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방학 #16
“제발 말씀해 주세요. 나비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네가 앞으로 될 그 무엇이란다. 그것은 아름다운 두 날개로 날아다니고, 또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단다. 꽃의 달콤한 이슬을 마시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전해 주기도 하지.”
_ 꽃들에게 희망을 中
생각해보니 내가 결혼을 하나의 제도로 인식하게 된 처음은 아마 2011년이었던 듯하다. 그 시기에 청소년 대상 교육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교육 철학에 대한 글들을 접했고 그러다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내 사고방식의 기저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철학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그를 만난 이후 그 자리는 러셀에게 넘어갔다. 그의 책 중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이다. (이 책은 절판되었고, 추후 결혼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재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나는 그 책을 계기로 내가 자라면서 습득한 기독교적 성윤리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의 욕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결혼, 가족, 성윤리에 대한 불안감, 불편감, 의심스러움 등의 부정적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다음 해에 운영하던 멤버십 공간에서 OO 제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는 이라는 토론 모임을 개설하고, 교육, 종교, 결혼 등 다양한 제도를 주제로 수차례에 걸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소설 즐거운 나의 집 등의 매체들을 기반으로 이야기 나눈 결혼, 가족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방식의 다양성과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아주 재미난 토론이 되었다. 워크숍 룸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던지라 룸 밖에서 다른 멤버들이 안을 볼 수 도 있었고, 룸 안에서 밖을 볼 수 도 있었는데 그때밖에 있던 몇몇 멤버들로부터 ‘결혼을 안 하려고 저런 토론을 한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토론이, 그 후로도 종종 진행한 연애와 결혼, 관계에 대한 대화의 장들이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적당히 활용하며 사랑과 관계를 키워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듯하다.
남들이 내게 너는 못할 줄 알았다. 혹은 안 할 줄 알았다고 말한 결혼이란 걸 한지 어느덧 5년이 훌쩍 넘었다. 누군가는 ‘그게 뭐? 나이 차서 결혼하고, 시간이 흐르면 연차 쌓이고 그런 거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내가 대견스럽다. 남들이 너는 못할 줄 알았다는 그것을 해내서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 사람을 사랑하고 관계 맺고, 함께 성장하며 더 큰 사랑을 배워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특해서이다. 나의 10대, 20대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아주 독립심 강한 개인주의자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혼자서도 잘 살 것만 같다. 그리고 한동안 그걸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여전히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지, 나나 그가 혹여 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해서 이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 의구심이, 그것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실험 정신이, 나를 결혼방학으로 이끌었다.
아직 방학은 남았지만 한번 내보고자 마음먹은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의 마감은 코 앞으로 다가왔으니 아직까지의 소회를 말해 보자면, 방학은 자유의 달콤함보다 결핍을 통한 감사의 각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의미 있었다. 살아보나 정말 혼자서도 내가 그럭저럭 잘 살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함께 사는 게 더 재밌게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방학을 통해 그 고마움을 느껴야 더 잘 살 동력을 만들 수 있는 게 내 수준인 듯하다. 혼자 지내는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더 늦기 전에 나비가 되어 날아 볼 수 있을까?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그것을 내가 오래된 관계인 그와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해 낼 수 있을까? 두고 봐야 알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도전해 보면 알 일이다. 그 길을 향해 걸어 봐야겠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행동을 하기 위해선 그것을 생각을 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듣고, 보고, 경험한 만큼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내 경험을 기반 삼아 상호 만족스러운 결혼을 하려면, 결혼이 무덤이 아니라 성장기가 되려면, 결국 파트너와 함께 생각을 나누고 조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철학과 사유, 토론과 공유는 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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