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테이블 위에 다시 386 컴퓨터가 놓여 있고, 유자가 들여다본다.
강사가 앞에서 설명한다.
강사
인터넷 서비스로는 여러 종류가 있답니다. 이메일이 있고, ftp, 유스넷(usenet), 고퍼(gopher)가 있고…….
유자
선생님, 인터넷이 정말로 미국 국방부에서 만들어졌어요?
강사
군대는 치열한 전략 싸움이 이뤄지는 곳이라 첨단 기술의 각축장이죠.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은 미국과 소련의 정보망 주도권 다툼 중에 육성된 거라고도 할 수 있죠. 아무튼, 인터넷 서비스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바로 월드와이드웹인데요.
유자
월드와이드웹은 유럽의 핵물리학자들이 개발한 거라면서요?
강사
팀 버너스 리가 학문적 견해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고민해 기존에 있던 하이퍼텍스트 개념에 착안해 발전시켰다고 해요. 자, 어쨌든 우리는 그 인터넷의 맛이라도 보기 위해,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에 일단 연결을 시켜야 해요.
유자
어떻게요?
강사
전화선으로요. 모뎀으로요.
유자
PC통신처럼요? 그럼 PC통신처럼 모뎀 쓸 때는 전화를 하면 안 되겠네요. 아, 어차피 PC통신을 거쳐서 해야 하죠?
강사
여기는 케이블망이 깔려 있어서 PC통신 안 거치고 바로 접속할 수 있어요. 거기 접속 버튼을 클릭해 볼까요?
유자,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클릭하면,
띠리리! 띠리리리리리! 찢어지는 듯한 모뎀 소리.
유자
(소리 끝나고 잠시 뒤) 선생님, 계속 아무것도 안 뜨는데요?
강사
조금만 기다려 봐요. 그러면 넷스케이프 로고가 나올 거예요.
유자
넷스케이프? 브라우저 말이죠?
강사
네. 20대 대학생인 마크 안드리슨이 차린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 말이죠.
유자
그런데 선생님, 모뎀을 쓸 때 전화를 못 하는 건 정말 불편해요.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할 때가 있을 텐데. 엄마도 싫어 하시구요.
강사
인생은 선택이에요. 더 중요한 걸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유자
어? 선생님! 여기! 떠요! 떠!
유자가 경이로운 표정을 지으면, 화면에 넷스케이프 브라우저의 로고가 뜬다.
별이 빛나는 인디고 하늘을 배경으로 배 한 척 있고, 중앙에 당당하게 로고로 ‘N’ 자가 박혀 있다.
유자
넷스케이프가 작동했어! 이제 인터넷이 연결된 거죠?
강사
정말 멋지죠? 전화 정도는 희생할 가치가 있어요. 사실 수많은 통화 중에 엄청난 통화가 얼마나 되겠어요? 대부분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잡담 나부랭이로 채워져 있죠. 사람들은 그걸 오가는 정이라고는 하지만, 흠, 글쎄요.
유자
(덜덜 떨리는 손)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되죠?
강사
주소를 입력해야죠. 인터넷 주소가 URL이란 것도 배웠죠? 자, 여기, 이 창에, 아니, 거기 말고, 여기에 입력해야죠. 더블유더블유더블유, 더블유를 3번 적고, 그리고…….
유자(Na)
난 인터넷의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곳에서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어요. 듣도 보도 못 한 신세계! 광대무변한 정보의 바다! 초신성 같은 사이트들이 생겨났어요. 야후, 와이어드, 살롱닷컴, 언펄드, 심마니,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모든 게 새롭고 좋았고. 나는 온갖 자유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죠. 도대체 이 세계는 어디까지 뻗어가면서 인류를 이끌게 될까요?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 아니, 아시아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습니다.
넷스케이프 로고 화면이 사라지고, ‘IMF’가 커다랗게 화면을 차지하더니,
급격히 암전.
무대가 계속 어두운 가운데, 앵커의 멘트가 울린다.
앵커(E)
정부가 사실상 국가 부도를 인정한 셈입니다……. IMF의 요구에 따라 긴축정책을 펴면서 국민들의 생활은 버거워졌습니다. 금융산업 구조조정 압박에 대기업과 은행이 잇따라 공중분해 됐습니다…….
불이 들어오면 유자가 정장을 갖춰 입고 긴장한 채 앉아 있다.
유자
네. 저는 인터넷정보검색사 자격증도 있고요. HTML도 기본적인 건 알아요. 네? 아, 프로그래밍은 잘 못 해요. 문과라서. 그래도 포토샵이랑 코렐 드로를 할 줄 알아요. 네? 아,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자, 객석으로 돌아앉는다.
유자(Na)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내 또래 중에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 비율이 절반이 넘을 때, HTML을 조금 안다는 건 무기였거든요. 검색 엔진에 등록된 사이트들을 분류하는 일을 했어요. 그래요. 이때는 웹사이트 자체가 많지 않아서 사람들이 일일이 사이트를 방문해서 분류했어요. 이건 연예 사이트야, 이건 정치 사이트야, 이렇게. 그러면서 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배우고 사이트를 기획하기도 했어요.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유자. 이제 손이 빠르다.
계속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유자. 진지하다.
유자가 열심히 작업하는 동안, 광수가 들어와서 흥미롭게 본다.
유자
(두 팔 뻗으며) 다 됐다!
광수
뭐야?
유자
(놀라서) 아, 우리 동아리 웹사이트 만들었어.
광수
웹사이트? 그게 뭔데?
유자
그러니까, 인터넷이란 세상의 우리 집 같은 거야. (쑥스럽다.) 우리 집…….
광수
(어깨 너머로 보면서)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유자, 너 진짜 대단하다. 난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데.
유자
(뿌듯해서 싱글벙글하다가) 아참, 광수 너, 이메일 있어?
광수
이메일? 그건 또 뭐야?
유자
전자우편. 일렉트로닉 메일의 줄임말이야. 하나 만들어 줄까? 다음이란 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공짜로 해줘.
광수
됐어. 내가 쓸 일이 있겠어?
유자
앞으로 이메일이 있으면 좋은데. 빨리 신청하면 아이디도 쉬운 걸로 할 수 있어.
광수
아냐. 나한테는 휴대폰이 있는데 뭐.
광수, 휴대폰을 꺼내 든다. 거의 무전기처럼 크고 투박하다.
광수
여보세요? 어, 영미니? 우리, 어디서 보기로 했지? 응. 알았어. (나간다.)
유자(Na)
인터넷도 웹사이트 정도로는 부족해요? 아, 도대체 나의 지성을 어디까지 갈고 닦아야 광수는 내게 감탄하게 될까요? 아니, 사실 광수와 나 사이에 지성미는 소용이 없는 걸까요? 내가 고민만 하는 사이에 광수는 군대로 가고, 나는 정말 사회인이 됐어요. (나간다.)
사회인이 된 유자의 앞길은, 과연 꽃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