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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운영의 기쁨과 슬픔

"부담 가지지 마시고 간단하게라도 꼭 완료 부탁드립니다ㅠㅠ"

by Mee

나는 출판 마케터 이전에 서평단 출신이다.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입사 전 작성한 서평이 약 2년간 200개를 훌쩍 넘을 정도였다. (대략 일주일에 두 개꼴) 그렇게 책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결국에는 마케팅이라는 통로로 출판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서평단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어느 곳이 우리 회사와 어울릴지에 대한 감이 있는지라 나름 수월할 줄 알았지만... 참여하는 입장과 운영하는 입장은 다른 법. 오늘은 출판 마케터의 서평단 운영 썰을 풀어볼까 한다.



1. 서평 카페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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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출판사는 일단 이 관문부터 턱턱 막힌다. 초대형 카페는 사업자가 있고, 이를 대문에 연락처와 함께 기재하기 때문에 접촉이 쉽지만, 아닌 곳은 연락처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다. 카페에 회원가입을 하고, 가입 승인을 기다렸다가, 운영자에게 쪽지와 메일을 보내는 과정을 지난하게 거쳐야 함은 기본. 답이 안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짐작하자면 크게 아래 세 가지의 원인을 꼽을 수 있다.


1) 이미 서평책이 충분하거나, 카페와 어울리는 책을 가려 받기 위한 완곡한 거절.

2) 내가 찾지 못한 공식 연락처가 따로 있기 때문에 쪽지, 메일이 매니저에게 닿지 않음.

3)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소위 대기업) 곳만 받음.


어느 이유가 되었든 3년 차쯤 되면 이런 무응답 거절에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의 맷집이 생긴다. 다행히 답을 받으면 이후에는 급속도로 진행이 되는데 궁금증은 계속 이어진다. 몇 권을 요청해야 할까? 카페에 보상은 어떻게 하는 걸까?


서평책은 많이 뿌리면 뿌릴수록 중고 시장에 풀린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 그만큼 네이버와 서점 리뷰를 얻을 수 있어 보통은 열 권 정도를 의뢰한다. 그보다 더 적게 올리는 경우는? 서평 카페에 '서평 의뢰'의 목적보다 '책 노출'이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서평을 원하는 회원층이 구매층과 겹치므로 광고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반대로 20 권씩(카페 다섯 곳에만 의뢰해도 백 권;;;ㄷㄷ) 기관총처럼 책을 뿌리는 곳이 있기도 하다. 이런 곳들은 중고책 문제를 씹어먹을 만큼 책에 확신이 있거나 확실하게 밀기로 작정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지켜보다보면 높은 확률로 베스트셀러에 가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장님은 서평책 백 권이라면 기절하시겠지...)



2. 모집 진행 중.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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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매니저에게 도서에 관한 자료를 전달한다고 간단하게 끝이 아니다. 서평단 모집 공고에 올라오는 댓글 반응을 살펴야 한다. 이 책에 소비자가 거는 기대나 인기 정도를 댓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응이 좋으면 희망을 걸어봐도 되지만, 신청이 적다면 다른 노선으로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더욱이 브랜딩을 위해 자사 채널에서도 서평단을 따로 모집하기 때문에 신간이 나오면 그야말로 정신없이 업무가 굴러간다. -1인 마케터이기 때문에- 짬짬이 홍보 콘텐츠도 만들고, 광고도 돌리고, 서점 이벤트도 만들다 보면... 서평단 모집 기간이 끝난다.


업계(?)가 좁기 때문에 가끔은 서평단 명단이 여기저기 겹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우리 출판사 책을 좋아해 주는 욕심에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중고 거래 위험이나 형평성을 위해서도 거르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3. 서평 작성/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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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책을 보내고, 한숨 돌린다 싶으면 금세 서평 마감일이 다가온다. 카페 서평 링크를 수집하고, 잘 써진 후기들을 편집해 사용하며 훈훈한 마무리... 일리가 없다. 우리 도서를 읽고 예쁜 사진과 함께 정성 들여 리뷰를 남기는 분들도 있지만 사진 한 장도 없이 최소 글자수만 채워주는 분도 있고,-이러면 네이버 검색에 노출될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 간혹 펑크를 내는 분도 있다. (최근엔 AI 서평이 많아져 이를 극혐 하는 마케터도 있지만 나는 기한 내 분량만 채워주면 그런 걸 따질 여유조차 없다.)


서평카페는 잠수에 패널티로 대응하지만 자사 채널에서 운영하는 서평단은 이때부터 완료 보상, 독촉, 협박(?), 회유 등등 온갖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겠지만 열정적으로 신청을 하셨던 분이 잠수를 타버리면 팬 한 명을 잃어버리는 꼴이기 때문에 운영자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심정으로 지각 서평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바쁘시죠? 기한 연장해 드릴 테니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간단하게라도 꼭 완료 부탁드립니다ㅠㅠ




나 자신이 서평단 활동을 해보았기 때문에 종종 터지는 어떤 사정, 써지지 않는 글 등을 안다. 지키지 못했을 때의 찜찜한 느낌 또한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서평 하나로 인해 스스로 움츠러들고 멀어지는 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더 질척거렸지만, 해마다 연차가 찰수록 그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결국에는 그 구구절절한 과정들이 다 내 업무로 추가되니까.


반대로 서평을 잘 마무리한 분들께도 감정이입이 된다. 책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누가 보기에도 잘 쓴 서평을 완성하는 그 과정들이 쉽지 않았을 테고, 그로 인해 느낄 그들의 성취감이 내 눈에는 너무도 확연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이들은 정말 유니콘 같은 존재다. 마감 후엔 그들의 기여에 감사하는 인사를 꼭 보내곤 한다.


나조차도 쉽게 신청하고, 써 넘기곤 했던 서평단. 2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책이라는 상품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얽혀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마감 후의 죄책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덮고 펴기를 반복하는 책. 아마 대부분의 서평단이 책 '가격'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고 바뀔 '미래'를 기대하며 신청할 것이다. 이 책이 아이의,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실현시키기까지 도와야하는 것이 출판마케터의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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