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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친구들과 놀아요

by 강지은

여름이 친구가 텃밭수업하고 꽃을 따서 나에게 선물했다. 여름이한테도 나한테도 좋은 친구다.

아직은 말을 거의 안 하는 여름이 대신 사진과 이름 비교해 가며 16명의 반 친구 이름을 외우고, 만날 때마다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요즘은 한술 더 떠서 약간 1학년 스타일로 저 멀리서 "오여름이다, 안녕?" 하면, 나도 똑같이 하이톤으로 "ㅇㅇㅇ이다, 안녕?" 하면 인사한다. 그럼 살짝 우쭐해하는 친구들을 보면 또 그 모습이 귀여워 좀 더 오버하고ㅎㅎ 여름이도 그 사이 살짝 친구를 향해서 손 흔들고 인사해 주면 미션석세스.

여름이 반 친구들은 참 좋은데 젤 좋은 것 중 하나는
여름이가 인사를 받을 때까지 계속 인사를 해준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인사 소리에 혼란스럽던 여름이도, 두 손 꼭 잡고 인사할 때까지 흔드는 친구 손을 뿌리치지 않고 같이 인사하고, 잘 가라고 안아주는 친구를 모른 척하지 않고 같이 토닥토닥하고, 돌아서 내려가는 등뒤로 계속 "오여름 안녕"을 외치는 친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돌아서 "안녕"하며 손을 흔들어 준다.
6살 때 친구들끼리 인사하는 목적으로 두 달간 그룹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으로 구성해서 연습할 정도로 우리 아이에게 인사는 어려운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발적으로 인사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사회적 의사소통이 힘든 여름이가 학교에서 사랑받으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그런 여름이에게 수많은 자극을 주면 함께 성장하는 친구들 정말 고맙다.




얼마 전부터 하굣길에 여름이랑 친구가 손바닥 맞대고 찹찹찹 하길래 뭔가 했는데, 친구가 여름이랑 초코라떼 쎄쎄쎄를 하는 거라고 한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고 여름이랑 같이 해보니 제법 한다.
다음날 하굣길에 "ㅇㅇ아 여름이랑 초코라떼 어떻게 한 거야" 했더니, 둘이 손 맞잡고 "쎄쎄쎄 초코초코~"를 한다. 그렇게 시작한 쎄쎄쎄를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연달아 여름이랑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정말 행복하다.

친구들이랑 이런 놀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이런 놀이를 가르쳐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몇 년째 "쎄쎄쎄 아침바람 찬바람에~"를 하고 있지만, 구리구리 동작이 된 것이 체 몇 개월 전이다. ABA 수업 시간 몇 개월간 연습해도 잘 안되던 동작이었다. 그만큼 하나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여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어렵다.

몇 년간 놀이수업을 받으면서도 놀이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놀이마저 공부처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지금 여름이는 따로 놀이수업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친구가 조물조물 여름이 손을 뒤집어가며 함께 한 얼마간의 시간이 저렇게 즐겁고 행복한 놀이가 되었다.


초코라떼에 이어 딸기라떼, 우유라떼까지 친구들이 레벨 업하며 함께 놀아준다. 친구들 나름대로 여름이랑 노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

하굣길 학교 현관 앞에서 친구들과 한껏 웃으며 초코라떼를 외치고, 헤어질 때 아직은 어색하지만 돌아보며 "안녕?"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잠시 평범을 맛본다.



중증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육아와 학교생활을 나눕니다. 느리지만 성장하는 아이처럼 엄마의 특별한 육아도 보통의 육아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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