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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여긴 '진짜'다" (심리적 증거)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전문가처럼 보여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은 고객에게 '신뢰'라는 심리적 증거를 준다. '곰탕 전문'이라는 명확한 신호가 어떻게 고객의 '선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지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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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처럼 보여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은 고객에게 '신뢰'라는 심리적 증거를 준다. '줄'을 서게 된 고객이, 단순화된 메뉴판을 보고 '실망'이 아닌 '확신'을 얻는 순간. 고객의 '선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이태웅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송정옥'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줄'이라는 것이 생겼다. 비록 차현서가 절반의 테이블을 막아버린 '설계된' 줄이라 해도, 가게 밖 웨이팅 의자에 앉아있는 저 20대 여성 듀오는 명백한 '대기 손님'이었다.


"사장님."


그의 곁에 선 차현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습니다. 저 손님들은 '줄 서는 가게'(사회적 증거)를 보고, '이 집은 안전하다'는 1차 신호를 받았습니다."


"..."


"하지만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입니다. 저분들이 '기다린 보람'을 느낄지는, 2차 신호에 달렸습니다."


태웅은 초조했다.


'기다린 보람? 완벽한 육수 맛을 보면...'


"아뇨." 현서가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말을 잘랐다. "맛을 보기 '전'입니다."


그때였다.


"2번 손님, 들어오세요."


박 여사의 안내에 여성 고객 두 명이 드디어 입성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마솥의 열기(물리적 증거)와 벽에 걸린 60년 스토리보드(정보적 증거)를 흥미롭게 둘러봤다.


"우와, 분위기 있네. 진짜 노포 맞나 봐."


박 여사가 예전의 그 끈적하고 조잡한 코팅지가 아닌, 차현서가 디자인한 빳빳한 크라프트지 메뉴판을 건넸다.


태웅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심장은 아까 '줄'이 생겼을 때보다 더 세차게 뛰었다. '제발... 제발...'


그가 두려워하는 순간.


고객이 메뉴판을 열고 "어? 여기 돈까스 없어요?"라고 묻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기다렸는데... 먹을 게 없네.'


그 실망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송정옥(松亭屋)]

송정 곰탕

송정 곰탕 (특)

한우 수육



메뉴판을 보던 여성 고객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태웅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왔구나...'


"...메뉴가 이게 다야?"


여자가 메뉴판을 앞뒤로 뒤집어보며 말했다.


"진짜네. 곰탕이랑 수육. 끝."


"..." (태웅)


"야, 그럼 여긴 '진짜'다."


여자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일행에게 말했다.


"대박. 나 어제 다른 데 갔다가 메뉴 100가지 넘어서 결정 장애 왔잖아. 이렇게 딱 두 개만 파는 집이 찐 맛집인 거 알지?"


"오... 인정. 전문가 포스."


일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태웅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실망'이 아니었다.


'불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안도'와 '확신'이었다.


그는 평생 '다양한 메뉴'가 손님을 위한 '배려'이자 '서비스'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차현서의 말대로, 그것은 '선택의 과부하'를 주는 '불신'의 신호였을 뿐이다.


고객은 '돈까스'가 없어서 실망하는 게 아니었다.


'곰탕 전문점'에서 '곰탕'만 파는 그 '자신감'을 보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저희 곰탕 하나랑, 특 하나, 그리고 수육... 작은 거 하나 주세요!"


차현서가 텅 빈 홀 구석에서 태블릿을 보며 태웅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사장님. 고객은 '선택의 자유'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선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고 싶을 뿐이죠."

그녀가 진단서의 3번 항목을 가리켰다.


[3. 심리적 증거: '전문성' 신뢰도 저하]

"백화점식 메뉴판은 '선택 실패의 두려움'을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사장님의 이 '단순한' 메뉴판은, 고객에게 '뭘 시켜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긍정 증거'를 준 겁니다. '전문가'의 보증수표죠."


이태웅은 그제야 깨달았다.


'선택과 집중'은 단순히 원가를 절감하는 경영 전략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객의 '불안감'을 '기대감'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심리 마케팅이었다.







12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11


고객은 '다양한 선택지'를 원하는 게 아니다.


'실패하지 않을 최고의 선택'을 원한다.


'백화점식 메뉴(심리적 부정 증거)'는 "우리는 아무것에도 자신이 없습니다"라는 '불안'의 신호다.


반면, '단순한 메뉴(심리적 긍정 증거)'는 "이것 하나는 최고입니다"라는 '자신감'의 표출이자, '전문가'의 선언이다.


고객의 '선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라.


그것이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고객은 '전문가'에게 기꺼이 돈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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