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와룡면 이하 마을길
모든 처음은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처음을 겪어가고 있지만, 기억에 남는 몇 번의 처음이 있다.
첫 마을 답사.
민속이라는 학문을 배운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마을 답사는 두려움반 설렘반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부담감이 가장 컸을 수도.
스무 살, 내게 주어진 마을의 주제는 '집'이었다.
누군가에는 잠시 들리는 곳이자, 평생을 함께하는 벗 같은 집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시간의 겹을 쌓으며 나이 들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집의 대들보에는 집의 나이와 이런저런 바람들의 흔적이 담겨있었다.
삶의 공간인 집에는 오래되고 불편한 집은 있지만, 나쁜 집은 없다.
지금은 낯선 나무보일러나 연탄보일러로 겨울이 불편해도 구태여 기름보일러가 없어 속상하지 않다.
안동시 와룡면 이하 마을은 모두 100채가 안 되는 집이 있다.
그중에서 사람이 살지 않거나 잠시 들렸다가는 집을 빼면 고작 50 채도 되지 않을 듯싶다. 작은 마을은 아직도 서로의 사정을 너나들이 알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런지 집을 지을 때도 모두 같은 사람이나 업체를 통해 짓는데, 시멘트를 바르고 1973.03이라 쓰인 숫자가 당시 집을 지었음을 알려주는 집의 출생신고가 됐다. 옆집도 비슷한 모습으로 제 출생신고를 새겨놨다.
바를 정자로 쓰인 저 숫자를 나는 좋아한다.
마치 낡아 허물어버리는 건물이 아닌 삶을 함께하는 집이 되는 것 같아서. 아파트로 가득 차고 원룸과 빌라로 빼곡한 서울 도시를 벗어나 저렇게 낮게 제 자리를 잡고 있는 집을 보면 '너도 잘 살아내고 있구나'싶다.
집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자주 하게 된 까닭에는 서울에서 마주한 빌딩 숲과 아파트가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빼곡한 아파트 주차장에는 줄 맞춰서 차들이 가득하고, 아파트 벽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혹은 위성방송을 위한 동그란 접시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옆집도 윗집도 잘 모른 채 바쁘게 사는 일상에서 집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아닌 제 몸하나 눕혀 쉬다가는 공간이 돼버리고 있다는 서글픔에 집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간 듯하다.
덧붙여, 뭐든 빠르게 변하고 불편하면 허물고 새로 짓는 공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빗물이 새면 빗물받이를 달고, TV가 안 나오면 안테나를 매달고, 기와가 이가 빠지면 새로운 기와를 채우는 그 당시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함께 늙어가는 집의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시간과 함께 공간을 품어주고 있어 원인모를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다.
사실, 3세대가 함께 살다 이제는 부부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집은 조금 외롭고 넓어 냉기가 돌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공간은 언제든지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온기를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서로의 마지막을 격려하는 노부부의 집이지만, 둘이 사는 집이 아니다. 자녀들이 찾아오고 손주들이 찾아오며 채워질 집이다. 그렇게 넓은 집은 몇 번 오지 않는, 이제는 객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방으로 남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마흔넷의 시멘트 기와집은 그렇게 잘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