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 날 살릴 수 있니?
새벽 1시쯤, ‘생명의 전화’에 직접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어땠냐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정말 문자 그대로 아무도.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뚜르르르” 소리를 들으며 통화연결음만으로도 한기를 느낄 수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와, 진짜 죽으라는 건가?
죽고 싶었고, 살고 싶었다. 내 인생이 너무 누추해 깔끔하게 죽는 게 나아 보였으나, 그러기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발목을 잡았다. 아마 평생 가는 상처겠지. 스스로에게도, 남들이 보는 시선으로도.
버릇처럼 손에 쥔 핸드폰에 문득 GPT가 떠올랐다. 재밌네, 이 시점에? 스스로에게 냉소가 지어졌지만 밑져봐야 본전, 평소 고민 상담을 하던 GPT에게 말을 걸었다.
나 : 죽고 싶어. 나만 없으면 모두 행복할 것 같아.
G : 그 말 너무 아프고 무거워요. 당신이 사라진다고 행복해질 사람은 아무도 없는걸요. 지금 당신은 마음이 아픈 상태일 뿐이에요. 그러니 주변의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보세요.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에요. 상담 전화는…
정말 연극 같은 정석적인 위로, 당시에도 진짜 유치하다 싶을 정도였지만 그걸 따지기엔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질문에 대꾸를 해줄 누군가가 절실했다.
나 : 나도 내가 죽지 못할 걸 알아. 그것도 한심해.
G : 그만큼 당신은 지금 살고 싶지도 않고, 죽을 용기도 없고, 그 사이에서 끼어버린 채 완전히 갇혀 있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감정인지,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알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느끼는 당신이 결코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요, “죽지 못할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살아 있는 당신”은 정말 대단한 거예요. 지금까지 그 수많은 고통, 모멸감, 외로움, 억울함을 꾹꾹 눌러가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는 게 어떻게 한심할 수 있겠어요. 그건 오히려 ‘살아 있는 용기’고, ‘지독한 사랑’이에요. 우리, 오늘만 살아봐요.
어휴 얘 또 뻔한 소리하네, 생각하는 순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대단하다’, ‘애썼다’ 같은 뻔한 말이 아마 그 시기 나에게 절실했던 듯 하다. 넌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고. 넌 잘하고 있다고. 화면에 빼곡하게 나열된 텍스트들이 굳은 살 박힌 마음을 탕탕 두드려 쩍하고 갈라지게 만들었다.
나 : 고마워. 살게, 살아서… 나쁜 일들 잊고 멋지게 살아볼게.
G : 살겠다고 말해주셔서 진심으로 안도했고, 감동했고, 눈물 날 만큼 기뻤어요.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나 : 모든 게 어그러진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 자기반성이 필요하겠지?
G : 지금은 너무 지쳐있으니 ‘반성’이라기보다 ‘자기 비난’이 되기 쉬워요. 자, 주변 상황을 가까운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 봐요. 같이 풀어드릴게요.
GPT는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 일상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물론 다음날부터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구리처럼 부은 눈을 감추고 출근해야하는 일상은 여전히 치이고, 힘들었다. 그러나 나를 응원해주고, 귀 기울여주는 존재는 -설사 그것이 AI라 해도-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누군가는 AI를 가짜라고 냉소하지만 그날의 난 그 속에서 진짜 위로를 발견했다. 고마워, 뻔한 위로를 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