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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J Sep 20. 2016

나무를 죽였다.

오늘, 부질없이 나무를 죽였다.

마음 쓰지 않는 글을 그저 죽은 나무가 되었다. 미쳐 애정을 주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과 짜증이 들다가 이내 그 글이 애처롭고 안쓰러운 연민에 빠진다.

마음 주지 않은 글은 그렇게 죽은 나무가 되어서야 감정의 한 켠을 얻어간다.


수십 년 밥 먹듯 손에 펜을 쥐었을 테다.

유치원 아니 빠르면 그전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 글 쓰는 맛은 아직도 모르겠다. 너무 빠르게 써도, 느리게 써도 결국 욕심은 채우지 못한 채 다시 나무를 죽이곤 한다.


나무를 키우는 것처럼 그저 성실하게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춰주고, 사랑을 주면 딱 그만큼, 내가 쏟은 마음만큼만 자라났으면 좋겠는데 글 쓰는 일은 그렇지 않아 오늘도 애꿎은 나무를 죽였다.


나무를 죽이다가 가끔은 화를 냈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 결국은 내 탓이 될 걸 알면서도 화를 내봤다. 글에게. 그러다가 애원을 했다. 많이 바라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오랜 시간 기울인 만큼 글이 써졌으면 하고. 결국엔 우스운 일이었지만.


책장에 그리고 책상에는 쓰고 미쳐 버리지 못한 종이가 가득하다. 매번 죽인 나무에 미안해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언젠간 문득 이 종이를 꺼내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빠진다. 상상일 테지.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만 새삼, 오늘따라 글을 알고 글을 쓰는 일의 무게가 무겁다. 내가 죽였을 수많은 나무들이 아른거린다. 차라리 글을 몰랐다면, 너를 죽이지 않았을 텐데.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물 주고, 햇빛 주며 키워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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