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멋진 일을 만나다] ⑥ 엄마의 역사
평소 우리가 ‘엄마’를 떠올리는 순간은 언제일까? 고작해야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을 때나, 구겨진 옷이 잘 다려지지 않을 때, 투정을 부릴 대상이 필요할 때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부터 그런 존재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집안일에 도가 트고, 자식 일이라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 가족이 좋아하는 걸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엄마는… 엄마가 되기 전,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엇에 열광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무슨 생각과 어떤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엄마의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다. 인터뷰를 통해 엄마가 ‘엄마’라는 단어로 일반화되기 이전, 개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으로 담아낸다. 궁극적으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의 역사>의 기획자이자 공동 연출자 이은진 님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박소현 님을 만나 프로젝트 기획 배경에 대해 들어보았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은진) 저는 원래 영상 작업을 해오던 사람은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원래 전공은 실내건축인데 이전에 영화제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영화 작업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작년에는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했구요. 최근에는 다큐멘터리를 관심 있게 보다가 박소현 감독님도 알게 된 거죠.
소현) 저는 주로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여성이나 10대 청소년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최근에는 <야근 대신 뜨개질>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그 작품으로 은진 님과 인연이 되어서 함께 하게 됐어요.
<엄마의 역사> 프로젝트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은진) 제가 참여하고 있는 페미니즘 스터디 모임이 있어요.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그중 한 분이 ‘엄마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어요. 저도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라고 계속 되묻게 됐어요. 직장인인 제가 당장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 내려놓고 엄마와 새로운 걸 시작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다만, 그보다 먼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선행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구요.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떠오르지도 않고. 그게 엄마의 자존감을 위한 명확한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먼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그다음에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겠다 싶었죠. ‘그러면 내가 영상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까, 영상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나의 엄마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죠.
소현) 영화 때문에 은진 님을 알게 되고, 함께 이야기할 자리들이 생겼는데 ‘이런 거를 좀 해보고 싶은데 조언이 필요하다,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구요. 그게 ‘엄마의 역사’라는 프로젝트였어요.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엄마가 3년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야기 나눌 수는 없지만, 예전에 엄마에게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있죠. 엄마가 투병을 오래 하셔서, 간병을 위해 붙어있던 맏딸한테만 하셨던 이야기들이었는데, 한 번도 기록을 한 적은 없었죠. 그것들을 그냥 사라져버리게 한 게 후회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런 제안이 왔을 때,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다른 방식으로나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들을 한 번 들여다보는 게 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풀지 못한 매듭처럼 남아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풀어야 저라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은진 님과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사실 저에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죠.
엄마들의 인터뷰를 할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있나요?
은진) 소현 님과 처음 기획 방향을 얘기할 때 나왔던 게, 이야기의 확장이었어요. 사실 엄마의 이야기라는 건 한 개인의 이야기이잖아요. 근데 ‘엄마들은 왜 이럴까?’ ‘엄마들은 이런 삶을 살았네’ 혹은 ‘엄마들은 왜 대부분 희생하지?’ 같은 엄마들의 공통점들이 보이는 거죠. 보통의 엄마들이 그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인 엄마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시대의 많은 엄마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들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시켜보고자 해요. 그러다 보니 너무 특수한 상황의 인물보다는, 저희가 생각하는 저희의 어머니 세대를 인터뷰 대상으로 잡았고요. 그 어머니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 당시에 어머니들의 직업은 뭐였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 같은 것들에 대해 좀 크게 이야기를 끌어가 보려고 하고 있어요.
소현) 그리고 중요한 게 ‘모성애’에 갇히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엄마라고 하는 단어 옆에 두면 어쩐지 좀 낯선 이야기들을 해보려는 거죠. ‘엄마의 습관’이라든지, ‘엄마의 화장’이라든지 ‘엄마의 배움’이라든지. 평소의 엄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 보일 법한 순간들,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춰가고 있어요.
지금까지 올라온 영상 중 3화까지는 은진 님 본인의 어머니 이야기잖아요. 직접 인터뷰를 해보니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은진) 사실 이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제가 가진 엄마에 대한 상과 실제 엄마의 모습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성인이 되면서 엄마의 인간적으로 부족한 모습도 보게 되잖아요. ‘엄마 왜 저러실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엄마는 어릴 적 내가 알던 유능한 엄마이기 보다는 부족함을 가진 어떤 존재가 되어 갔던 것 같아요. 저희 엄마는 직장도 다니시면서 아빠가 하시는 과수원 일을 도우시는데, 제가 보기에 집안에서의 엄마는 엄마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 소극적이시고, 뒤로 물러나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제가 알던 엄마의 삶이라고 생각했죠, 최근까지. 근데 알고 보니 엄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더라구요. 엄마가 엄마의 입으로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했을 때, 오히려 나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 내가 엄마라는 사람을 그저 ‘나의 엄마’로만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거죠.
앞으로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도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섭외는 잘 되는 편인가요?
소현) 생각보다 어렵더라구요. 저도 저희 이모에게라도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이모한테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너무 좋아하셨어요. 프로젝트가 의미 있고 좋다고. 그런데 본인이 인터뷰하는 건 좀 그렇다고.(웃음) 이게 온라인에 올라가는 것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오는 불안감도 있었겠지만, 보통 많이들 하시는 말씀은 “나는 인터뷰를 할 만한 특별한 얘기가 없다”라는 거예요. 사회적 명성이나, 고난과 역경, 굴곡사 같은 말할 거리가 없다는 거죠. 그때 그래서 이모한테 그랬어요. “우리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고 싶은 거다”라고요.
보편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들을 담고 싶은 것일 텐데 말이죠. 사실 그런 삶도 저마다 들여다보면 각각의 역사인 거구요.
은진) 처음 1화가 올라가고 제 친구한테 영상 보여드리면서 어머니 설득 좀 해보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친구 어머니께서도 “아이구야 어머니 대단하시다. 근데 엄마는 그런 얘기 없어서 못 해”라고 하셨다는 거예요. 사실 첫 화에서 나온 이야기가 저희 엄마가 공장 들어가서 일하신 이야기였는데,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거든요. 근데 ‘나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라고 하셨을 때, 안타까웠죠. 우리가 특별하게 사는 삶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들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축소하고, 생략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어떤 사람이나 삶을 살 때 항상 훌륭하게만 살지 않잖아요.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때도 있고. 근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쳐내고, 쳐내고, 이거는 얘기할 거리가 아니야, 별 일도 아니었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씁쓸했어요. 어쨌든 생각보다 섭외가 어려운 게 지금 힘든 점이긴 하지만, 주변 반응은 좋은 편이에요.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소현) 엄마의 이야기라 그런지 감사하게도 많이들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아요. 특히 재미있는 건 영상을 보신 분들은 꼭 ‘우리 엄마는 말이야~’ 하면서 자기 경험을 말해주신다는 거예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요. 이런 반응과 현상이 흥미로워요.
딸들이 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은진)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 주변의 여성, 딸 입장인 여성하고도 얘길 많이 하거든요. 한 번은 어떤 분이 본인의 엄마가 자신을 칭찬할 때 “우리 딸 되게 당당해 보여. 우리 딸 되게 멋있어.” 같이 보통 딸에게 많이 하는 수식어인 ‘예쁘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일하는 여성으로서 어필할 수 있는 형용사들을 많이 쓰신다는 거예요. 그런 얘기들을 듣다 보면 “ 아 그래? 우리 엄마도 이랬었어~” 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줄줄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수다’를 떨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려는 생각도 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수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잘 정리해서 남겨보아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요.
소현) 보통 남성분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자기에게 뭔가를 해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게 엄마는 마치 ‘신화’처럼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은 자신이 임신이나 출산처럼 몸으로 겪어내는 경험을 하고 나면, 엄마도 이런 것들을 겪어냈겠구나 하면서 동일시가 돼요. 그러면서 엄마가 객관적으로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 어떤 존재로 새롭게 인식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눠보고 기록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확장해나갈 수도 있겠네요. 지금 4화까지 발행되었는데, 이어서 소개될 이야기는 어떤 게 있나요?
은진) 누군가의 엄마이자, 급식 노동자로 사셨던 분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어요.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분이에요. 어느 날 제 지인이 저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이 있다면서 소개를 해줬는데, 페미니즘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시는 초등학교 교사였어요. 그때만 해도 그분의 엄마에 관한 얘기도 몰랐고, 인터뷰하려고 만난 것도 아니었죠.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의 어머니가 급식 노동자였고, 최근에 한 정치인의 잘못된 발언으로 인해서 엄마의 자존감과 사회적 지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하더라구요.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나의 어머니는 급식 노동자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엄마의 역사> 프로젝트에 딱 적합하겠다 싶었죠. 사실 그동안 여성들이 주로 해왔던 가사 노동에 대해 “밥이나 하는 여자들”처럼 표현되는 게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거든요. 직접 그 당사자로 계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정중하게 인터뷰 요청을 드렸죠.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 흔쾌히 수락하셔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이야기가 다음 달부터 업로드될 예정이에요.
두 분은 앞으로 <엄마의 역사>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은진) 사실 이걸 가지고 어떤 거대한 교훈이라거나 캠페인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일차적으로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 인터뷰를 보고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지?’하는 궁금증이 생기면 좋겠다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최근에 소현 님과 이런 얘길 했어요. 진짜 엄마뿐만 아니라 그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다는 거죠. 남자와 결혼해서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사람 말고, 어떻게 보면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비혼의 여성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거예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고, 좀 다르게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요.
소현) 특별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바로 ‘엄마’의 이야기일 수 있죠. 그런 것들이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 엄마의 이야기부터 기록되는 것 자체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자기 주변부터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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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멋진 일을 만나다]는 서울시NPO지원센터의 2017시민공익활동지원사업 ‘미트쉐어’에 선정된 프로젝트 기획자들과의 인터뷰를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미트쉐어는 긍정적 사회변화를 만드는 ‘작지만 멋진 일’을 응원하고 지원합니다. meetshare.kr
인터뷰어 이혜민은 출판사 겸 기획사 ‘900km’의 에디터이자, 대표입니다. 누군가의 작은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우리 삶의 대안적인 방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쓰고 펴냈습니다. facebook.com/90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