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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지 Apr 16. 2016

소꿉친구의 결혼

우리는 이어져 있을까


 "오랜만이지, 나 결혼해."


 이것은 어떤 애틋한 옛사랑 이야기이거나, 찌질이의 너절한 짝사랑 고백담이 아니다. 그저 나는 오늘 오래된 소꿉 이성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왔을 뿐이다.




 우리는 남자 셋 여자 셋으로 구성된 소꿉친구들이었다. 그나마는 중학교에 이르러 남자 하나 여자 둘이 되었고, 대학교 시절까지도 간간이 이야기 자리를 이어가다가 남자 A와 여자 B가 결혼을 하고 나서 교류는 드물어졌다. 그 나머지 C 가 오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이네." 문득 손을 내밀자 객석에 앉아있던 B가 내 손을 반갑게 맞잡았다. 남편과 아이는 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고, 남편이 매우 수고스럽다는 말을 했다. 매우 오랜만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아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삼는, 혹은 그게 우리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시점에 우리는 재회했다. 나는 굳이 아내가 함께 자리하지 못한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머지 하나의 조각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을 대기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어두운 턱시도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맞이하기 위해 한껏 어깨에 힘을 줬다. 문득 결혼식은 남자가 여자로부터 구원을 얻는 모티브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몇몇 형식적인 절차가 지나가고, C가 남편 될 사람과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C의 어머니는 고깃집을 하셨는데, 종종 놀러 가서 고기를 값싸게 구워 먹었던 날도 있었다. 그런 기억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머님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를 뭉클함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뜨거움은 어색해 당황스러웠지만, 익숙했던 시절의 반가운 따스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쩌다 밀려 신랑의 뒤편에 자리하게 되었다. 노상 느끼지만 하객들은 사진사가 웃으라는 얘길 하기 전엔 웃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는 즐거움을 위장하는 법을 종종 긴장하지 않아 놓칠 때가 많다.




 B와 대화를 나누며 연회장으로 향했다. B는 여러 친구들의 무리들과 함께였는데, 나는 그들을 모르지 않았지만 어쩐지 예전처럼 말을 놓거나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아줌마이지만 오직 이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또 구면이지만 초면처럼 어려운 상대들이었다.


 B는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편안했다. 그 편안한 미소가 불편함 속에서도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나 좀 껴서 먹자"라는 부탁에 그녀는 불편하지 않게 나의 자리를 식탁 끝자락에 마련해주었고, 맞은편 의자에 자신의 가방을 두고 식사를 준비하러 가는 배려를 보였다. 그녀의 친구들도 음식을 들고 온 내게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그런 친절과 배려 속에서도 나는 어쩐지 처음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처럼 어색했다. 그저 사회에서 익힌 '어색해 보이지 않는 법'과 '태연해 보이는 톤'을 애써 구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폐백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이 인사를 건넸다. C는 내게 아내는 왜 오지 않았냐고 물었고, 나는 집사람이 바쁘다고 대답했다. 문득 내가 C의 남편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살일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연애는 몇 개월 한 걸까.


 의아한 마음과 축하의 마음이 뒤죽박죽 된 상태로 C 의 환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문득 '우리는 이어져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아내를 소개해준 적이 없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일어나야 했지만 쉽사리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기 어려웠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을까. B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 가볼게.  언제나처럼 덧붙여 '조만간 보자'는 인사는 건네지 못했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어쩐지'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어쩐지,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는 절대로 아니지만-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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