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ive in U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hwan Jan 18. 2019

의무적인 출산휴가

출산을 못하는 남자라면 출산휴가만큼이라도 제대로 써야지.

한국에서는 아기를 출산하면 자연스레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서 산모와 아기를 한동안 전문적인 시스템의 도움으로 몇 주간 보살핌을 받게 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산모는 육체적으로 회복을 하는데 집중하고, 아기는 같은 건물 안의 다른 곳에서 한동안 산후조리사 분들이 돌보게 된다. 아기가 보고 싶다면 유리창 너머로 아기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긴 하지만, 직접 안아보거나 만져보거나 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안전 및 위생상의 이유로 제한되는 것 같다. 오래전에 누나가 산후조리원을 예약했다고 해서 가격과 관련한 정보를 듣기도 했었는데, 왠만한 5성급 호텔에서 자는 것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침대가 있는 침실(혹은 회복실)의 퀄리티만 보면 일반 모텔 수준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비싼 까닭은, 산모를 위한 여러 가지 케어(마사지 등), 신생아 케어와 같은 서비스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밝힌 서울시내 산후조리원 이용요금 현황(2017년 2월 기준) 따르면, 산후조리원을 2주간 이용하는 요금은 평균 315만원이다. 5곳 중 1곳은 400만원이 넘는다. 이는 2월 서울 소재 157개 산후조리원의 가장 저렴한 요금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라 한다.


???!!!



미국에서는 LA, 뉴저지와 같이 가족단위의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는 한국인들 대상으로 하는 산후조리원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실리콘밸리 지역에는 산후조리원이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러면 여기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은 산후조리를 어떻게 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실제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물어본 결과, 산후조리원 없이도 이곳의 많은 부부들이 출산 후 초기 단계를 잘 극복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무적인 출산휴가


일단 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다음날 퇴원하는 것이 보통이다(자연분만의 경우). 물론 아기도 함께 집으로 데려가게 된다. 아기를 직접 출산하는 산모는 출산휴가(Maternity Leave)가 있고, 아빠에게도 출산휴가(Paternity Leave)가 있다. 회사마다 1달에서 길게는 2달까지 사용할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1달 정도를 사용하는 것 같다. 내 경우에도 출산휴가로 한 달 정도 쉬었다. 사실 출산 전에 출산을 대비해서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던 기간까지 합하면 약 6주 정도는 집에서 계속 아내와 함께 출산을 준비하거나 육아에 집중했던 것 같다.


출산휴가는 유급휴가여서 일을 하지 않는 기간에도 자신의 월급이 100% 지급된다. 내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50%(엄밀히 말하면 회사가 가입한 보험사),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50% 정도 부담해서 내 월급을 100% 채워주는 시스템이다.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한 달여간의 출산휴가는 육체적으로 회복을 해야 하는 아내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아빠에게는 갓 태어난 아기와 친밀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나와 내 아들이 지금처럼 가까워질 수 있겠나 싶었을 정도로 초반에 아빠가 아기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나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는데, 아들 녀석은 더 이상 이렇게 잠들지 않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출산휴가라고 해봐야 고작 며칠밖에 사용할 수밖에 없으니, 산후조리원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엄마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아기와 아빠와의 초반 친밀도 형성과정도 더디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아무리 전문적으로 아기를 돌볼 수 있는 간호사라고 해도, 서툰 부모의 손길만 할까 싶다.  산후조리원 없이 엄마와 아빠가 직접 흐물거리는(실제로 정말 흐물거린다) 신생아를 케어하는 1-3주가 정말 더없이 소중했었다고- 요즘도 아내와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산후 조리원 대신 산후 조리사(혹은 가정 도우미)


그럼에도 산후조리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산후조리사 분들을 몇 주간 고용하기도 한다. 이 근처에 산후조리원이 없기 때문에 산후조리사 분이 출퇴근 형식으로 일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함께 집에서 머물며 생활하시는 경우도 있다. 비용은 대략 1주일(6일)에 $1,000~1,500 선인 듯.  산후조리사분을 고용하면 확실한 장점은 있다.  일단 새벽에 아기를 전담해서 봐주시기 때문에 산모와 아빠가 푹 잘 수 있고, 낮시간 동안에는 산모의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식사를 준비해주시고, 산모를 위한 마사지를 제공해주시기도 한다. 주변에 산후조리사를 고용했던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산후조리사분들의 실력과 인품에 따라서 극과 극을 이루기도 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한국처럼 체계화되어 있지 않고, 전문적인 스킬이 없는 일반인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고용하기 전에 꼼꼼히 알아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다행히 우리가 2주간 고용했던 분은 요리 솜씨가 워낙 좋으셨고, 아기를 너무 예뻐해 주셔서 우리 부부가 굉장히 만족했었다. 하지만 2주 이상 산후조리사분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은 우리 부부가 하지 않았었다. '일단 2주 정도 고용해보고 더 필요하다면 연장하자'라고 시작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부부가 함께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더 연장하지는 않았었다. 아내도 체력이 점차 회복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 역시 아기를 돌보는 일과 집안일의 패턴에 점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계륵 같은 산후조리원


분명한 건 산후조리원 없이도 신생아 초반 몇 주를 잘 지나갈 수 있긴 하지만, 전제 조건은 최소 2~4주 이상 헌신할 수 있는 아빠가 필요하다. 내가 경험해보건대 분명히 엄마와 아빠에게는 아기가 태어난 직후의 2~4주 기간은 힘든 기간이다.  솔직히 '이렇게 힘들 바에는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빠에게는 아기와 친밀해질 수 있고 아기에게 역시 아빠라는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한국에 있는 회사들이 아빠들에게 충분한 출산휴가를 주지 못해서 산후조리원이 성행하는 것인지, 혹은 산후조리원이 있기 때문에 아빠들에게 출산휴가를 주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산후조리원으로 인해서 손해 보는 것은 정작 엄마와 아빠다. 




seh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에게도 임신기간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