함께 살아보니 나와 아내는 공통점이 많다. 특히 우리 둘 다 아주 귀엽다는 것, 그리고 남들 앞에서는 그 귀여움을 절대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나와 달리 스몰토크에 강한 아내는 친구들과 만날 땐 6시간 수다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는 굉장한 투머치토커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더 기계적이고 사무적이 된다. 평소 가죽 재킷 같은 옷을 즐겨 입고, 키도 170cm가 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쉽사리 범접하지 못하는 아우라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술담배를 전혀 못 하는 게 반전이다.) 그런 아내가 나랑 있을 때는 귀여움을 시도 때도 없이 뿜뿜 내뿜는다. 굳이 혀 짧은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지 않아도 평소 행동과 표정, 말투가 하나같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그런데 본인은 자기가 어디가 귀여운지를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나랑 똑같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귀여워한다. 사실 외모는 아무리 예쁘고 잘나 봤자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덜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귀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증폭될  있다. 하루는 파란색 커플 빵모자를 쓰고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버스를 탄 노부부를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부부는 저렇게 귀엽게 함께 늙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귀여움이 가득할수록 삶의 질이 올라간다. 고양이가 제아무리 털을 날리고 탁자에서 유리컵을 떨어뜨려도 인간을 집사로 부리는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귀엽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들도 귀여움의 위력을 안다. 호전적인 짐승들도 새끼가 아장아장 다가오면 공격성을 잠시 거둔다. 귀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간혹 부부싸움을 하고 마음이 상했을 때도 한 명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금방 마음이 풀린다. 진짜 겁나게 귀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남몰래 종종 정체 모를 춤을 춘다.


  귀여움, 그것이 내게 언제나 웃음을 가져다준다. 꼬물꼬물대는 아기고양이, 물에 동동 떠다니는 해달, 그리고 이제 곧 네 살이 될 조카와 우리 아내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절대 질리는 법이 없다. 인생이 힘들 때는 혹시 눈앞에 보이는 사물에 귀여움 농도가 부족한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 귀여움이 끝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FEARLESS는 격월로 발간되며, 연남동과 성산동, 합정동 등 홍대 부근의 일부 서점 및 북카페에서 무료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배포처: 책방 서로, 아침달, 스프링플레어, 무슨서점, 독서관, 아인서점, 책방 밀물, 헬로인디북스, 색소음, 도깨비 커피집, 서울청년센터 마포오랑, 공동체라디오 마포FM

instagram@fearless_mg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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