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빡빡이 땀똔!"
명절에 대구 부모님 댁에 가면 조카가 이렇게 나를 부르면 달려와 목마를 타곤 했다. 그 위에서 조카는 나의 6mm 길이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다고 좋아했다. 대학생 때부터 빡빡이 머리였다. 집에 이발기계가 있어 스스로 머리를 깎았다. 그러던 내가 남은 생에는 이제 머리를 길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기르고 있다. 목마를 타던 조카는 댄서의 꿈을 꾸는 학생이 되어 내 어깨에 올라오던 날렵함을 코레오그라피를 짜는데 쏟아붓고 있고, 내 뒷목은 조카의 허벅지 대신 길어진 뒷머리카락이 간지럽히고 있다.
"나 머리 감아야 할까?"
H는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갈 채비를 시작해야 하는 순간 묻는다. 어떻게 하면 머리를 감고 싶지 않아 하는 자신의 귀찮음에 정당성을 부여할 답을 들을까 고민하는 뉘앙스다. 나는 대답해 준다.
"파묘다."
얼마 전 영화 '파묘'를 같이 봤기에, 베개에 눌려 혼란하게 갈라진 배우자의 뒷머리를 보고 영화 속 파헤쳐진 묫자리가 겹쳐 보여서 한 대답이었다.
"파묘라고? 키키키킼~"
H의 웃는 소리가 아침의 싱그런 기운을 북돋는다.
"감아야겠군."
배우자는 가운을 챙겨 욕실로 간다.
이제는 내가 묻는다.
"나 머리 감아야... 겠지?"
머리가 짧을 때는 머리에 담지도 않았던 사소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이다.
어떤 작가는 푹 자고 일어나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던데, 머리를 기르는 요즘 나는 사소한 시도로 새사람이 되고 있다. (물론 오늘은 심사숙고 끝에 머리를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