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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30만 원짜리 '미끼 상품'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30만 원짜리 코스는 '미끼 상품'입니다." 현서가 밝히는 파인 다이닝의 진짜 수익 구조. '주류'와 '브랜드'에서 나옵니다. 훌륭한 셰프는 요리사고, 위대한 셰프는 사업가다.


"연습하세요, 셰프님. 당신의 '이야기'를 팔 시간입니다."


차현서가 남긴 말은 이태웅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송정'의 텅 빈 홀, 완벽하게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가... 브랜드라고?'


그는 30만 원짜리 '곰탕 콩소메'를 스스로 맛봤다. 완벽했다. 이 '맛' 자체가 30만 원의 가치를 증명하는데, 왜 굳이 '배우'처럼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팔아야 한단 말인가. '맛'에 대한 자부심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을 붙들고 있었다.


"현서 님."


다음 날, 이태웅은 최종 점검을 위해 들른 현서를 붙잡았다.


"어제 하신 말씀... '셰프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말. 알겠습니다. 하지만 '맛'이 '소품'이라는 말엔 동의 못 합니다. 30만 원입니다. 이 가격이면... 이 '맛'만으로도 수익은..."


"셰프님."


현서가 그의 말을 끊고 태블릿을 켰다. 이번에 뜬 것은 화려한 이미지나 설계도가 아니었다. 숫자로 가득 찬 'P&L(손익계산서) 추정' 파일이었다.


"계산서를 보여드리죠. 훌륭한 셰프는 '요리'를 하지만, 위대한 셰프는 '숫자'를 봅니다."


그녀가 화면의 한 항목을 가리켰다.


"식자재 원가(Food Cost): 42%. 셰프님의 그 완벽한 콩소메와 캐비어, 한우 안심. 원가를 아끼는 순간 '송정'의 '격'은 무너집니다. 맞죠?"


태웅은 침묵했다.


"인건비(Labor Cost): 38%. 셰프님을 포함한 BOH(주방) 10명, FOH(홀) 6명. 이 완벽한 '환대'를 위해 손님 2.5명당 스태프 1명이 붙습니다. 일반 식당의 3배입니다."


"간접비(Overhead): 20%. 청담동 월세, 수억 원의 인테리어 감가상각, 잘토 와인잔 파손 비용까지... 자, 더해볼까요?"


[ 42% + 38% + 20% = 100% ]


태웅의 눈이 흔들렸다.


"셰프님. 이 30만 원짜리 코스 팔아서... '제로(0)' 만드시려고 이 비싼 '무대'를 차리신 겁니까? 이건 '사업'이 아니라 '예술 활동'입니다. 자선사업이죠."


"그럼... 그럼 대체..."


"이제부터 '진짜 수익'을 말씀드리죠. 셰프님."


현서가 태블릿의 다른 탭을 열었다.


"수익 엔진 1: 주류 (Wine & Beverage)"


"파인 다이닝은 '물장사'입니다. 아주 고상한 '물장사'죠. 사장님."


그녀가 원가율을 다시 띄웠다.

음식 마진율: 58%


주류 마진율: 75%


"고객이 20만 원짜리 코스에 15만 원짜리 '와인 페어링'을 곁들이는 순간, 셰프님은 '완벽한 경험'을 팔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경영자는 '진짜 수익'을 얻은 겁니다. 저 15만 원짜리 와인이 20만 원짜리 음식보다 더 많이 남으니까요."


"하지만..." 현서가 말을 이었다.


"그것도 '생존'일 뿐입니다. 우리가 '고든 램지'가 되려면, 두 번째 엔진이 필요합니다."


"수익 엔진 2: 브랜드 (Brand Equity)"


"셰프님. '송정옥' 배달(HMR)은 '캐시카우(Cash Cow)'입니다. '현금'을 벌죠."


"하지만 이 '송정'은 '플래그십(Flagship)'입니다. '브랜드 가치'를 법니다."


그녀가 19화에서 보여줬던 '셰프 이태웅'의 프로필 사진을 다시 띄웠다.


"이 '무대'에서 셰프님이 '주인공(브랜드)'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송정'에서 미쉐린 3스타를 따는 순간, '이태웅'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보증수표'가 됩니다."


"그때부턴 '이태웅'의 '요리'가 아니라 '이름'으로 돈을 버는 겁니다."


"셰프 이태웅이 감수한 '송정옥 HMR' (HMR 매출 10배 상승)"


"셰프 이태웅의 '세컨드 브랜드' (캐주얼 다이닝)"


"셰프 이태웅의 '방송 출연 및 컨설팅'"


"셰프님."


현서가 30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가리켰다.


"그래서 이 훌륭한 요리는 '상품'이 아닙니다. 셰프님의 '브랜드 가치'를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비싸고 화려한 '미끼 상품(Loss Leader)'입니다."


"이 '무대'가 성공해야, '송정옥 HMR'이 10억, 100억짜리 비즈니스가 되는 겁니다. 이 '미끼'에, 셰프님의 '스토리'와 '철학'을 담아 고객을 감동시켜야 하는 거고요."


이태웅은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차현서는 '송정'이라는 식당 하나를 컨설팅한 것이 아니었다. '송정옥'과 '송정', 그리고 '이태웅'이라는 브랜드를 축으로 하는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설계한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요리사'가 아니었다. '송정' 제국의 'CEO'였다.


그는 현서가 19화에서 건넸던 '셰프's Note(대본)'를 집어 들었다.


무대에 오를 시간이었다.







21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20


30만 원짜리 코스 요리는 '상품'이 아니라 '미끼 상품(Loss Leader)'일 수 있다.


파인 다이닝은 그 자체의 수익(BEP)보다, 셰프의 '브랜드 가치'를 신격화하는 '플래그십 스토어'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훌륭한 셰프는 '요리'를 판다.


위대한 셰프는 '이름(브랜드)'을 판다.


레스토랑 내의 '진짜 수익'은 '주류'에서 나오고,


레스토랑 밖의 '진짜 수익'은 '브랜드'에서 나온다.


이 '무대'를 성공시켜, 당신의 '이름'을 가장 비싼 값에 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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