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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은 필연이지만

오슐랭도 변한다

by 강지은

"오늘 여름이 숙주 먹었어요~"
"오늘 우동 먹었어요~ "
친구들의 제보로 오늘 먹은 것들을 가늠하기도 하고, 선생님이 신이 나서 새로운 거 먹거나 많이 먹은 날 말씀해주시기도 한다.
매일 식단에서 먹을 만한 반찬들을 메모해 가는데, 전혀 안 먹을 때도 있고 예상 못한 것을 먹을 때도 있다.

6살 때 특수교육청 세미나에서
7세 엄마가 아이가 다른 말은 제법 하는데, 유치원에서 점심 뭐 먹었니를 1년 동안 묻는데 대답을 안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우린 언제 저런 질문을 할만하기라도 할까 하며 살짝 시기 어린 언짢은 마음이 들었었다.

유치원 다니는 동안 점심 먹었어?라는 질문에도 한번 답한 적이 없는데,
요즘 "여름아, 오늘 뭐 먹었어?"라는 물음에 "밥, 김"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날은 "김, 밥, 미역줄기"라고 대답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먹은 거에 놀라고 대답에 놀라고ㅎㅎ 참 소박하다.
아직은 "김, 밥" 이 대부분이지만, 그날 먹은 것에 대한 대답이 적절하게 나오는 게 아직도 너무 신기하다.

여름이 6살 때까지는 외식이 정말 큰 어려움이었다.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아주 제한적이라서 메뉴선택도 한계가 있었고, 갑자기 식기소리 나 주변 아이들 울음소리에 멜트다운이 오는 경우가 있어 항상 초긴장모드였다. 밥을 먹어도 먹은 거 같지 않은 혼이 나가는 시간이 즐비했다. 되도록 다른 사람들 식사에 방해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울거나 소리 많이 내면 번갈아가면서 나가서 달래다 보니, 셋이 가서 혼자서 식사하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참 맛있고 비싼 간장게장 집이었는데, 여름이가 김은 먹으니 괜찮겠지 하고 갔다가 뭐에 신경이 거슬렸는지 울기 시작해서 결국 교대로 번개같이 먹고 돌아오는 길 어찌나 헛웃음이 나던지... 김포에서 신사까지 가서 먹는 시간보다 길바닥에서 여름이 안고 달랜 시간이 더 길다 싶으니 뭐 하려고 나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고, 그러다 보니 점점 외식을 안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밥도 흰밥만 먹던 시절이라 잡곡이나 검정쌀밥이 나오면 밥도 먹을 수가 없어, 몇 해 동안은 외식할 일이 있으면 도시락을 싸서 다녔었다.


6살 때까지는 유치원급식도 못 먹어서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7살부터는 잡곡을 먹어서 밥만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도시락을 싸지 않고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유치원선생님이 무던히도 노력하셔서 아주 가끔 새로운 음식을 먹기도 했었다. 올해 들어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한 메뉴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 같다.


일반적 편식과는 달리 오감이 다 예민한 여름이에게는 굶기거나 억지로 먹인다가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겨우 영양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 여름이의 식생활을 받아들였다.
성장하면서 경험이 쌓이고 불안도가 좀 낮아지고, 감각도 조금 무뎌지는지 이젠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다.
콩나물무침도 풀무원에 엄마가 해준 것만 먹던 아이가 이제 숙주무침을 먹는다. 치킨도 특정브랜드의 순살후라이드만 먹던 아이가 허니순살도 먹는다.


얼마 전 점심에 간 삼계탕집을 여름이 5살 때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준비해 간 김에 밥만 먹었더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닭고기도 잘 먹고, 숙주나물을 꽤나 많이 먹었다. 여전히 먹을 수 없는 게 훨씬 많지만, 이만하면 편식걱정은 덜었다.


우리 아이들 성장의 척도 중 편식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지적으로 불안의 감소, 감각적으로는 둔감화이니 그럴듯하다. 여러모로 좋은 시그널이라 마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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