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충남대 기계공학과에 다닌다. 1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와 복학하면서 경북대 편입 공부를 해보겠다고 했다. 조건이 비슷하다면 기숙사보다는 집에서 통학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에 흔쾌한 동의에 더해 수다스런 격려도 했다. 작년 12월부터 올 1월에 걸쳐 필기시험과 면접을 보고 후보군에 들었다가 최종 탈락 했다. 필기 치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괜찮다고 말하는 표정은 맥이 빠진 얼굴이었다. 이럴 땐 가만 두는 게 낫다. 아들의 성격을 감안해도 그렇고 내가 그리 다정한 말을 잘하는 성격이 못돼서도 그렇다.
무슨 일 때문에 집에 갔다가, 국 데워 혼자 점심을 차려 먹은 2월 어느 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 누가 있었다. 등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아빠, 하고 부르는 막내의 잠 묻은 목소리가 들렸다.
-집에 있었나? 밥은?
-내가 차려 먹을게, 방금 깨서 아직 생각 없다.
-어. 그래라.
-아빠, 할 얘기 있는데.
-어, 해라.
설거지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휴학하까 싶은데.
-그라람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막내는 찬물 한 잔 마시고 옆에 와서 두 손을 싱크대에 짚으며 말을 이었다.
-엄마는 시간낭비 하지 말라고 뭐라 하던데. 아빠는 하라 할 줄 알았다.
-뭐 하고 싶은 거 있나?
-아니, 딱히 계획은 없다.
-일 년 금방이데이. 어, 어, 하면 1년 후딱 간다.
-그냥... 쉬고 싶다. 지금까지 쉰 적이 없는 거 같아서.
초중고 12년에 바로 대학 입학. 그것도 대구와 멀리 떨어진 대전의 대학교. 2인 1실 기숙사 생활. 격주 또는 삼주에 한 번씩 대구 왕복.
막내는 지 형들에 비해 도드라지게 정이 많은 아이다. 마음도 여리고 배려심도 크다. 지나칠 만큼. 밥 먹을 때도 메뉴를 주장하는 법이 없다. 지 의견 몇 번 반복해서 물으면 그게 외려 불편하다고 말하는 아이다. 그런 애한테 낯선 사람과 둘이 쓰는 기숙사 좁은 방은 편한 쉼터가 아니었을 게다. 만성 비염 때문에 본의 아니게 훌쩍, 크윽 소리를 자주 내는 것도 제 딴엔 스트레스지 않았을까. 시험 칠 때도 옆자리 학생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도 몇 번이나 미안했다고 한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있다.
아이는 몰랐다고, 집이 작아져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고 말하지만, 초등학교 때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해 집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도 겪은 아이다. 설거지하다가 손을 멈추고 아이가 소파에 앉아 폰을 보고 있는 마루 쪽을 쳐다보았다. 명치가 시큰했다.
물기 남은 손을 바지에 슥슥 문지르며 마루로 가서 벗어뒀던 윗도리를 주섬 걸쳐 입었다.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것도 괜찮겠네. 아빠 지금 용학 도서관 갈 일 있는데, 같이 갈래?
-그라까.
세수도 하지 않고 모자만 푹 눌러쓴 막내와 집을 나섰다.
한낮의 동네 도서관은 조용하다. 나는 집에 들르는 김에 대책회의 독토 선정책을 빌릴 생각이었다. 책 추천을 해달라는 말에, 자기 계발서 한 권과 성장 소설 한 권은 콕 집어 권했고, 몇몇 책은 그중에서 고르라고 알려주기만 했다. 몇 권의 책을 손에 든 키 큰 이십 대 아들과 이제 늙은 테가 조금씩 나는 오십 대 아버지는 나란히 도서관 1층 커피숍 주문대에 섰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언뜻 생각나는 말을 했다.
-허송세월도 경험이데이.
-진짜?
-20십대 때 1년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더라. 갈팡질팡, 허둥지둥 아무 하는 일 없이 일 년 지나도 괜찮다. 지난 뒤에 막 후회라도 할 거 아이가. 그것도 경험이다. 시간을 흥청망청 낭비해 보는 거, 그러고 나서 죽도록 후회해 보는 거, 그런 것도 다 경험 아이가. 허송세월 뒤에 니 감정이 우째 요동치는지도 겪어봐야 안다. 별 타격 없을 때, 시간 많을 때 실컷 해보람.
-에이.. 그건 싫은데.. 하하
양손에 책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손에 쥔 부자는 낄낄 웃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막내는 돈이 필요했는지 늦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심심 헸나 보다 생각했다. 주 삼일 일하다가 어느 순간 풀타임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정직원이 됐다며 월급도 올라서 꽤 된다고 자랑하면서 돈 모아서 해외여행을 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상 손님 얘기, 알바 동기 얘기, 돈 벌기 어렵다는 얘기, 친절하다고 팁 받은 얘기를 자주 화제에 올렸다. 기특하다며 식당 이모들이 주는 빵이나 과자 같은 선물도 종종 받아 들고 왔다.
11월에 튀르키에로 떠났다. 홀로. 용감하네, 짜식. 스물한두 살 때의 내 첫 미국행이 생각났다. 혼자 게이트를 지나 비행기를 탔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얼마나 쫄았던지 없던 몸살기가 들었었다. 통역이나 지도를 기댈 휴대폰도 없을 때, 미국 공항에서 국내선 환승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겨울에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족 단톡방에 사진이 매일 올라왔다. 재밌다, 즐겁다, 신기하다, 멋지다, 친절한 한국 아줌마 아저씨 관광객들을 만났다, 오길 정말 잘했다는 짤막한 톡이 아침저녁으로 올라왔다.
우리 막내가 이제 정말 다 컸구나, 흐뭇하면서도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복학 준비를 한다고 가끔 방에 콕 박혀 공부란 걸 한다. 복학하기 싫다고 징징대기도 하면서. 엊그제 거실 소파에 털썩 앉으며 노트북이 어쩌고 저쩌고 불평을 하길래, 내 거 새로 사면서 하나 사줬다. 물론 두 개 다 알뜰하게 리퍼로.
이렇게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