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이자 남편
그녀를 만나기 전 100m 전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커피빈 2층이었다. 아내는 큼지막한 버버리 코트를 오버사이즈로 입고 까만 구두를 신고나왔다. 손톱은 전혀 이쁘지 않았는데 그 조물조물한 손가락이 오버사이즈 코트의 끝자락에서 마치 인사하듯 가끔씩 고개를 내밀었다. 볼록한 볼안에는 가지런한 미소가 가득 차있었다. 아마 그 모습에 조금의 오차라도 있었다면, 나는 지금 남의 편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쌩긋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아 유재석..봉태규..닮은 분!' 이라고 첫 인사를 건냈는데, 내가 나 스스로를 누군가에 빗대에 소개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벗어났는데,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친구들에게 "와! 말도 안되는 애가 나왔어!" 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게 아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첫 만남 때, 아내는 계산대를 향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내 모습. 식사를 하러간 레스토랑에서 발사되던 나의 멍한 눈빛. 그리고 몇일 후 영화를 보러가자는 뻔한 약속에 계속 집착하는 나에게서 한가지 직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 남자 나에게 맛이 갔다' 고. 그래, 우리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연애시간을 비웃으며 결혼식장에 들어서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 남의 편이 된다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절친한 친구가 내게 건낸 결혼에 대한 조언이었다. 그것은 모태 솔로였던 내게 결혼식 끝날때까지 망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반대로는 끝까지 생각해보고 언제든 엎으라는 다년 연애 경험자로서의 나지막한 충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충언이 무색하게도 여러 시련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랑에서 나는 그 어떠한 이물질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남의 편이되었다. 더 중요한 사실을 얘기하자면 나는 오늘도 남의 편으로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평범한 남편이 아닌 '남의 편' 이 된 것은 결혼 후 알게 된 몇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첫째는, 아내나 나나 몹시 철이 없는 어린애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팀플레이도 가능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화장실에서 변기물 내리는 것 조차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이었다.
둘째는, 어떤 팀플레이도 할줄 모르지만 서로 문제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뒤집어진 빨래의 문제가 벗은 놈이 문제냐 빨은 놈이 문제냐' 와 같은 콜롬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명제에 서로 집착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도 서로 자기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나 자신이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착각으로 가득차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처럼 배우자를 침팬치 취급하는 우스꽝스러운 신혼을 지속해나갔다.
같이 잃다
아내가 아이를 잃은 것은 신혼 2년차.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해외 캠프 차 이탈리아를 다녀왔을 때다. 아내는 다녀오자마자 시름시름 앓았고, 그 즈음의 우리는 자주 다투었으며 나는 이래저래 마음껏 세상을 누비면서도 아프다고 시름하는 아내가 미웠다.
엄살이겠거니 했던 증상은 계류유산의 증상이었으며, 앳된 청년이 드라마에서나 겪을 법한 소식을 들은 나는 극심한 충격에 휩싸였다. 귀국하던 날 아내는 어찌나 피곤했는지 나보다도 더 소중하다던 바이올린도 고속버스에 두고 집에 돌아왔으며, 나는 그것조차 너무나 한심해 아내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던 것이다.
산부인과의 아기들의 비명 소리가, 아이들을 안고 다투는 부부들의 소란이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지 그날의 정적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머리를 감싸안은채 통로에서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으며, 나는 마치 식도 올리지 못한 대학생처럼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정적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같이 잃었다. 나는 우는 아내를 차마 위로하지도 못했다. 아내는 그저 민망한 미역국을 몇일이나 먹어야만 했다.
다시 아내를 만나다
나 보고 싶었어? 직장으로 날 데리러 오면 묻는 아내의 말. 질문도 같지만 늘 대답도 같다. 결혼 후 벌써 4년이 되가는데도 볼록한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보고싶고, 운전대를 잡은 그 오밀조밀한 손도 여전히 귀엽다. 서로의 여전한 간극이 그리움도 사랑도 담보하는 것일런지. 매일 익숙한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매일 낯선 남의 편으로. 다시, 나는 그날의 아내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