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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줄'을 설계하다 (사회적 증거)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손님이 없으면 '줄'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차현서는 의도적인 '웨이팅 시스템'을 도입한다. '텅 빈 가게'라는 최악의 사회적 부정 증거를 '기대감 있는 대기'라는 긍정적 증거로 바꾸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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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없으면 '줄'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가마솥과 스토리가 준비됐다. 하지만 '맛집'의 마지막 퍼즐은 '사람'이다. 차현서는 '텅 빈 가게'라는 최악의 사회적 부정 증거를 '기대감 있는 대기'라는 긍정적 증거로 바꾸는, 가장 대담한 설계를 시작한다.


닷새의 시간이 흘렀다.


'송정옥'은 변해 있었다. 이태웅은 자신의 가게가 낯설었다.


새로 교체한 통창 바로 안쪽에는, 거대한 무쇠 가마솥이 위용을 드러내며 구수한 김을 뿜어냈다. (물리적/후각적 증거) 휑했던 벽에는 '송정옥 60년'의 철학이 담긴 세련된 스토리보드가 붙었다. (정보적/심리적 증거) 돈까스와 제육이 사라진 메뉴판은 단출하지만 '전문가'의 고집이 느껴졌다.


"이야... 사장님. 가게가 아주 훤해졌네. 딴 데 같아."


단골손님 몇몇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가게는 여전히, '저녁 7시의 기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컨설턴트님."


오후 브레이크 타임, 현서의 점검 시간에 태웅이 초조하게 물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왜..."


"아뇨."


현서가 태블릿으로 실시간 매장 앞 유동인구 카메라를 확인하며 말했다.


"가장 치명적인 '깨진 유리창'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네? 또... 뭐가요?" 박 여사가 질겁을 하며 물었다.


현서는 대답 대신, 텅 빈 홀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바로 저겁니다. '텅 빈 홀'."




그녀가 진단서 2번 항목을 다시 짚었다.


[2. 사회적 증거 (Social Cues): 최악 (-100점)]




"사장님. 고객은 '맛있는 집'을 찾는 게 아닙니다. '실패하지 않을 집'을 찾죠."


현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고객에게 '텅 빈 홀'은 '조용해서 좋은 곳'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 집은 아무도 안 가니, 당신도 오지 말라'는 최악의 '사회적 부정 증거'입니다. 우리가 애써 만든 저 '가마솥'과 '스토리'마저 거짓말로 만드는 신호라고요."


"그럼 어떡합니까! 손님이 없는 걸..."


"손님이 없으면,"


현서가 태웅을 바라봤다.


"'줄'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네? 줄을... 만들어요?"


태웅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슨... 알바라도 쓰란 말입 K니까? 그런 가짜..."


"그런 '가짜 증거'는 금방 들통납니다. 사장님."


현서의 표정은 냉담했다.


"우리는 '줄'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웨이팅 시스템'을 '설계'하는 겁니다."


현서가 태블릿에 준비해 온 계획을 띄웠다.


"첫째, 오늘부터 홀 테이블 절반은 치우거나, '예약석' 팻말을 올려 막습니다. 가게의 가용 좌석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겁니다."


"아니, 지금 손님 한 명이 아쉬운데 자리를 막아요?"


"둘째, 손님이 3팀만 차도, 4번째 손님부터는 무조건 밖에서 '웨이팅'을 시킵니다."


"미쳤습니까! 손님 다 떨어져 나갑니다!"


태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박 여사도 "밥집은 회전율이 생명인데!"라며 거들었다.


"사장님은 '회전율' 장사를 하실 겁니까, '브랜드' 장사를 하실 겁니까?"


현서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10명의 손님이 텅 빈 가게에서 '그냥' 먹고 가는 것보다, 3명의 손님이 '꽉 찬' 가게에서 '기대'하고 먹고, 1명의 손님이 '기다리는' 모습이, 100명의 새로운 손님을 불러옵니다."


그녀는 가게 입구 밖을 가리켰다.


"저기에 '송정옥' 로고가 박힌 깔끔한 '웨이팅 의자'와 '캐치테이블' 태블릿을 설치할 겁니다. 고객의 '기다림'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거죠."


"우리는 '텅 빈 가게'라는 '사회적 부정 증거'를,"


현서가 선언했다.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는 집'이라는 '긍정적 사회/심리적 증거'로 바꾸는 겁니다."


그날 저녁 6시 30분.


지시대로 '예약석' 팻말이 올라간 홀은 절반만 차 있었지만, 밖에서 보기엔 '만석'처럼 보였다.


'딸랑-'


젊은 커플이 들어왔다. 그들은 입구의 가마솥(물리적 증거)과 벽의 스토리보드(정보적 증거)를 흥미롭게 쳐다봤다.


그때, 또 다른 4명의 직장인 무리가 문을 열었다.


순간, 가게 안의 모든 좌석(운영 좌석)이 찼다.


'딸랑-'


일곱 번째 손님, 20대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박 여사가 긴장한 채 태웅을 바라봤다. 태웅은 마른침을 삼키며 차현서를 쳐다봤다.


현서는 턱짓으로 '밖'을 가리켰다. '하시죠.'


태웅은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입구로 나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손님을 내쫓다니, 장사 60년 만에 처음이다...'


"저... 손님. 죄송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다.


"지금... 자리가 꽉 차서요. 저기 태블릿에 번호 남겨주시면... 잠시만 대기해 주시겠습니까?"


여성 고객들의 시선이 '꽉 찬'(절반만 찬) 홀을 훑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펄펄 끓는 가마솥을 바라봤다. 그녀들은 불쾌해하는 대신, 서로를 보며 말했다.


"...어? 여기 사람 많네. 맛집인가 봐."


"응. 기다리자. 저 솥 좀 봐."


그들은 불평 없이 웨이팅 태블릿에 번호를 입력했다.


'송정옥' 60년 역사상,


첫 번째 '설계된 줄'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11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10


'텅 빈 홀'은 최악의 '사회적 부정 증거'다.


고객은 '조용함'을 '망해감'의 신호로 읽는다.


'가짜 줄'은 사기지만, '설계된 웨이팅'은 전략이다.


좌석을 의도적으로 줄여 '만석'을 연출하고, '웨이팅 시스템'으로 기다림을 관리하라.


이는 '손님이 없어 쩔쩔매는 가게'에서 '손님이 선택한, 기다릴 가치가 있는 가게'로 포지셔닝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스위치다.


고객은 '기다리지 않음'을 원하는 게 아니다. '실패하지 않음'을 원할 뿐이다.


'줄'은 그 '실패하지 않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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