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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22. 2016

<부산행>, 결국은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내맘대로 리뷰 #22

※ 가급적 배제하고자 했으나, 영화의 내용과 정보가 담겨있는 스포일링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꼭 참고해주세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사회는 어떠한가? 

이 영화를 보며 곱씹게 됐다. 이기심과 질투가 팽배하고 곳곳에서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난무하여 폭동과 시위, 집회가 일어나는 처절함과 암담함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안타깝지만, 결국은 모순된 디스토피아 세상 속에서 공존하며 사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20일 베일을 벗었다. 공식 개봉일을 앞두고 짧은 기간 동안 유료시사를 진행했고 페이스북과 같은 SNS마다 영화에 대한 후기들이 올라왔다. 이후 스포일링 수위에 대한 문제로 설왕설래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일인 20일, 무려 140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고 어제(21일) 기준으로는 210만 명이 찾았다. 경부선 KTX 열차와 역사에서 벌어지는 좀비와의 사투 그리고 안전지대를 찾는 사람들. 제작비는 85억 원이 들었고 마케팅 비용으로는 약 30억 원이 쓰였다. 손익분기점이 대략 340만 명이니 현재 추이만 봐도 손익분기점 자체가 의미 없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무슨 서양 좀비떼를...'

좀비(Zombie)라 하면, '살아있는 시체'를 말하는데 부두교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있다. 인간에게서 영혼이 빠져나와 살아 움직이는 시체 형태로 마치 각기춤을 추는 듯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아 몰려다닌다. 사람이 보이면 달려든다. 그리곤 그들의 신체부위를 물어뜯어 좀비로 감염시킨다. 

미국의 조지 로메로 감독이 좀비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68년 제작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좀비물의 교과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로 헐리우드에서는 수많은 좀비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새벽의 저주> 역시 조지 로메로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꽤 입소문을 탔다.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좀비와의 싸움은 흥미진진했다. 미드로 유명한 <워킹데드> 역시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좀비 장르의 드라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보지 못했던 장르가 좀비물인데 그간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던 연상호 감독이 첫 실사 영화로 좀비물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론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등을 인상 깊게 본터라 <부산행>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남달랐다. 



<부산행> 열차에 올라탄 인간과 좀비 

펀드매니저인 석우(공유)는 딸 수안(김수안)과 함께 엄마를 만나러 부산행 KTX에 오른다. 마침 기차에 올라탄 정체불명의 소녀. 승무원을 물어뜯으며 서서히 위기가 닥친다. 그들이 타고 있는 KTX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나마 안전할 줄 알았던 대전역까지 위기에 놓이자 KTX는 다시 부산을 향해 출발한다. 겨우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좀비의 습격을 피해 계속해서 앞칸으로 이동한다. 그 어딘가에 있을 '안전지대'를 찾아 열차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린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긴장감은 에어컨의 차가운 공기가 가득 찬 극장 안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영화 속에서 좀비떼를 보긴 했지만 피를 토하며 서서히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은 다소 섬뜩했다. 맨 뒷칸에서 엔진이 있는 앞칸까지 일렬로 길게 늘어선 KTX 열차는 좀비떼의 습격을 쉽게 피할 수 없도록 제한된 공간으로 설정되었다. 위험 지역을 벗어나 피해가 없다고 알려져있는 부산을 향해 가는 동안에는 누구 하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KTX에 타고 있는 등장인물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이 우선이야. 알았지?" 

딸에게 이야기하는 석우. 석우는 자신의 안위만 바라보는 다소 이기적이고 무뚝뚝한 사람이다. 딸의 생일도 어영부영 선물로 때우는 무심한 아빠이자 남편 그리고 아들이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흐르면 흐를수록 변해가는 석우의 모습 역시 인상 깊다. 반면 딸 수안은 아직은 엄마의 품이 그리운 어린 아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오히려 철이 없는 아빠보다도 더 성숙한 듯 보인다.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는 상화(마동석). 상화는 거친 남자지만 아내에겐 한없이 따뜻한 인물이다. 외형으로나 내면에서 비치는 모습을 보며 '내 여자와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들었다.  맨 앞에서 좀비떼와 싸우는 그의 모습을 보니 든든함 마저 느껴졌다.



부산행 KTX에 올라탄 사람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역시 용석(김의성)이다. 

"이봐 기관사! 빨리 출발 안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지!!"

나 하나 목숨 부지하고자 불구덩이에 남의 등을 떠미는 가장 밉상인 캐릭터.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버스 회사의 임원으로 부산으로 가는 KTX의 특실에 올라탔다. 전국을 강타한 재난 속에서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본능적인 말을 내뱉고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이성을 지배한 전형적인 케이스이자 혹자가 말하듯 지나치게 도식화된 캐릭터일 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으로 바라보면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일 수 있겠다. 


결국은 인간의 본능과 사회에 대한 깨우침

이러한 재난을 직접 목격하고 내가 처한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나는 과연 어땠을까?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란 꽤 어려운 일 같다.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나를 쫓아오는 좀비떼를 피해 살아남는 것 자체가 희박한 극한의 상황 설정은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대변한다. 

좀비떼를 뚫고 앞칸으로 이동하는 석우와 상화 그리고 영국(최우식)은 좀비의 습성을 보며 기지(機智)를 발휘한다. 화장실 칸에서 고립된 사람들을 구해 다시 앞칸으로 이동했지만 기존에 있었던 앞칸 사람들은 이들을 의심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워"

좀비떼가 뒤에서 우글거리고 있음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말하는 진희(안소희)의 대사가 귀에 꽂힌다.

아직은 멀쩡한 사람들임에도 기존의 앞칸 사람들은 긴 터널을 지나온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과 불안의 눈초리를 보낸다. 피할 길이 없다. 이 곳에서 기인하는 공포와 불안은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둘로 나뉘게 한다. 우리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도, 기침 한 번에 타인으로부터 의심과 불안의 시선이 비수처럼 꽂힌다. 인간이 가진 이기심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데서 나타나지만 영화 속 재난과 같이 극한의 상황이라면 수면 위로 오롯이 드러난다.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의 캐릭터는 분명히 밉상이다. 용석과 함께 손가락질하며 또 다른 칸으로 내쫓는 타인들의 모습 속에서 사회의 암울한 단면과 배려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니 굳이 용석이라는 캐릭터만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는 좀비물과 고속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을 적절하게 믹스해 속도감과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굳이 각 캐릭터의 속사연이나 좀비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연출되었다. 하지만 아빠인 석우와 딸 수안의 관계, 즉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신파로 엮는 부분에 대해선 갸우뚱하게 된다. 더구나 영화 초반 시퀀스에 등장했던 좀비의 섬뜩함이 점차 사라지는 듯 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소희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들이 많은 편이긴 하나 구태여 언급하진 않겠다. 

무엇보다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는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로 거듭났다. '마요미', '마블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영화를 본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그리고 국내에 처음 안착한 좀비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성공적이라 말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모두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플롯들로 제작되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 <부산행>은 '연상호 브랜드' 다운 영화다. <부산행>의 프리퀄인 <서울역> 역시 나름 기대가 된다.



영화를 본 후, 제 느낌대로 써내려간 리뷰였습니다. 

어제(21일) JTBC 뉴스룸에서 공유가 등장해 인터뷰 시간을 가졌었죠. 좀비 연기를 한 사람들은 누구냐는 말에 "모두 저와 똑같은 배우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비보이를 하거나 무용을 하는 사람들도 섞여있다고 하더군요. 밥을 먹거나 사진을 찍을 때 좀비 분장을 하고 있어 무서웠다고 언급한만큼 본 적도 없는 좀비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좀비'라고 언급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감염자'이거나 '괴물', '괴생명체'였을 뿐.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호불호'가 있습니다. 더구나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낄 수 있는 '시각의 차이' 역시 존재하게 마련이죠. 꼭 감안해주시길 바라며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가급적 배제하고자 했으나, 영화의 내용과 정보가 담겨있는 스포일링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꼭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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